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통한 버텨낼 용기, 견뎌낼 위안 - <헤아려 본 슬픔> 블로거, 책을 말하다

 C.S. 루이스, <헤아려본 슬픔>, 홍성사, 2004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난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었다. 갇힌 공간에 울려 퍼지던 그 뉴스의 비현실적인 느낌과 충격은 내가 살아있는 한 잊지 못할 것이다. 처음 한동안은 멍했지만, 점차 현실 감각이 돌아오면서 세상이 전과는 똑같을 수 없다는 생각에 상실감이 밀려들었다. 어떻게 세상이 같을 수 있을까? 앞으로 수십 년간은 마치 사라지지 않는 화면의 배경 소음처럼 우리 주변에 계셔줄 줄 알았는데, 그 느물대시던 농담을 질릴 때까지 들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그렇게 한순간에 끝나 버렸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가족도 아닌 내가 이럴진대 과연 그 분의 가족들은 오죽하실까 싶어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다소 흐르긴 했지만, 그분들이 어떻게 이 시련을 감내하고 계시려나 여전히 안쓰럽다. 부디 강하시기만을 빌 뿐이다. 시간을 견뎌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여정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남기고 간 공백과 끔찍한 진공, 그리고 無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마주하게 되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가장 용감하고 현명하다는 사람조차도 무릎을 꿇을 수밖엔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사별을 겪은 사람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날카로운 지성과 명민한 두뇌의 소유자인 작가 C. S 루이스는 사랑하는 아내 조이를 암으로 잃고는 그녀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몰라 절절맨다. 아내가 없는 공허한 진공 같은 나날을 힘들게 이어가던 그는 자신의 슬픔의 정체를 분석해보기로 했고, 그 일지를 묶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물론 그건 자신이 똑똑하다는 걸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보단 슬픔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지지 않으려는 발버둥의 일환이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신자임에도 믿음이 사별을 받아들이는데 별 위안이 되지 못하더라는 현실에 당황한 그는 과연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놀랐던 것은 그가 내뱉은 문장의 진실함과 정확함 때문이었다. 다음을 보자.

“슬픔이 마치 두려움과 같은 느낌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무섭지는 않으나, 그 감정은 무서울 때와 흡사하다. 똑같이 속이 울렁거리고, 안절부절 못하며, 입이 벌어진다. 나는 연신 침을 삼킨다. 어떤 때는 은근히 취하거나 뇌진탕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상과 나 사이에 뭔가 보이지 않는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다른 사람이 뭐라 말하든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게다.”

“만사가 재미없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 집이 텅 빌 때마다 무섭다. 사람들이 있어주되 저희들끼리만 이야기하고 나는 가만 내버려 두면 좋겠다.”

어떻게 저런 느낌을 잡아내고 표현해 낼 수 있는지, 꼭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문장을 되풀이 해 읽어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어본 사람들은 안다. 저 말이 얼마나 군더더기 없는 진실인가 하는 것을…. 이 책의 전반적인 느낌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사별로 인한 슬픔을 헤아리는데 이보다 더 정확한 문장들은 본 적이 없다는 것, 위로가 됐다. 오래전에 이 책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싶었다. 그랬더라면 나와 같은 슬픔을 겪는 것이 비단 나만이 아니란 사실에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적어도 흔하게 주어지지 않는 위안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슬픔에 대한 실체, 그리고 위안

사람들은 슬픔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하지만 그 실체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서, 정작 위로가 필요할 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사람들 속에 남겨진다는 것은 대단히 비참한 일이다. 그럴 땐 차라리 동병상련을 겪은 경험자의 고백이 더 낫다. 솔직히 말해 루이스의 이 일지라면 다른 위로는 필요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그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지던 것은 거짓된  감정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회피하지 않는 점이었다. 고통을 똑바로 직시하는 루이스를 보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그답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게 이 책은 슬픔을 헤아리고 공감하게 하는데 빼어났으나, 그것보다 더 명징하게 내 가슴을 울려오던 것은 아내 조이를 그리는 루이스의 애정이었다. 어떤 남편이 아내를 그렇게 잘 알고 사랑할 수 있겠느뇨. 최근에 읽은 해롤드 블룸의 책을 보니 그는 루이스를 박제된 얼간이 작가라고 평하고 있더라. 물론 블룸의 시각에서 보면 그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여인을 그토록이나 잘 헤아리던 사람을 보면서 그가 얼간이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때론 세상을 다 통찰한다 해도 내 곁에 있는 인간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다 꿰뚫진 못한다 해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 대해서만큼은 올곧이 진실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고…. 어떤 것이 나은 삶인가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난 여자라 그런가 루이스의 선명한 사랑이 한없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루이스와 조이, 그 둘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들인지…. 지성적이고 선한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처럼 흐뭇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우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에 분노하고 미쳐 날뛰며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어쩜 그렇게 사랑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실한 사랑은 흔한 것이 아니고, 인생은 영원할 수 없으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도 깨닫지 못 한 채 잃어버리는 사람도 많으니 말이다. 하니, 만약 최근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상실감에 고통스러운 분들이라면 한번 이 책을 읽어 보심도 좋지 않을까 한다. 솔직하고 용감하게 고통을 받아들이는 저자의 모습에서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살아갈 용기는 아닐지라도, “아들아 잠잠하여라, 너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와 같은 적어도 버텨낼 용기, 견뎌낼 위안은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추측해 보면서….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이네사’님은?
강력 추천작, 추천작, 추천애매작, 비추천작 등 네 가지 카테고리로 리뷰를 쓰는 개성 강한 북로거. “재미없는 책은 가라!”라는 모토 하에 블로그를 운영하던 중  2008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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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젠카 2009/10/01 10:41 # 답글

    저는 작년에 (잃어버린 사람은 없지만^^;)우울증에 걸렸는데, 신경정신과에서 처음 진료를 받고 나와 도서관에서 이 책을 꺼내 읽었지요. 그 자리에서 한번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어쩜 이렇게 정확하게 묘사를 하는지... 특히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이 문을 쾅 닫아버린다는 표현 등에 정말 그렇다며 공감했어요.
  • 반디앤루니스 2009/10/01 13:50 #

    하나님이 문을 쾅 닫아버린다...
    늘 관대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 모습이 잘 상상이 가지 않네요.
    그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는 거겠제요..
    지금은 건강하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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