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있었던 고문사진의 유출은 미국사회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육군 예비군 조 다비의 고발은 사담 후세인에게서 해방된 이라크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주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맡고 해외로 파견된 젊은 남녀들이 저지른 비인간적인 행태를 폭로했습니다. 그 사진들에서는 벌거벗은 남자들이 피라미드를 이루며 높이 쌓여 있었고, 미군병사들이 그 위에 서서 웃고 있는가 하면, 한 여군은 벌거벗은 수감자의 목에 개줄을 묶어 끌어당기고 있었습니다. 벌거벗은 수감자들은 담배를 피우는 여군 앞에서 자위를 하도록 강요당했고, 동성애 자세를 강요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비인도적인 사고가 발생하자 부시정부와 언론에서는 일부 개인의 자질적인 악이 원인일 뿐, 대부분의 병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모든 책임을 아부그라이브의 7인의 헌병들에게 돌렸습니다. 하지만 저자인 필립 짐바르도는 이런 원인이 결코 유별난 개인의 악에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누구든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상태에 있을 때 그곳이 바로 그의 감옥이다. - 에픽테토스
저자는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분석 도구들을 제시하는데, 그 중 하나가 저자를 유명인으로 만들었던 70년대의 스탠퍼드 모의 교도소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 : SPE)입니다. 2주 동안 평범한 대학생들을 모아 임의로 교도관과 수감자의 역할을 했던 이 실험은, 참여한 대학생들이 단 하루 만에 진심으로 교도관과 수감자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교도관이 된 학생들은 첫날밤의 점호 때부터 교활한 창의력을 보이며 창조적인 악을 만들어냅니다. 다양한 형태의 교도관과 수감자의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SPE에서의 교도관은 착한 교도관, 주어진 일만 하는 교도관, 나쁜 교도관의 타입으로 나뉘는데, 이런 성향은 개인적 관계에서의 차이를 만들어낼지는 몰라도 어떤 형태의 개인도 평범한 대학생을 교도관과 수감자로 만든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키지 못합니다. 결국 2일 만에 정신질환을 보이는 수감자가 생기고, 6일 만에 실험은 종료됩니다. SPE에서는 시스템이 사람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도록 하는 구조가 다수 도입됩니다. 그런 구조는 탈개인화, 비인간화, 적 이미지, 집단 순응 사고와 같은 개념을 도출시키는데 유용합니다. 교도관이 사용하는 선글라스, 제복, 곤봉, 수감자가 박탈당하는 이름, 수감자의 번호, 무의미한 잡일 등은 하루 전 만 해도 자신과 동일한 평범한 대학생들이였던 상대방에게 권력을, 폭력을 사용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불에 묻은 가시를 털게 하는 것과 같은 무의미하고 무분별한 잡일을 독단적으로 시키는 것이야말로 교도관의 권력의 필수적인 요소가 됩니다.
이런 구조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에 있어서도 익숙한 것들인데, 군대에서의 갈굼, 훈련소 및 유격훈련에서 이름 대신 번호로 부르는 행위 등은 탈개인화, 비인간화를 촉진시켜 평상시라면 상상하기 힘든 구조를 만들어내고 받아들이게 합니다. SPE 뿐만 아니라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 솔로몬 애시의 줄 서기 연구, 평범한 고등학생들을 전체주의에 물든 단체로 만든 제3의 물결 연구, 권위의 힘은 복종의 범위 뿐 아니라 현실을 규정하고 습관적인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제인 엘리엇의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한 갈색 눈과 파란 눈 연구, 자연스레 우생학을 주입시킴으로써 나치의 최종 해결책과 같은 정책을 쉽게 지지할 수 있다는 연구 등은 시스템이 사람을 충분히 악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부당한 체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체제에 협력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악에 참여하는 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 마틴 루터 킹. Jr
이러한 맥락에서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들을 바라보기 위해선, 개인의 자질보다는 그 악을 만드는 상황적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아부그라이브 교도소는 굉장히 빈약한 시설이었고, 도시와 가까이 있어 언제든지 로켓포 등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병사들은 숙소가 없어 감방에서 잠을 잤고, 하수시설은 고장 나 화장실이 번번이 막히곤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이라크전쟁이 가속화되고 테러전 양상으로 바뀌면서 미군은 테러조직의 정보를 캐기 위해 대량의 민간인을 잡아들입니다. 결국 아부그라이브의 구금 시설에 수용된 수감자는 최대 수용 인원을 훨씬 초과한 반면, 교도관 인력과 자원은 부족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미국 정보기관이 목록에도 없는 이라크인을 고문 도중 죽이고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 모습은 병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오히려 공식적인 고문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아부그라이브 교도소는 결국 교도관들에게 있어 가학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혹하는 최적의 장소가 됩니다. 인간은 분별없는 이데올로기를 위해서, 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사람들을 죽이라는 카리스마를 지닌 권력자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얼마든지 자신의 인간성을 송두리째 던져버릴 수 있음이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아부그라이브 사건은 단지 비정상적인 개인의 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적 과정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 슐레진저의 보고서
