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지난 7월 티스토리 이웃 바바라님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귀중한 책 선물 <재미>(한상복)가 그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에 당장이라도 읽고 싶었으나 ‘오늘의 책’ 읽기를 허덕인 탓에 좀처럼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재미>는 이미 오늘의 책에 올라갔고요.) 결국 여름의 끝자락, 부산행 무궁화호에서 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책이 술술 잘 읽히던지.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읽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재미>도 유명하고, 저자는 더 유명한지라 책 내용은 짧게 하고, 기차 안에서 느꼈던 제 기억들을 몇 개 끄집어내겠습니다.
<재미>의 주인공은 세 명입니다. 직장에서 불안한 위치에 있는 아빠, 꿈을 잃은 채 건조한 삶을 사는 엄마, 그리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딸. 아빠는 후배였던 전임 팀장의 그늘에 가려 기를 펴지 못합니다. 그때 상사에게서 ‘재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결혼 전 유능한 학원 강사였던 엄마는 자신의 ‘일’을 찾기 위해 학습지 교사가 되고, 취미로 사진을 배우게 됩니다. 왕따로 고심하던 딸은 다른 왕따 친구를 도와줌으로써 단절됐던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이제부터 말을 살짝 내려놓겠습니다. 기억이 제게 반말을 하는 터라.^^;
“엄마. 강사 뒤의 칠판에는 ‘꿈’이란 글자가 크게 쓰여 있었다. 내 꿈이 뭐였더라. 남편이 건강하고 회사 일 잘 풀리고, 아이는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생각해보니까 정작 내 꿈은 없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서가 아닌 나만의 꿈. 나를 위한 목표.”

“아빠. 사람들은 디자인 때문에, 품질 때문에, 상표 때문에 물건을 고르지 않는다. 품질이나 서비스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사람들은 한 걸음 나아가, 이야기를 원한다. 재미와 감동, 꿈을 담은 이야기. 그래서 수많은 학자들이 ‘이제는 상상력이 가장 큰 자산이 되는 시대’라며 입을 모으는 것이다.”
맞다. 문제는 이야기다. 기술이 좋아진 지금 물건들의 질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는가. 근래 마시기 시작한 ‘T’ 커피도 광고에 나온 배우 신민아 때문에 먹는 거 아닌가. 생뚱맞게도 ‘H’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생각난다. 언젠가 ‘차를 사면 친구가 만든(꼭 친구가 만든 차는 아니더라도) 차를 사야지’ 마음먹었다. 그것이 친구의 일을 존중하는 ‘친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여름 쌍용차 사태가 터지면서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지독한 고립감 속에 죽음에 문턱에 다다랐던 이들을 위로해야하지 않을까. 같은 땅에 산다면서, 가까이 가지도, 위로의 한 마디 전하지 못했는데…. 그리고 9월 8일. 쌍용차 노조가 민주노총에서 탈퇴한다는 뉴스를 봤다.
“아이. 나는 할머니 품을 파고든다.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여럿이서 약한 사람을 괴롭히며 낄낄거리는 비겁한 모습.
"손가락질하면서 놀리는 게 재미있으니까 그럴 테지. 처음에는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마음 한 구석이 아프지만, 그런 짓을 자꾸 하다 보면 감각이 없어지는 거야.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착한 마음이 돌덩이처럼 굳어버리니까. 문제는 그 다음부터란다. 인생을 스스로 망치는 길로 들어서는 거야."
할머니가 왼쪽 팔을 내민다. 나는 팔베개를 하고 눕는다.”
대학에 들어갈 때 청운의 꿈은 없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을 하고 싶다는 게 꿈이라면 꿈이었다. 2학년쯤인가. 전공수업 시간에 ‘공감’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내 기억으로 그 교수님은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픈 게 공감이고, 그것이 문학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래,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가 책을 이유는 없을 거다. 백날 읽어봐야 ‘그들’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한때는 영화를 보는 게 일이었고, 지금은 책을 읽는 게 일인 나. 다행이 내게서 공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면 심장이 뛰고, 책을 보면 살이 뛴다. 누군가의 피만 봐도 가슴이 철렁인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문득 찾아오는 심장 떨림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아직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것 같아, 다행이다.

<재미>는 화석화 돼가는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가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답은 쉽습니다. 제목 그대로 ‘재미’입니다. 그런데 가르침은 ‘내 것’이 되기 전까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책에서 기억에 남는 상황이 하나 있습니다. ‘재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 아빠는 힘이 들 때나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속으로 ‘재미, 재미, 재미’ 하며 상황을 견뎌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의 시간이 겹겹이 쌓이면서 아빠는 새로운 자신(세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제는 버티기 한 판! 저 또한 주문을 외웁니다. 우리 모두의 주문이 웃음으로 승화되는 날이 냉큼 오기 바라며!
재미가 당신과 함께 하기를! May the fun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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