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 짙은 안개를 뚫고 들어온 하나의 빛 책, check, 책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키, <죄와 벌>, 열린책들, 2009

수평선 아래로 지지 않는 태양, 밤이 돼도 눈을 감지 못하는 대지. 한여름 밤의 더위가 영원할 것 같아 불길하다. 상의를 거의 벗어젖힌 채 순찰을 돌고 온 경비원의 발에 도끼 한 자루가 밟힌다. 이건 뭐지. 아무 생각 없이 도끼를 잡는 순간, 끔찍한 환영이 그의 눈앞에 펼쳐진다. 도끼를 높이 들고 전당포 노파의 머리를 가격하는 라스꼴리니꼬프. 노파는 큰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녀의 머리는 시뻘건 피와 뇌수를 쏟아낸다. 피비린내에 구역질이 먼저 날 것 같지만, 그의 이성은 어느 때보다 또렷하다. 그렇게 그는 살인자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라스꼴리니꼬프는 실신하듯 침대에 쓰러진다. 잠을 자는 것일까.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고 오지 않았다. 하지만 피 냄새가 그의 몸에 묻은 것 같고, 사나운 사내들이 피 냄새를 맡고 그를 쫓아올 것 같다. 얼마 후 그의 신실한 친구 라주미힌과 사랑하는 어머니, 여동생 두냐가 찾아온다. 반갑지 않다. 애초 삶의 무게가 무거웠던 그는 살인을 통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강 건너 홀로 서있는 그는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그들을 대할 수 없다. 그는 걷잡을 수 없는 광기와 혼돈에 휩싸인다.

한 가지 극복할 수 새로운 감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하게 그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마주치는 모든 것,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끊임없는, 거의 생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혐오감이었다. 그것은 집요하고 사악한, 증오에 가득 찬 혐오감이었다. 그는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혐오스러웠다. 그들의 얼굴, 발걸음, 행동거지, 모든 것이 그랬다. 만일 그때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면, 그는 그 사람이 누구이든 상관없이 그에게 침을 뱉든지, 그를 물어뜯어 버렸을 것이다…….
(163쪽)

작품 속 인물들은 안개 속을 헤맨다. 라스꼴리니꼬프가 노파를 살해한 동기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고리대금업자란 사회악을 제거하기 위해, 먼 미래에 세상을 밝힐 자신이 지금 필요한 돈을 구하기 위해서라 하지만 자신에게조차 확신을 주지 못한다. 자신도 노파처럼 별 볼일 없는 사람이며, 더욱이 살인자란 생각은 그를 끝없이 괴롭힌다. 라주미힌과 두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라스꼴리니꼬프가 왜 힘든지 알 수 없다.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괴로울 뿐이다. 마침표를 찾을 수 없는 지독한 고뇌의 순환 고리다.

안개 속에 도사리는 위협

라스꼴리니꼬프 앞에 예심 판사 뽀르피리가 나타나면서 혼돈은 극한의 긴장감으로 전이된다. 뽀르피리는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라스꼴리니꼬프를 괴롭힌다. 뽀르피리는 휴학 중인 법대생이 범인이라고 확신하면서 그를 전방위로 압박한다. 무척이나 재밌는 놀이처럼 말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지만 혼미한 정신을 다잡고 뽀르피리와의 일전을 준비한다. 승산도 있다. 뽀르피리는 물증이 없다. 이제 이야기 전개는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설전을 벌이는 양상으로 변하고, 긴장감을 배가된다. 또 본능적인 자기 방어를 위해 눈에 독기를 품을 라스꼴리니꼬프의 모습에서는 인간의 잔인함마저 느껴진다.

“당신은 온통 거짓말을 하고 있군요.” 그는 입술을 비틀어 창백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또 내가 한 장난과 내 대답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거지요.” 그는 벌써부터 자기가 어떤 말을 해야 되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말했다. “당신은 나를 겁주거나…… 아니면 그냥 나를 가지고 노는 거겠지.” 이 말을 하면서도 그를 노려보는 라스꼴리니꼬프의 눈에서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증오심이 번뜩였다.
(507~508쪽)

여기서 작가의 진가가 발휘된다. 상대방이 손에 쥔 패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두 인물이 펼치는 머리싸움은 숨 쉬기조차 힘들게 만든다. 특히 작가의 탁월한 사건, 심리 묘사는 독자마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몰아 넣는다. 안개 속 발걸음은 느리다. 하지만 앞에 뭐가 있는지 몰라 무척 조심스럽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대사와 심리 묘사 중심으로 느리게 전개되는 것 같지만, 매우 단단한 결을 가지고 있어 매 순간 상황 속으로 몰입하게 만든다.(살인자가 노파가 살아나는 환상을 보는 장면은 눈앞의 것처럼 생생한 공포를 전한다.)

모든 게 혼란한 상황에서 ‘죄와 벌’이란 제목만큼은 명확해 보인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한 이치니까. 하지만 이 또한 명확하지 않다. 이미 더러운 세상에서 무엇이 죄이며, 누가 죄를 벌할 수 있단 말인가. 가난한 이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노파를 죽인 건 죄인가. 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여인 소냐와 가족을 위해 루쥔의 청혼을 받아들인 두냐 중 누가 더 순결한가. 또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음식에만 탐욕스런 눈길을 보내는 이들은 정당한가. 그 눈길로 인해 한 여인이 미치고 결국엔 죽음을 맞이했는데 말이다.

지독한 안개 속, 출구는 없을까. 빛은 그 두터운 안개를 뚫지 못할까. 작가는 라스꼴리니꼬프에게 빛이 들어올 수 있는 작은 바늘구멍 하나를 만들어 준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의 아버지 마르멜라도프의 장례를 도와주면서 그녀와 가까워진다. 소냐는 자신을 길거리 여인이 아닌 그냥 여인으로 바라보는 라스꼴리니꼬프를 사랑하고, 그 또한 여인을 만날 때는 세상에 대한 적개심을 거둔다. 신, 구원이라는 이상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한 사람’으로 인해 ‘그의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

지옥 같은 세상을 살게 하는 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외롭지 않게 하는 건, 단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반디의 한 마디 더!

‘<죄와 벌>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3음절이 넘는 이름을 외우기 싫어 첫 도전에서는 100쪽도 넘기지 못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재.미.있.었.다. 삶, 구원에 대한 작가의 깊은 고민과 치밀한 묘사를 통한 이야기 전개는 책 잡기보다 놓기를 더 힘들게 했다. <죄와 벌>은 지난 11월 14일 ‘책을 좋아하는 사람’(‘ 책좋사’) 정모에서 선물로 받은 책이다. 좋은 책을 선물해주신 블로그 이웃 오우아님과 항상 책과 함께 즐거운 책좋사에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 반디 (ak20@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