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 여전히 소중한 하루키의 소설들 블로거, 책을 말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1Q84>, 문학동네, 2009

나는 문학과는 거의 반대편에 있다고나할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30대의 직장인이다. 이런 직종에서는 소설을 읽는다, 하루키를 아느냐, 라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조롱의 대상이 될지 모르는 그런 분위기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것이 싫다. 그런 이유로 여태 누구와도 <1Q84>에 대해 혹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그것은, 나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책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거나 어떤 등장인물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그 어떤 것보다도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어서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자 한다면 그 어떤 소중함이 깨어질 것 같은 두려움마저 느낀다. 그냥 나 혼자 웃고 때론 눈물지으며 감동받으면 그만.

문학동네 홈페이지를 통해 알게 된 이번 리뷰대회 소식을 듣고, 나 스스로 <1Q84>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애정을 한번쯤 정리해보고자 생각했다.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지만 혼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단편들을 찾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일어원서를 뒤지고, ‘하퍼스 매거진’, ‘뉴요커’를 주문해서 영어사전을 뒤지며 보낸 숱한 시간들을 30대가 끝나기 전에 한번쯤은 정리해보고 싶었고 이번이 마침 그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1Q84>는 기본적으로 연애소설

“단 한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에는 구원이 있어. 그 사람과 함께하지 못 한다 해도.”(1권, 408쪽)

<1Q84>는 기본적으로 연애소설이다. 주인공 덴고와 아오마메는 이 소설의 시점이 되고 있는 1984년으로부터 20년 전 초등학교 3, 4학년 동안 동급생이었다. 몹시 맑은 12월 초순의 오후, 방과 후 청소가 끝난 교실에 우연히 둘만 남게 되었고 둘은 한동안 말없이 손을 꼭 잡았다. 아오마메는 곧 전학을 가게 되고 각각 서로를 마음에 품은 채 성장하게 된다. 오래된 재즈 레퍼토리 「페이퍼 문」의 노랫말처럼. 아오마메가 없는 세상은 연극 무대에 걸린 종이로 만들 달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낀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게 아무리 형편없는 상대라 해도, 그쪽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인생은 지옥은 아니다. 가령 약간 암울하긴 하더라도.”

“만일 너의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싸구려 축제(honky-tonk parade)에 지나지 않아.”


아오마메는 킬러가 되고, 덴고는 수학 강사이자 작가지망생으로 성장해서 서로 모른 채 같은 도시에서 살아간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소설을 구상할 때 덴고와 아오마메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생각해내고, 이것으로 소설이 완성될 수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소설은 기본적으로 12살 때 서로를 좋아했던 소년 소녀가 20년 후에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될 것인데, 이것을 최대한 복잡하게(지구는 둥글고 인생은 복잡하다) 적어보자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독자가 등장인물과 연애를 하게 만드는 소설

장편소설의 매력은 단순히 스토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스토리만 있다면 그것은 영화가 될 수도 있고 만화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1Q84>가 소설이 되어야만 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1Q84>의 구성은 1권, 2권, 각 24장, 총 48장으로, 이것은 본문 속에서도 언급되듯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에 대한 오마주이다.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수학자에게는 그야말로 천상의 음악이다. 12음계 모두를 균등하게 사용하여 장조와 단조로 각각 전주곡과 푸가를 만들었다. 모두 합해서 24곡. 제1권과 제2권을 합쳐서 48곡. 거기에 완전한 사이클이 형성된다.”(1권 p.438)

전주곡과 푸가가 반복되듯이 이 소설 역시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가 한 장(章)씩 반복된다. 천천히, 문장을 음미하면서 이 소설을 읽다보면 독자인 우리는 많은 등장인물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독자가 등장인물과 연애를 하듯 등장인물의 한 마디, 한 순간의 표정에 눈물짓고 가슴 두근거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덴고와 아오마메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인물 - 17세의 소녀 후카에리, 여경찰 아유미, 보디가스 다마루에게까지 독자는 사랑을 느낀다. 작가의 등장인물과 성장배경에 대한 세세하고도 진실된 묘사가 그 실재감을 더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분석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등장인물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는 하루키의 중년 이후 소설들의 한 특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루키 문학의 탈개인화

한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빠져있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비웃는 시절이 있었다. 일인칭 시점의 개인의 소소한 일상.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말주변 없고 내성적인 고도자본주의 시대의 소외된 남성상이라고 할 수 있을 개인 중심의 문체 - 그것이 오랫동안 하루키 문학의 특성인양 여겨져 왔다.

