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ll> - 심심함 혹은 담백함 반디 음악 광장

노라 존스, <The Fall>, EMI, 2009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녀는 주목을 받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놓여 있다. 다이아몬드 레코드를 기록, 재즈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레코드 중 하나라는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낸 『Come Away With Me』는 물론이거니와 잇따른 두 앨범의 플래티넘 성공가도, 딱히 시비를 걸 틈을 주지 않는 특유의 보편적인 정서는 그렇다고 쳐도 포크와 블루스, 재즈와 보컬 팝을 너무도 쉽사리 자연스레 넘나드는 음악적 행보는 조금은 질린다 싶을 정도로 ‘완벽한’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녀가 독특한 건 전통적인 의미의 장르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통상적인 분류 기준에 의거, 스탠더드 보컬 팝 혹은 컨템포러리 보컬 재즈로 치부하기엔 일견 그 스펙트럼이 넓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이상을 시원스레 넘어서는 실험적인 마인드를 보여준 적은 일찍이 없다. 어떤 의미에서 노라 존스라는 인물은 하나의 음악적인 ‘이미지’나 ‘색채감’에 가깝다는 느낌을 갖는다. 어떤 장르나 스타일로서 규정되는 뮤지션이 아니라 그 외모며 분위기, 목소리와 연주 등이 어우러진 하나의 ‘정서’ 말이다. 노라 존스는 바로 그 지점에서 늘 성공을 거두어 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따라서 그녀의 변신은 한편으로는 예견되어 왔던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크나큰 위험을 내포한다. 사실 ‘변신’이라는 키워드는(글 쓰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쉬운 유혹의 어휘인) 이번 앨범에 함부로 적용하기가 껄끄러운 면이 없지 않다. 변한다는 것이 무얼까. 그 화학적 성질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애당초 전통적인 장르의 파격을 통해 이루어지는 변신에 대한 의지가 없는 존스의 음악에 함부로 ‘변화’나 ‘변신’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일 수 있을까. 형식적이다. 별다른 할 말이 없어 내뱉는 상투에 가깝다.

그래서 이번 노라 존스의 의도는 ‘비꼼’이라 말하고 싶다. 조금 틀어져 보기. 대놓고 막나가는 탈선은 아니지만 흑심을 슬쩍 감춘 채 은근히 삐져나온 ‘썩소’ 비슷한 일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Don't Know Why」의 그녀는 역시나 그대로 남아 있다. 그 해석과 방식의 양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미 전작 『Not Too Late』(2007)에서도 살짜쿵 비슷한 암시를 던졌지만 이제는 조금 더 그 의도를 분명히 하려 한다. 언뜻 그 키워드는 모던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지향성이다. 나이에 비해 턱없이 노티나는 이미지로 호소해 온 그녀가 아닌가. 『Chasing Pirates』는 그 노티나는 피아노와 스트링의 터치를 버리고 살랑살랑 바람 날리는 청량한 기타 소리로 그 공간을 대신 메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탐 웨잇츠(Tom Waits)와 아방가드로 세계를 구축하더니 어느덧 킹스 오브 리언(Kings of Leon)의 블루지한 분위기를 한껏 살려 낸 바 있는 자콰이어 킹(Jacquire King)에게 조타수를 맡긴 결과다.

덕분에 분위기는 살짝 달뜨고 목소리에서는 모던한 소녀들의 에너지가 감지된다. 좋은 의미에서 프로페셔널한, 노련하고 성숙한 여성 모던로커로의 재발견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정작 앨범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트랙들은 오히려 컨트리와 블루스, 포크와 루츠 록의 어디쯤을 복합적으로 뒤섞은 차분하면서도 조금은 난해한 사운드로 채워진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은 노라 존스라는 지극히 통제된 이미지에 다시금 수렴된다. 릴리 앨런(Lili Allen)이나 그웬 스테파니(Gwen Stefani)까지는 안 바라도 모던하고 인디(쉬)한, 조금은 발칙한 록을 기대하기에는 한참 미적지근해 보이는 태도, 그렇다고 마냥 블루지하고 끈적한 서던 사운드를 떠올리기엔 이미 현대적인 컨템포러리 재즈에 최적화된 보컬의 결, 로(Raw)하지 않고 단정히 책의 한 챕터 한 챕터를 조근조근 넘기는 듯 유기적으로 엮여 들어가는 곡 배치와 만듦새도 그녀가 이미 구축한 규범적인 이미지의 틀을 어긋나지 않는다.

성과도 한계도 바로 그 지점에서 얻어진다. 하지만 그 조금은 지나친 듯한 사운드 통제력, 장르를 슬쩍 넘나들며 서로 다른 편곡으로 치장하면서도 자연스레 재생산되는 보수적이면서 안정적인 ‘심심함’ 혹은 ‘담백함’ 역시 누구나 쉽게 성취할 수 있는 미덕은 아니다. 어떤 편곡, 어떤 구성 속에서도 노라 존스의 음악이라는 그 독특한 표식은 어떤 식으로든 너무도 쉽게 발견되며 애써 구축해 온 이미지를 버리지 않고도 다양한 사운드의 실험에 도전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단순히 프로듀서나 제작자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아티스트쉽을 가진 이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뮤지션으로서의 높은 경지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투째지’ 님은?
웹진 음악취향Y(cafe.naver.com/musicy)를 아지트 삼아 넷상에서는 투째지(toojazzy)라는 필명이 김영대라는 본명보다도 익숙해진지 13년째.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등 몇 권의 책도 썼지만 인세나 원고료를 통한 밥벌이는 꿈도 못꾸고 있는 세미프로 음악 평론가. 음악이 세상을 구원해 줄 날을 고대하며 현재는 미국 시애틀에 머물며 워싱턴대에서 음악 인류학(ethnomusicology)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