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가능한 키워드, 달리 - <달리와 나> 책, check, 책

스탠 로리센스, <달리와 나>, 랜덤하우스, 2009

책을 선택함에 있어 ‘영화 원작’이란 말을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영화의 장르적 우수성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가장 상업적 문화예술 장르인 영화가 그 이야기를 택했다면 분명 대중을 사로잡을 구석이 있다는 거다.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영악한데, 아무 데나 비싼 돈을 들이겠는가. 그런 면에서 스탠 로리센스의 <달리와 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알 파치노, 킬리언 머피가 출연하겠다고 나선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은 키에 넘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알 파치노는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배우다.) 더욱이 ‘어느 천재 예술가의 세기의 스캔들’이라니. 주저 없이 책을 펼쳤다.

<달리와 나>는 20세기 미술은 물론 모든 문화예술 영역에서 ‘핫 아이콘’이었던 살바도르 달리와 그의 작품을 사고파는 브로커 스탠의 이야기다. 이들의 첫 인연은 아름다웠다. 치즈 공장을 거쳐 ‘파노라마’란 잡지에서 싸구려 가십 기사를 써내던 스탠은 우연한 기회에 투자상담회사 MMC에 들어간다. MMC사장은 스탠이 달리와 한 인터뷰 기사를 보고 그를 ‘달리 전문 브로커’로 키우고자 한다. (물론 스탠은 달리를 만난 적이 없고, 그 기사는 허구로 쓴 기사다.) 치즈 공장 노동자에서 최고급 정장을 빼입은 달리 작품의 브로커까지, 스탠은 순식간에 신분 이동을 한다.

천지가 개벽한다고 해도 이런 횡재는 없을 거다. 스탠이 거래하는 달리의 작품들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고, 그는 돈을 포크레인으로 퍼 담는다. 그만큼 달리의 유명세가 하늘을 찔렀기 때문이다. 아니 하늘을 뚫고 올라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하지만 돈이 되는데 사람이 몰려들지 않을 리 없다. 스탠은 고객이 많아져 좋기는 하면서도 작품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시중에서 유통되는 작품들이 원본이 아닌 위작, 혹은 모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스탠이 자리를 떠나지는 않는다. 왜? 그는 이미 돈의 맛을 봤기 때문에. 자신이 가짜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원해서 파는데 양심의 가책을 이유는 무엇인가.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듯 스탠도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이제 둘의 인연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초고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더럽고 차가운 구치소에 쳐 박힐 위기가 자신의 엉덩이를 바짝 쫓고 있는 것이다. 이제 스탠은 어떻게 할까.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는 있을까?

달리를 둘러싼 민얼굴의 욕망들

<달리와 나>는 달리의 작품을 둘러싼 거대한 욕망관계를 가감 없이 묘사한다. 여기서는 달리의 작품이 아닌 ‘돈’이 더욱 중요하다. 1989년 사망한 달리의 말년을 배경으로 한 이 책에 달리의 작품이 갖는 작품성과 예술성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오로지 돈이다. 돈 많은 사람들은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돈이 되기 때문에 달리의 작품을 사려고 하고, 브로커들은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적게는 몇 배, 많게는 수백 배의 마진을 붙여 물건을 중개한다. 또 달리는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소비되는지는 관심조차 없다. 그저 돈을 부르는 서명을 하는데 말년을 다 보낸다.

겹겹이 쌓인 욕망관계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스탠이 사기꾼 같다. 그는 가짜도 진짜처럼 팔고, 감언이설로 고객을 ‘후린다’. 그렇다고 고객들이 선한 사람은 못 된다. ‘짝퉁’ 가방을 팔아 갑부가 된 가방 제조업자, 싸구려 고기, 비계, 심지어 톱밥을 넣어 소시지를 만들어 파는 정육점 주인. 사기를 치며 돈을 모은 이들, 과시욕으로 가득 찬 이들이 사기를 좀 당하면 어떤가. 달리도 마찬가지다. 그를 신으로 만든 것은 언론, 평론가 등 매스 미디어다. 달리는 그들 앞에서 기발한 쇼를 보여주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침묵했을 뿐이다. 이 한바탕 소란에서 잘못은 누구에게서 비롯된 것일까.

천둥번개가 요란하면, 이후 찾아오는 정적의 골이 더욱 깊은 법. 인물들의 욕망이 격하게 충돌한 후에 찾아오는 공허감에서 무게감이 느껴진다. 대표적인 장면이 달리의 주변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를 ‘별 볼 일 없는 인물’로 묘사하는 장면이다.

캡틴 무어가 말했다.
“달리와 함께 있으면 하루하루가 정신병원에 있는 것 같았죠.”
아만다 리어가 말했다.
“솔직히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정말 터무니없어 보였어요. 왜 그런 수준의 화가가 정신박약자들에게 에워싸여 있었을까요?” (p. 241)


화려하고, 창조적인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는 없다. 그저 변태 성욕자에 정신병자, 이미 망가진 몸뚱이를 가진 늙은이만 남았을 뿐이다. 달리의 삶을 돈으로 환원한 이들은 그의 삶도, 예술도 진지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의 죽음이 또 다른 이슈를 낳기는 했지만, 언젠가 스탠이 썼던 가십 기사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존재, 본질에서 미끄러진 슬픈 허상이다. 물론 그게 비단 달리의 초상만은 아님을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알 수 있다.

달리와 나, 어디까지 진실일까

<달리와 나>는 작가 스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그는 1970년~80년데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달리의 그림을 거래하기도 했으며, 달리와 이웃으로 지내기도 했다. 그는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이것은 실화이다. 등장인물 중 이름과 특성을 바꾼 사람도 더러 있지만 사거노가 행동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대로를 옮겨 적었다”면서 ‘사실성’(fact)에 방점을 찍었다.

물론 작가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할지는 온전히 독자의 판단이다. 이 책은 소설이니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달리를 둘러싼 욕망의 관계는 오늘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책 후반부에 나타난 것처럼 달리의 ‘허구성’이 만천하에 폭로됐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돈이 된다는 말에 다시 달리의 작품을 욕망한다. 또 달리의 작품을 얘기할 때마다 전해지는 스탠의 기분 좋은 긴장감을 그 마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만약 같은 제안이 들어왔을 때 우리는 쉽게 거부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쥐는 순간 우리는 이미 달리의 세계에 빠져든 셈이다. 반디(ak20@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