나는 이런 성향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오랜 기간 동안 서서히 느껴왔다. <헌팅 나이프>에서 여행지에서 만난 장애인 청년에 대한 애정에서도 느꼈고, <토니 타키타니>의 악단 주변을 떠돌던 아버지의 인생에 대한 묘사에서, 그리고 <렉싱턴의 유령>에서 아내의 죽음을 맞이한 후 3주간 잠들어있는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도 3주일간 잠들어있던 친구의 이야기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라고 소리치던 발랄하고 기발한 하루키의 젊은 모습은 서서히 희미해져 아득한 옛날의 기억처럼 느껴지고, 이제는 <우연의 여행자>에서처럼 양성성을 지닌 피아노 조율사가 유방암에 걸린 누나와 재회한다던가, <어딘가 그것을 찾을 것만 같은 장소에서>처럼, 지금은 코끼리인지, 우산인지, 올드 패션드 도넛 같은 건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을 찾고 나면 자신이 찾던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어떤 입구를 찾는 사립탐정의 이야기랄까, <Birthday Gir>』에서처럼 인간이 자기 자신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 이하의 존재가 된다는 것과 똑같은 만큼의 깊은 죄악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수준 높은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로서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일본과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소설가로서의 면모를 <1Q84>를 읽으면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복잡한 <1Q84>의 줄거리

먼저 <1Q84>의 줄거리를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주인공 덴고와 아오마메는 이 소설의 시점이 되고 있는 1984년으로부터 20년 전 초등학교 3, 4학년 동안 동급생이었다. 몹시 맑은 12월 초순의 오후, 방과 후 청소가 끝난 교실에 우연히 둘만 남게 되었고 둘은 한동안 말없이 손을 꼭 잡았다. ‘증인회’라는 종교단체 신자의 자녀인 아오마메는 곧 전학을 가게 되고 각각 서로를 마음에 품은 채 성장하게 된다.

아오마메는 체육대학을 나와 마셜아츠 강사가 된다. 한때 수강생이었던 노부인을 만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아내를 때리는 나쁜 남자를 죽이는데 일조하면서 비밀스러운 킬러가 된다. 인륜의 범죄를 저지르고 한 여인의 인생을 망가뜨려 버리고도 뻔뻔히 살아가는 나쁜 남자들을 벌하는 역할을 맡게 되어 두세 명 정도 더 죽이게 된다.

덴고는 사설학원에서 수학강사로 일하며, 한편 문학상에 꾸준히 응모하는 예비작가이다. 어느 날 신인상 응모작 중에 눈에 띄는 소설 한편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1Q84>의 가장 큰 중심사건이랄 수 있는 후카에리와의 만남이다. 후카에리가 응모한 작품은 <공기번데기>라는 소설인데 문장력은 미흡하지만 환상과 실제의 경계를 배경으로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1984년, 아오마메는 킬러가 되고 덴고는 후카에리를 만난다. 아오마메는 언젠가 고속도로 갓길에 택시에서 내리면서부터 세상에 달이 두 개가 떠있는 것을 알게 되고 이것을 그 이전의 시절과 구분 짓기 위해 1Q84년이라고 이름 짓는다. 자신을 둘러싼 질문들(Questions)로 가득한 세계라는 의미에서.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는데, 이것을 제대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본문 중 소액자처럼 등장하는 작은 이야기들도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인데, 후카에리의 <공기번데기>와 <고양이 마을 이야기>가 그것이다. 공기 중에서 실을 뽑아 커다란 고치를 만드는 이야기와, 이곳저곳을 여행하다가 고양이들이 사는 마을에 숨어 지내는데 실제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더라는 이야기는, 이 소설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소설 전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지만 이런 것까지 연관해서 줄거리를 뽑기에는 내 재능이 턱없이 부족하므로 좀 더 표면적으로만 스토리를 훑어보겠다.

<공기번데기>라는 소설이 계기가 되어 덴고와 만나게 된 후카에리는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다. 1970년대 운동권 세력의 공동체였다가 점차 종교단체로 변한 ‘선구’라는 집단이 있었다. 후카에리는 이곳 지도자의 딸이었는데 ‘선구’가 어떻게 비밀스러운 종교단체로 변화하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공기번데기>가 담고 있는 어떤 비밀로 인해 후카에리는 은신해야만 하고 후카에리 주변의 인물들은 하나씩 사라져간다.

