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않고 달려드는 리얼 소울 - <Blacksummers` Night> 반디 음악 광장

 쉬지 않고 달려드는 리얼 소울 - <Blacksummers` Night>

세달 남았다. 똑같이 8년 가까이 감감 무소식으로 일관중인 저 디안젤로(D’Angelo), 만약 그의 예정된 컴백 일정에 차질이 생겨 올해마저도 이대로 흘러가 버리는 상황이 와준다면 올해의 소울 앨범은 바로 이 이름 석 자 앞에 바쳐져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맥스웰.

이미 아는 사람들끼리는 고대해 마지않던 새 앨범 중 하나로 위시 리스트에서 썩어 문들어진 지 오래. 이제는 습관적 키스처럼 관습적인 의미가 되어버린 네오 소울의 시작과 황금기 속에 가장 순도 높은 열정의 발휘해 온 그의 새 작업에 거는 기대는 소위 정통 ‘소울’이 사멸해 가는 현 씬의 분위기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을 테다. 게다가 작년에 라파엘 사딕(Raphael Saadiq)이 올드 스쿨로의 회귀를 통해 준수한 성적표를 받아 들고, 알 그린(Al Green)은 타협하지 않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젊은 피들의 분발을 유도한 상황에서 이젠 가장 묵직한 한 방을 날려주어야 할 맥스웰과 디안젤로의 무소식 감감은 그래서 더더욱 답답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리고 이제, 90년대 후반 ‘네오 소울’이라는 네 글자를 뇌리에 깊이 각인시키며 모타운-콰이엇 스톰의 정통 계보를 이은 그가 다시금 무시 못 할 내공을 들려주며 소울을 듣는 재미를 새삼스레 느끼게 해주고 있다.

의의의 ‘단출담백 의욕작’이라기보다는 소품이라는 느낌이 강한 이 아홉 곡들은 오랜 공백과 자신의 후속작에 거는 세간의 과도한 기대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실로 좋은 조짐이다. 흑백 실루엣으로 한 겹 톤-다운한 그의 얼굴처럼 과도한 컨셉으로 폼 잡고 파격으로 눈 속이지 않은 채 그저 멜로디와 기본 연주에 천착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들려줄 수 있는 복고풍의 정통 소울에 확실히 방점을 찍는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느긋느릿한’ 브레익 비트, 옹골진 베이스 연주가 만들어 내는 탁월한 그루브, 템포를 적절히 메우는 브라스의 재지(Jazzy)함, 팔세토와 진성의 오버랩 속에 절묘한 화음을 더한 맥스웰의 목소리가 어울린 기가 막힌 오프닝 「Bad Habit」을 들어보라.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도저히 우연히 되는대로 나오는 음악들이 아니다.

억지로 들어도 좋을까 말까한 짝퉁 알앤비들 먹느라 답답했던 속이 쑥 내려가는 느낌, 그저 자연스럽고 멜랑꼴리한, 텁텁하거나 억지 부리기와는 몇 광년 떨어진 소위 진짜 ‘소울풀’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명료한 훅, 살아 숨 쉬는 확실한 연주의 존재감, 바이브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팔세토가 상당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Cold」도 물론 좋거니와, 최근 몇 년간 프린스가 선보인 그 어떤 노래보다도 더 프린-쉬하게 잘 만들어 낸 「Pretty Wings」의 ‘느끼끈적’ 네 박자는 또 어떤가. 「Help Somebody」와 「Phoenix Rising」의 리듬감은 진정 훵키소울의 그루브가 뭔지를 알 수 있는 사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내밀한 감각의 영역이다.

무엇보다 텍스트와 멜로디, 보컬과 편곡이 유기적이면서도 일관되게 엮인 느낌을 준다. 내가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아직 우리가 나눌 것들이 더 많다고, 무엇보다 당신이 내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일관되고도 지겹게 반복되는 패배한 남자의 틀에 박힌, 하지만 진솔한 갈구함이 그 모든 메시지의 전부일뿐더러 사운드적으로도 도드라지는 실험보다는 풍부하게 분위기를 살려내는 정공법을 취한다. 그래서 더 단출하다. 굳이 늘리고 비꼬고 뒤틀고 허세부릴 필요가 없는, 분위기 진득이 잡으며 어떻게 침대로 끌어들일까 폼 잡지 않는 담백한 소울, 그런데 그 주체가 찐득 알앤비의 황태자 맥스웰이라니 그저 오래 살고(듣고) 볼 일이다.

7년이나 걸렸다. 숙성하고 고민하고 뜸 들인 만큼의 큰 만족을 주는 음악들이냐고? 아마도. 적어도 그 동안의 공백이 자신이 구축한 네오 소울이라는 허풍과 부담을 한껏 벗어 던지고 그저 자신이 존경해온, 따르고 싶었던 음악들의 본질로 다가서려는 노력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음악들이 이렇게 절절이 증거하고 있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투째지’ 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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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음악취향Y(cafe.naver.com/musicy)를 아지트 삼아 넷상에서는 투째지(toojazzy)라는 필명이 김영대라는 본명보다도 익숙해진지 13년째.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등 몇 권의 책도 썼지만 인세나 원고료를 통한 밥벌이는 꿈도 못꾸고 있는 세미프로 음악 평론가. 음악이 세상을 구원해 줄 날을 고대하며 현재는 미국 시애틀에 머물며 워싱턴대에서 음악 인류학(ethnomusicology)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