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 나오코, 그리고 그녀 오감의 소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0.11 - 넬, 나오코, 그리고 그녀

「Afterglow」

어떻게 만나졌는데 얼마나 힘들었는데
다시 만나지기까지 얼마나 돌아왔는데
가지 말고 머물러줘 놓지 말고 날 잡아줘
부디 함께

어떻게 지켜왔는데 얼마나 소중했는데
정말이지 미친 듯이 많은 눈물 쏟았는데
잊지 말고 기억해줘 소중하게 간직해줘
부디 함께 호흡해

의 시간들이 멈추려 할 때쯤
말없이 내 손을 꼭 붙잡아 줘요
그리고 니 몸을 내게 기울인 채로
내 왼쪽 귓가에 아주 조용하게
하지만 선명히 내게 말해줘요
너 역시 나에게 진심이었다고
우린 서로에게 참 소중했다고
진심이었다고

* Album from 넬 『Separation Anxiety』「Afterglow」 중

나를 사랑했어야 하는 것을

최근 몇 년간 소설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평소 좋아하던 몇몇 소설가의 작품을 제외하면 소설이라는 장르에 큰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단지, 내가 좋아하는 박민규의 소설이기에 구입한 것이었다. 한 온라인 서점에서 연재한다는 소식도 들었던 것 같지만(소설 보다 더 관심 없는 장르가 인터넷 연재소설이다) 어떤 이야기인지 알지 못했다. 물론 그 편이 훨씬 나았다고 생각하지만.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우리에게도 꽤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클래식은 당연하거니와 재즈 쪽에서도 종종 연주될 만큼 널리 알려졌다. 책날개를 보니 라벨은 1899년 루브르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가 그린 ‘왕녀 마르가리타’의 초상을 보고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하며, 또 다시 박민규는 두 작품에서 힌트를 얻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차용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커버는 아름다운 왕녀들이 아닌 그림 오른쪽 끝부분에 있는 아름답지 않은 그녀를 부각시킨다. 누군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지 않겠는가마는(특히 아름다운 것=선한 것=착한 것으로 이어지는 등식은 고대뿐 아니라 지금에도 통용되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그녀는 아름답지 않았지만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글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울었다. ‘그냥 눈물이’ 났다. 소설을 덮고 나서 한참을 울었다.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워서였다고 해도 좋고, 지독한 동일시를 겪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좋다. 또 빛이 존재하지 않았던 나의 스무 살이 너무나 서글퍼서였다고 해도 좋다. 그들이 사랑했던 스무 살이 아닌 사랑을 기억하는 서른네 살에 가까워진 나는, 펑펑 울면서 나를 먼저 사랑했어야 했다는 걸 깨닫는다. 제가... 부끄러운가요... 라고 묻지 않아도 될 만큼 나를 사랑했어야 했단 것을. 

넬, 나오코, 그리고 그녀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을 떠올렸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41살인 박민규가 18살이던 1986년을, <노르웨이의 숲>은 37살이었던 하루키가 20살이던 1969년을 기억해낸 작품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는 “암스테르담을 이륙한 비행기는 어떤 흔들림도 없이 프랑크푸르트를 향해 날고 있었다.”(362쪽, 당시 34세)고 이야기하고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서른일곱 살이던 그때, 나는 보잉 747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 거대한 비행기는 두터운 비구름을 뚫고 내려와,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35쪽)며 스무 살을 회상한다(전자는 결말 배치이며 후자는 서두 배치,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시점이다).

그들에게 스무 살은 혼돈의 나이였고 터널을 통과하듯 길고 긴 어둠이었다. 그 속에서 만난 건 빛이 되는 사랑이었다. 그녀는 “그래도 날 사랑해 줄 건가요?”라고 묻고 나오코는 “나를 꼭 기억해 주었으면 해요”라고 이야기한다. 하루키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기서 그려 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간명한 테마입니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적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즈의 곡목이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라벨의 곡에서 비롯된 제목이다. 소설의 일부 챕터가 곡 제목으로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소설 안에서 음악이 녹아들어 있다는 점도 두 작품의 유사점이다. 그 외에도 등장인물의 연결고리나 “죽음은 삶의 대극(對極)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노르웨이의 숲>의 대전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도 적용된다. 너무 자세히 짚어나가면 반전이자 감동의 묘미가 줄어들 테니 여기까지만. 

두 작품의 유사성에 대해 단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숲>이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내 안에서 서로에게 더 큰 울림을 주고, 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와타나베에게, 나오코에게, 그에게, 그녀에게, 그들은 “서로에게 참 소중했다고 진심이었다고”.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재즈피플> 보러가기(클릭)] 

- 넬의 「Afterglow」는 반디앤루니스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bandinbook)에 올립니다. (2009.11. 4.)
  [음악 들으러 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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