아오마메는 조용하게 몇몇 죽어 마땅한 인간을 벌한 후 마지막 살인의 목표를 설정하게 되는데, 그 사람은 어떤 종교집단의 리더였다. 그는 열 살 난 어린이들을 상대로 교접하는 사이비종교집단 ‘선구’의 리더이다. 살인을 준비하는 동안 아오마메의 주변에도 사람들이 하나씩 끔찍하게 죽어가는 일이 생긴다. 덴고는 자신과 만나던 유부녀, 자신을 아끼던 편집자의 실종을 겪으며 자신 역시 <공기번데기>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후카에리와 ‘선구’에 얽힌 비밀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오마메가 ‘선구’의 리더를 만나게 되는데, 그를 살해하려고 하지만 ‘선구’의 리더에게서 저항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모든 것에 있어 선과 악이 명료하지 않고 그는 실제로(육체적으로) 죽어가고 있었으며,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도 알 수 없는 신의 계시에 의해 몸에 마비가 오고 그 상태에서 어린 소녀들이 자신과 교접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생리가 없는 소녀가 잉태를 해야만 신의 섭리를 증명할 수 있으므로). 리더는 스스로 죽기위해 아오마메를 택했다고 말하며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 탁상시계를 공중에 부양시키는 능력을 선보이기까지 한다. 아오마메는 결국 그 남자를 죽인다.

아오마메가 리더를 죽이던 그 시각, 덴고는 마치 그 리더가 그랬듯이, 정신은 말짱하지만 몸 전체가 마비되는데 그때 후카에리가 자신에게 다가와 후카에리와 몸을 섞게 된다. 그러고 난후 동네 놀이터로 나와 밤하늘을 바라본다. 최후의 살인에 성공한 아오마메는 자신이 은신해있는 맨션에서 창밖을 통해 보이는 놀이터를 바라본다. 그 놀이터에 앉아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가 20년 전의 덴고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덴고 역시 자신처럼 두 개의 달을 바라보고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1Q84> 3편이 쓰여져야만 한다면

위의 줄거리에는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다. <공기번데기>의 환상적인 줄거리도 생략했고, 매우 중요한 개념이랄 수 있는 퍼시버와 리시버의 개념도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지각하고, 너는 받아들인다.”

후카에리가 쓴 <공기번데기>라는 소설은 실제의 이야기였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리틀 피플과 퍼시버의 출현은 비유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 후카에리가 경험한 일이었다. 후카에리는 리틀피플의 도움을 받아 공기번데기를 만들게 되는데, 그 번데기 속을 열어보니 후카에리와 똑같이 생긴 육체가 놓여 있었고, 그 두려움으로 인해 후카에리는 ‘선구’를 빠져나와 도시로 탈출하였다.

‘리틀피플’이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를 구분 지을 수 없지만, 일단 ‘어떤 사악한 세력’이라고 가정해 보았을 때 리틀피플은 공기번데기를 만들어 그들의 뜻을 전달하는 ‘퍼시버=지각하는 자’를 만들어내고, 리틀피플의 뜻을 세상에 실천하는 도구로서 ‘선구’의 리더를 선택했다(리시버=받아들이는 자).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어린 소녀와 교접하는 종교지도자는, 리틀피플의 시점에서 볼 때는 퍼시버와 리서버로서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리틀피플은 현세에 그들의 뜻을 실현시킬 신적인 존재를 잉태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리시버인 리더는 스스로를 살해했다. 아오마메의 손을 빌려서. 그렇다면 덴고와 교접하던 후카에리 역시 공기번데기에서 만들어진 퍼시버이고, ‘선구’의 리더(즉, 리시버)가 죽었을 때 덴고가 그 리시버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고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1Q84의 세계에서 덴고가 리틀피플의 리시버가 되었다는 것으로 2편은 일단 종결을 맺는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3편은 어떤 식으로 이어져야 할까. (실제 어떤 인터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미 3편을 집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3편의 주된 내용은 일종의 환상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공기번데기>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하루키가 말하는 ‘강함’의 의미

가끔 하루키의 소설을 줄거리로만 생각해보면 너무나 황당하고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해변의 카프카>의 경우, 가출한 15세의 소년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세의 소년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무작정, 가장 설명되지 않을 곳으로 떠난 곳이, 자신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소도시였고 그곳에서 자신의 아버지의 예언 - 너는 나를 죽이고 너의 누나와 너의 어머니와 교접할 것이다 - 을 실행하게 된다. 물론 나카타라는 노인과 해변의 카프카라는 그림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지만.

