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 아파도, 소리 내지 않는 아이 오감의 소파

 

[반디와 함께 보는 명장면 8]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바흐만 고바디, 2000)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제목이 무슨 뜻일까’ 가장 많은 생각을 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비유적인 표현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지극히 사실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작품에는 말들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하고, 오로지 그 말들의 발걸음에 의지하는 진짜 ‘취한 말들의 시간’이 나옵니다. 밀수를 위해 국경을 넘는데, 그 길에 너무 추워 술로 몸을 덥히지 않고서는 말이 국경을 넘을 수 없습니다. 이들 쿠르드족의 밀수는 부귀영화를 위함이 아닙니다. 먹고살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을 위한 술은 없습니다. 

주인공 아윱은 이란과 이라크의 오랜 전쟁 때문에 피폐해진 국경 마을 바네에 사는 12살 소년입니다. 그는 우리가 흔히 보는 소년들보다 많이 의젓합니다. 막내를 낳다 죽은 어머니, 밀수에 나섰다 지뢰를 밟고 목숨을 잃은 아버지 대신 가장 노릇을 해야 하니까요. 아윱은 학교를 갈 여유가 없습니다. 난치병에 걸린 형 마디의 약값을 벌어야 하고, 여동생 아마네에게 새 공책도 사주어야 합니다. 온갖 잡일을 하며 푼돈을 모으는 소년에게 자신을 돌볼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윱의 누나 로진은 마디를 수술시켜준다는 조건으로 이라크로 시집을 갑니다. 로진과 신부 일행은 마디를 노새의 짐광주리에 싣고 고생 끝에 이라크 국경까지 도착하지만, 신랑측은 마디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노새 한 마리에 팔려간 로진은 그냥 서럽게 울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감이 밀려오지만, 아윱은 절망할 시간이 없습니다. 마디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윱은 마디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노새를 끌고 밀수 대열에 합류합니다. 언젠가 아버지가 지뢰를 밟아 사지가 찢겼을 그 길. 이제 ‘취한 말들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작품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은 형 마디가 주사를 맞는 장면입니다. 병에 걸려 동생 아윱보다도 키가 훨씬 작은 형 마디. 눈보라가 치면 ‘훅’하고 날아갈 것처럼 약한 몸이지만 그는 늘 웃습니다. 하지만 주사를 맞는 시간은 참기 힘든 고통의 시간입니다. 긴 바늘이 피부를 뚫고, 살을 뚫고, 어디까지 닿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몸 깊숙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마디는 소리 내 울지 않습니다. 자신의 울음이 형제들의 가슴을 더욱 후벼 팔 것을, 소리를 지르는 것이 고통을 줄이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소년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저 소년이 크게 소리쳐 내 귀가 아픈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은 울고 있으나, 울음을 먹어버리는 소년의 모습에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장면은 눈보라 치는 국경에서 쓰러진 노새를 끄는 아윱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아픔은 더 커집니다. 작품을 본 이후로 소리를 지르며 우는 아이를 보면, 툴툴 거리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두 소년이 생각나고는 합니다. 그리고 쉽게 아파하지 않겠다, 소리 내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소년들은, 부디, 소리 내어 울기를! 

‘반디와 함께 보는 명장면 9’ 예고!
<마이 시스터즈 키퍼>를 보러갔을 때 예고편으로 <내 사랑 내 곁에> 예고편을 봤습니다.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장준혁 과장님(김명민)이 열연을 하시고, <너는 내 운명>의 박진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니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내 사랑 내 곁에>를 끝으로 ‘아픔 3부작’을 끝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