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은 한참 후에 쓰려고 했다. 아직….”- <성공과 좌절> 책, check, 책

노무현, 성공과 좌절, 학고재, 2009

지난 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인을 추모하는 인터뷰를 봤습니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지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FTA 추진을 후회하는 발언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를 보면서 고인이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FTA를 추진한 배경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본 고인은 자신의 지지자들이 한미FTA를 반대할 것을 알지만, 그나마 자신이 하면 사회적 비용이 덜 들 것이라 판단해 추진했다고 합니다. ‘한미FTA를 왜 추진했을까’하는 오랜 고민은 그가 세상을 뜨고 나서야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고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은 고인이 남긴 마지막 목소리가 담겨 있는 책입니다. 1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는 ‘미완의 회고’와 ‘봉하 단상’으로 이뤄져 있는데, ‘미완의 회고’는 서거 며칠 전까지 고인이 집필하던 회고록의 목차, 대강의 구성, 회고록 집필 결정 이후 줄거리를 밝힌 구술 기록 등이 담겨 있습니다. 또 ‘봉하 단상’에서는 고인이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 비공개 카페에 올린 글들이 최고 공개돼 있습니다. 2부 ‘나의 정치역정과 참여정부 5년’는 2007년 9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청와대에서 네 차례 가진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육성 기록이 3부로 구성되었습니다.

“마침내 피의자가 되었다.”

“회고록은 한참 후에 쓰려고 했다. 아직 인생을 정리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아 있다. 봉하마을 가꾸기, 시민광장, 정책 연구……. 그래서 ‘우공이산’을 표구하여 붙여놓고 이런 저런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장애가 생겼다.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마침내 피의자가 되었다.” (최종 수정일: 2009년 5월 20일 오후 5시 5분, p. 16)

지독히 고독한 밤을 보내기 3일 전 고인이 남긴 말입니다. 청와대를 떠난 지 1년이 조금 넘어 ‘피의자’가 된 일국의 대통령. “마침내 피의자가 되었다”는 말은 짧으면서도 고인의 참담한 심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합니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어찌 쉽게 그 관심을 거두겠습니까. 고인은 하고 싶은 일도, 욕심도, 열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피의자가 된 그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습니다. 봉하마을이란 좁은 곳에서조차 마음껏 운신할 수 없었습니다. 기자들 때문에 마음껏 마당에도 나갈 수도,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었으니까요. 고인은 자신의 집을 ‘감옥’이라 표현합니다. 그는 이미 피의자였던 셈입니다.

수많은 눈이 감시하면 할수록, 수많은 입이 그에 대해 말을 하면 할수록 고인이 더 씩씩하기를 바랐습니다. 언제나 당당했던 고인의 걸음걸이처럼. 하지만 그의 입은 ‘좌절’과 ‘실패’를 말합니다.

“이제 내 이름으로 내는 것은 전혀 다른 책이어야 한다. 인생사 실패 이야기가 지난 이야기이다. 진자 회고록이다. 옛날에 나는 회고록을 안 쓰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회고록을 써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영광과 성공의 얘기가 아니고 좌절과 실패의 얘기를, 시행착오와 좌절과 실패의 얘기를 써야 맞는 게 아닌가 싶다.” (p. 52, ‘스스로 입지를 해체하는 참담함으로’)

고인을, 다시 부르다

고인의 좌절과 실패가 영원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인이 좌절과 실패의 순간을 뼛속 깊숙한 곳까지 새긴 후, 진정 산을 옮기는 우공(愚公)으로 돌아오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기대조차 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립습니다. 고인이 그립고, 고인의 눈빛이 그립고, 고인의 유머가 그립습니다.

그렇게 청문회를 하면서도 계속 노동 현장에 다녔습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은 노동운동 지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국회의원이 중립을 지켜야지, 왜 노동자 편만 드는가? 사장 편도 좀 들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공격을 많이 받았는데 그때 저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국회에 299명의 의원이 있는데 200명 이상이 사장 편을 들어주지 않습니까?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장 편에 서 있는데 노동자 편도 몇 명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정치인이라면 그런 문제를 조정하고 통합시켜 나가야지, 왜 자꾸 싸움을 붙이고 갈등을 일으키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받았습니다. 그런 질문에는 “조정하고 통합하는 것은 중진들이 하는 일이고 저는 초선의원 아닙니까?”하고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p. 139, ‘정치로 들어가는 길’)

모든 국민이 울었던 지난 봄을 기억합니다. 그때는 한마음이 되어 고인의 마지막 길에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두 마음, 세 마음이 되어 다시 싸우고, 헐뜯고 있습니다. 이제 고작 계절이 두 번 바뀌었을 뿐인데요. 그래서일까요. 그대가 더 그립습니다. 반디(ak20@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