이런 가학적 고문을 가한 병사들의 과거를 살펴보면, 시스템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나타납니다. 사건의 중심인물로 지목된 칩 프레더릭의 경우,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였고, 성장과정에서 어떤 이상적 징후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과거 근무 기록은 탁월하고 훌륭한 업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21년의 군복무중 유일한 오점은 집합시간에 한번 늦은 경우가 전부였습니다. 그는 세 번의 육군유공훈장, 네 번의 육군예비군훈장, 두 번의 국방훈장, 예비군M등급 훈장, 하사관전문성개발훈장, 육군공로훈장, 두 번의 육군예비군해외교육훈장, 대테러세계전쟁훈장, 대테러세계전쟁원정훈장을 받은 병사였습니다. 하지만 아부그라이브의 시스템, 미국의 이라크전쟁에 대한 시스템은 그를 누구에게나 모범적인 병사에서 악당 병사로 변모시킵니다. 그와 6명의 헌병들은 고문사건의 범죄자로 지목되었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은 다른 고문 사건들은 무엇이 더 악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육군성명서에 따르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관타나모의 수감자들에게 일어난 학대 행위의 규모가 600건이 넘지만, 200여 건은 조사조차 이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말로써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교사에게 자신이 학생에게 저지른 끔찍한 일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는 자아 도취제에 지나지 않다고 매슬랙은 지적한다. 권위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행동을 통한 불복종이 필요하다. (645쪽)
하지만 이런 구조에서 상황적 변수를 바꾸면 충분히 선한 행동으로 유도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런 도덕성의 변화를 자동차의 기어 변환 장치에 비유하는데, 어떤 경우에 중립에 놓인다고 상상해보면, 그와 같은 상황에서 도덕성 이탈이 일어납니다. 자동차가 비탈길에 있는 경우 기어를 중립에 놓으면 차와 운전자는 모두 비탈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갑니다.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90퍼센트의 신학생들은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설교를 하러 바삐 가느라 착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는, 눈앞에 있는 기회를 그냥 지나쳐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시간이 많을수록 멈춰 서서 돕는 확률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시간 압력이라는 상황 변수의 변화는 누가 돕고 누가 수동적인 방관자가 되는지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런 긍정적 행동을 만들어내는 변수의 증가는, 곧 사회적 선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래리 콜버그는 도덕적 갈등의 맥락 안에서 갈등에 대해 숨김없이 논의하는 도덕적 교육의 장이 개인의 도덕적 발달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가장 중요한,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상황적 힘 앞에서 누구나 공통적으로 그런 단점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야말로 해로운 영향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고, 사람과 공동체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효과적인 전략을 발전시키는 첫 단계입니다. 존 달리와 빕 라타네가 연구한 살인사건과 38일의 방관자 사건에서 이런 사건의 결과를 학생들에게 교육시키면 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보다 두 배 이상 타인에게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나는 메시아가 아니라, 특수한 상황 때문에 지도자가 된 평범한 사람이다. - 넬슨 만델라
한나 아렌트는 탈개인화, 비인간화, 적 이미지, 집단 순응 사고, 도덕적 이탈, 사회적 촉진과 같은 개념의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악을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했는데, 이와 관련해 저자는 이런 악을 극복하기 위해 ‘평범한 영웅’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평범한 영웅이라는 말은, 사회의 불의에 대항하는 영웅 같은 사람은 절대 특별한 것이 아니고, 상황적 힘에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누구라도 쉽게 영웅이 될 수도 있고 악을 자행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상황적 힘을 사회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아부그라이브의 고문관이 될 수도 있고, 1989년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17대의 탱크 앞에 혼자 몸으로 맞선 무명의 저항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와 같은 사건들을 바라볼 때 그것은 '썩은 사과'가 문제가 아닌, '싱싱한 사과'도 썩게 만드는 '썩은 사과상자'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일부 사람들을 사회적 병리학으로 나아가게 하는 상황적 힘과 시스템적 힘을 제한하고 억제하고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착선'님은?
'인문학, 사회학,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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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백일장을 떠올려 봅니다. 매년 오월, 칠판에 적힌 시제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습니다. 책과는 담을 쌓았던 친구들까지도 그날은 원고지에 뭔가를 적어 넣었지요. 하다못해 만화영화 주제가 노랫말을 베꼈더라도 “모든 어린이는 시인이다.”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시인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시인은 모든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권정생 선생님은 시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평생 동화만을 써 온 작가인 줄 알지만, 작고한 선생님의 유품 중에는 손수 만든 동시집이 있었습니다. 《동시 삼베 치마》는 그렇게 세상 빛을 봤습니다.
문득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그런 날에요. 주머니 사정만 괜찮다면, 되도록 멀면 좋겠어요. 관계에 매인 마음, 집에다 떼어놓고 낯선 곳에 나 혼자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지내면 좋겠어요. 그간의 나를 모조리 기억하고 있는 자리를 벗어나, 아무 기억 없는 그곳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나로서, 더없이 홀가분한 ‘아무나’가 되어, 그래서 나만이, 그 시간을 오롯이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국의 땅에서 느끼는 생경함으로 몸에 둘러붙은 익숙함의 무게를 덜어, 아직은 기억되지 않은, 그래서 기억할 수 없는 나를, 만나게 할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어요. 기억은 종종 책임이고, 집착의 근거이며, 고통의 원인이니까요. 그러니까 나는 나를 만나러 떠나고 나에게로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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