조금 더 일찍이 <태엽감는 새 연대기>에서도 이런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 - 사라져버린 아내와, 영매의 등장과, 몽골과 소련의 국경에서 겪은 마미야 중위의 끔찍한 경험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보다 복잡해지고 환상적이 되어가고 있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는 22세의 여성 스미레가 17년 연상의 뮤라는 여성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리스에서 함께 몸을 탐닉했던 밤 이후에 실종되어 버리는 이야기 역시 이러한 하루키의 특징을 조금씩 보여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런 하루키의 전작과 비교해볼 때, 그 중심을 흐르고 있는 테마가 있다면 (이런 것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불과해서 단언하기 쉽진 않지만) 그것은 ‘상실에 대한 슬픔과 극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정 나이를 넘으면 인생이란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의 연속에 지나지 않아요.” <1Q84>에 나오는 대사처럼, 하루키의 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 하나의 일관된 테마는(굳이 말하자면) 아마도 상실에 대한 슬픔과 극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추구하는 강함은,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강함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받아 거기에 견뎌내기 위한 강함입니다. 불공평함이나 불운, 슬픔이나 오해, 몰이해 - 그런 것에 조용히 견뎌나가기 위한 강함입니다.”(<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자기 자신을 상실하지 않는 것. 그런 강함. 무라카미 하루키의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스토리 속에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카를 융은 어느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어. ‘그림자는 우리 인간이 전향적인 존재인 것과 똑같은 만큼 비뚤어진 존재이다. 우리가 선량하고 우수하며 완벽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림자 쪽에서는 어둡고 비뚤어지고 파괴적으로 되어가려는 의지가 뚜렷해진다. 인간이 스스로의 용량을 뛰어넘어 완전해지고자 할 때, 그림자는 지옥에 내려가 악마가 된다. 왜냐하면 이 자연계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 이하의 존재가 된다는 것과 똑같은 만큼의 깊은 죄악이기 때문이다.” (<1Q84>2권, 325쪽)

<1Q84>에서도 언급된 이 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른 소설 속에서도 비슷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떤 희망을 가지건, 어디든 멀리 가게 되더라도, 사람들이 자기 자신 이상의 어떤 것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No matter what they wish for, no matter how far they go, people can never be anything but themselves.”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중, <하퍼스 매거진>에 수록되었지만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단편 중에서 <Birthday Girl>이라는 소설에서 주제가 될 만한 대사이다. 간단히 이 미번역 소설의 줄거리를 말해보자면, 주인공은 오늘 20세 생일을 맞이하였지만 몸이 아프다는 동료의 말에 대신 생일날에까지 레스토랑 서빙 일을 맡아주기로 한다. 그 레스토랑의 사장님은 비밀스럽고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수수께끼의 할아버지였는데, 그날 그 사장님의 방에 처음으로 식사를 배달하게 된다.

사장님은 그녀가 20살의 생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녀에게 소원을 한 가지 말해보기를 권한다. 20세 생일인데도“난 특별한 일이 없어. 오늘이 내 스무 번째 생일이라고 해도 말이야.”라면서 동료의 부탁을 들어준 착한 소녀에게 어떤 소원이든지 한 가지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식기를 되가져갈 때까지 생각해본 소녀는 사장님에게 위와 같이 말한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 이상의 어떤 것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소원은 이루어지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는 소설이었다.

“나는 언젠가 어디선가 그를 어쩌다 만날 거야. 우연히. 그때를 소중하게 기다릴 거야.”

아오마메의 이야기처럼, 자기 자신을 상실하지 않는 것, 주변의 온갖 몰이해를 조용히 견뎌내는 것, 그런 소중함을 간직하는 것. 내가 하루키를 즐겨 읽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reviewed by 벌꿀파이

*본 리뷰 ‘여전히 소중한 하루키의 소설들’은 문학동네와 반디앤루니스가 함께한 <1Q84> 리뷰대회 1위 수상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