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 블로거, 책을 말하다

 

  

정채봉, <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 코리아 하우스, 2009

 

아주 작은 속살거림 그리고 설렘

초록색 하늘바다 위에 솜털 같은 잎새로 나를 잠재워주는 곳. 유유하게 헤엄쳐 다니는 하늘 물고기도 나의 잠을 깨우지 않습니다. 하얀 구름이 나의 꿈인 양 그렇게 흘러가는 곳. 거기가 어디일까 생각해 봅니다. 넓게 펼쳐진 책띠의 그림을 보면서 아주 포근한 상상 속에 갇혀 봅니다. 바로 이 느낌, 접혀있던 마음의 날개를 그야말로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주는 따스함이 있다는 것, 내가 당신의 글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참 맑고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당신의 글들을 다시 만난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적어도 내게는 말입니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이야기 <오세암>이 당신의 글이라는 걸 알았을 때 당신께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습니다. 지금도 내가 끔찍하게 아끼는 당신의 글들은 지쳐버린 내 마음이 가끔씩 찾아가 쉬어가는 작은 쉼터이기도 하지요. 채송화 ‘채’에 봉숭아 ‘봉’자가 어울린다는 당신, 평안하신가요?

책꽂이 한 편을 보란 듯이 차지하고 있는 정채봉님의 글들을 바라본다. 참 예쁜... 가끔씩 나를 불러 마음 쉼을 권해주는 책이기도 하지만 내 스스로 찾아가는 기회도 꽤나 되지 싶다. 이 책 <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사람>은 냉정하게 말해 새로울 건 없다. 그간 있어 왔던 작품들 속에서 선별해낸 글들인 까닭이다. 하지만 언제보아도 산뜻한 느낌을 전해주는 정채봉님의 글은 두 번 세 번을 거듭하여 본다하여도 참 좋은 느낌을 받는다. 오로지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느낌이 참 좋다. 그야말로 뛰다시피 살아야 하는 바쁜 세상 속을 헤치고 나아가면서 우리가 챙기지 못하고 지나치는 그 무엇들을, 잃어버린 채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그 무엇들을 이제는 찾아야 한다고 안타깝게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아주 오래도록, 아주 간절하게, 아주 작은 속살거림으로...

뛰지마. 그러면 너도 볼 수 있을 거야. (209쪽)

바쁜 생활.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왠지 낙오자가 된 듯한 느낌을 버리지 못하는 시간들. 남들보다 앞서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그렇게 바쁜.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바쁘게 하는지. 무엇이 우리에게 그토록 힘겨운 달리기를 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알면서도 우리는 못내 안 그런 척, 모르는 척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그렇게 안 그런 척, 모르는 척 하는 것들이 어디 하나 둘뿐일까? 그러면서도 우리가 추구하며 갈구하는 것들이 애써 시선을 비껴갔던 것들 속에 머문다는 것은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행여 숨겨놓은 내면과 마주칠까 두려워하며, 보다 더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는 그리하여 그 포장되어진 모습이 더 두드러지게 보여질 수 있는 형식과 겉치레에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는 우리의 습성이 어쩌면 우리를 그토록 힘겹게 달리라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지.

사람이 가장 많이 미치는 것은 사람한테다.
그리고 가장 많이 빈털터리가 되는 사람 또한 사람한테 미쳤던 사람들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미쳐 있는가? (114쪽)


무엇엔가 미쳤던 사람들, 그 순간 그들은 얼마큼 행복했을까? 무엇엔가 미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행복한 일일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해 관심과 사랑을 쏟아 부을 수 있었으니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부럽지 않았으리라. 작가의 글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사람사치를 부려보는 것도 꽤나 괜찮은 일일 거라고. 하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미쳤을 때의 후유증이 가장 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사람에게 미치고 싶은 것일까? 역설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한다.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따스함이 느껴질 수 있는 대상이 사람인 까닭이라고. 배려와 위안이 함께 머무는 사랑이라는 표현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 또한 사람인 까닭이라고.

사랑을 묻는 소녀에게, 나무가...

책을 읽는 동안 한 줄의 글을 읽더라도 급하게 읽지 못한다. 그의 마음이 거기에 담겨 있는 까닭이다. 사랑을 묻는 소녀에게 나무가 말해주듯이 그렇게 말이다. 꽃 피는 봄을 보고, 잎 지는 가을도 보고, 나목으로 기도하는 겨울도 보았다면 사랑에 대한 나의 대답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던 나무의 대답은 한동안 나를 멍하게 했었다. 우리의 삶에, 우리의 사랑에 무슨 정답이 있을까? 일상 속에서 온통 넘쳐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인데, 우리 스스로가 고개를 돌려버린 채 느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일 뿐인데...

이 책을 통해 소소한 작가의 병상일지를 보게 된다. 딸에게 전해주지 못한 채 갖고 가야 할 안타까운 사랑이 전해져 온다. (아마도 딸은 아버지의 그 사랑을 가슴 한가득 안아들었을 게다. 이렇게 다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면.) 그의 아픔이 담겨진 사적인 공간을 들여다본다는 것도 왠지 안타까움으로 전해져 온다. 살면서 누구나 그만그만한 아픔 하나쯤은 간직한 채 살아갈 텐데도.

<멀리 가는 향기> <향기 자욱> <참 맑고 좋은 생각> <이 순간> <나는 너다> 등 그가 남겨준 작품들이 얼마 전부터 다시 출판되기 시작했다. 생각하는 동화시리즈라고도 하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 시리즈라고도 하는 글들.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지만 짧은 글이 단순하게 그려진 그림과 어울려 누구나 부담 없이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도 책의 장점 중 하나일 것 같다. 그만큼 부담 없는 편한 느낌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난다는 사실에 설레였던 시간이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아이비’님은?
일상을 떠나 내 마음이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 가끔씩 투정을 부려도 아무 말 없이 받아주는 친구, 힘겨움에 끙끙거릴 때마다 한번쯤은 위로의 손길을 보내주는 친구, 제게는 바로 그런 친구가 있답니다. 그 친구가 머무는 곳이 책속 세상이요, 산과 마주하는 시간속이랍니다. 그래서 산, 책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여인이라면 어떠세요? 산과 책 중에서 어떤 것을 더 좋아하냐고 묻지 마세요. 곤란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