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뒤를 돌아보며 민용 in 재즈피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16 - 길 위에서, 뒤를 돌아보며

「삶은 여행」

눈물 잉크로 쓴 시, 길을 잃은 멜로디
가슴과 영혼과 마음과 몸이
다 기억하고 있어
이제 다시 일어나 영원을 향한 여행 떠나리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 없으니
수많은 저 불빛에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
바라봐 

* Album from 이상은, 『The Third Place』「삶은 여행」


길 위에서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걸까

2010년 첫 번째 ‘책과 음악 이야기로 써야지’ 하고, 꼽아두었던 책들을 멀찍이 밀어놓은 것은 이른바 ‘하이퍼텍스트’ 때문이었다. 유재현의 <거꾸로 달리는 미국>을 몇 페이지 넘기다가 줄줄 쏟아지는 존 스타인벡 이야기에 <분노의 포도>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러다 혹시나 싶어 잭 케루악을 쳐보니, 그토록 기다리던 <On The Road>가 민음사에서 완역판으로 나온 것이 아닌가. 결국 <분노의 포도>도, <거꾸로 달리는 미국>도, 초안을 잡아두었던 ‘책과 음악 이야기’도 모두 <On The Road>에 밀려났다. 사실 나는 <On The Road>의 영어판을 가지고 있다. 몇 해 전 구입했지만 아직 첫 장도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린 <On The Road>를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소위 비트 제네레이션이라 불린 세대와 문화를 알고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잭 케루악이 3주 만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것처럼 글이 가는대로 느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긴, 무언가를 생각하며 텍스트를 따라가는 것이 어리석게 느껴질 만큼 이 소설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이기도 했다. 오히려 나는 소설 속에서 1950년대를 전후해 “아우성치고 울부짖고 있는”(1권 144쪽) 비밥을 만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잔존 기억 같은 “중국으로 가는 느린 보트”(1권 124쪽)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의 우리가 얼마나 댄과 샐에게 공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그 혼돈에서 댄과 샐이라는 이름만을 지운다면, 그래서 남는 것이 ‘젊음’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그들은, 그때에, 무엇이 그렇게 가슴 터질 듯 견딜 수 없었을까? 무엇 때문에 자기 파괴적일 정도로 젊음을 소모했을까? 그들이 떠난 길 위에는 그 질문이 버려졌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을 주워들었다. 나의 10대 혹은 20대는 조로(早老)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도 어려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생각들은, 어른이 되니 어려 보인다. 어른이 물리적인 나이만을 의미하진 않지만 분명 물리적인 나이가 가져오는 생각이 있다는 걸,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다. 나만은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던 그 생각들이 이렇게 훌쩍 내게도 다가와 버린 것이다. 

나는 아직 먼 여행을 떠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우습게 들릴 이야기겠지만 길 위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삶이 선로(線路)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정되어 있지만 가보기 전엔 알 수 없었던, 돌아보면 그제야 달려온 길이 보이는.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여행’ 이야기다. 내게 해외여행이라고는 몇 해 전 ‘밤 도깨비 여행’이라고 부르는 1박 3일 일본여행이 전부다. 아무 계획도 없었다. 당시 내게는 여권도 없었다. 지인의 동생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즉석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고 여권용 사진을 찍었다. 삶은 언젠가 끝난다. 어쩌면 이토록 허무하게.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다.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가장 싼 일본 여행 패키지(당시 엔화 800원 정도여서 30만원이 되지 않았다)를 예약했다.

새벽 3시로 예정되어 있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 내 귀에서는 리처드 용재 오닐의 「Lachrymae(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창밖에도 주룩주룩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있을 즈음 버스가 멈췄다. 밤 11시, 인천공항으로 갈 것이라 믿었던 버스가 김포공항 근처에 멈춰 선 것이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이렇게 저렇게 하면 인천공항에 갈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지만, 이미 나는 패닉 상태였다. 낯선 곳에 남겨져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인천공항 근처에 산다는 아저씨와 함께 막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휴. 얼이 빠져 공항 이쪽저쪽을 뛰어다니다가 입국수속을 밟지 못해서 다시 얼이 빠졌다가(정말 이 이야기를 하려면 ‘지루하게’ 20분은 걸린다), 험난한 난관을 뚫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데 내릴 때가 가까워오자 갑작스러운 공포가 밀려오는 것이 아닌가. ‘비행기가 폭발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갈 곳이 없었다. 서울과 비슷한 도쿄를 걷고,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마시고, 요요기 공원에서 줄리 런던의 노래를 듣고, 해질녘 우에노 공원 앞에서 다코야키를 먹고, (그곳에 살고 있던 친구들을 잠깐 만나기는 했지만) 마치 고독에 익숙해지기 위한 여정 같았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는 제법 씩씩해진 모습으로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새벽 3시, 다시 인천공항.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뜨거운 커피를 옆에 놓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꺼내고 시디를 바꿨다. 숙소 근처 중고 음반가게에서 380엔을 주고 구입한 바비 맥퍼린의 1998년 작 『Simple Pleasures』였다. 첫 곡이 흐르자 웃음이 났다. 인천공항에 「Dont Worry, Be Happy」가 울려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겁 없던(그리고 우울했던) 그 여행 ‘덕분’인지는 몰라도 몇 년째 먼 곳엔 가지 못했다. 하지만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내게는 삶이 여행이다. 어느 먼 곳으로 떠나지 않더라도, 어느 곳보다 먼 곳으로, 삶이라는 길 위에서 여행을 하고 있다. 

“어제는 날아가 버린 새를 그려 새장 속에 넣으며 울었지 이젠 나에게 없는 걸 아쉬워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안으리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 속을 혼자 걸어가는 걸 두려워  했을 뿐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어야 했던 걸”
(이상은, 「삶은 여행」) 

내 삶이라는 여행은 어디쯤 온 걸까, 가끔은 두려움이 일렁거린다. 끝이 두려워 일수도 있고, 돌아보는 것이 두려워서 일수도 있고, 어쩌면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무엇을 하는지 잊는 것이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또 다시 여행을 떠난다. 때로는 멈출 수 없는 두려움에, 때로는 10년 전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내가 되어 있는 놀라움에. 이 여행 속에서 내가 더 강해지기를 바라며. 당신들도 각자의 여행 속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며. 

“삶은 여행이니까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 없으니 수많은 저 불빛에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 바라봐”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재즈피플> 보러가기(클릭)]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 시즌 3'가 시작되었습니다. ^^

[캠페인 보러가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