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찻잔이고 싶어요, 하나 책갈피, 세상의 속살

반디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현선’입니다. ^ㅇ^
날씨가 제법 따뜻해졌습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운 날씨는 저를 ‘너무’ 힘들게 하거든요.

너무
,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라는 의미를 지닌 이 말은 어디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차가운 사람은 다가가려는 사람을 망설이게 하고 그 스스로도 외로워지며, 너무 뜨거운 사람은 무던한 일상을 뒤흔들어 놓으니 오래 담아둘 수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그만큼 빨리 식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되기도 하죠.

그러니 비극입니다. 제가 바로 그 ‘너무’한 사람인 거 같거든요.

지옥 같은 추위가 걷히기 전, 모르는 사람과 술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게 됐습니다. 곧바로 낯선 사람에 대한 ‘울렁증’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표정을 관리할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되고 싶어집니다. 방금 전까지 제가 어떻게 웃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얼굴의 어떤 근육을 써야 웃을 수 있는 걸까요? 물론 웃을 만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너무 솔직한 제 안면근육은 언제나처럼 관성의 법칙을 따라 환한 미소를 위한 움직임은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요. 

늘 그렇듯 모르는 사람과의 어색함을 무마시키기 위해 마음 대신 술잔에 담긴 가벼운 말들만 나누기 시작합니다. 나를 미루어 남을 생각하건데, 아마도 지금 오고가는 말들 중에 내일까지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말들과 함께 저도 그 사람에게서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지워지겠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누구에게나 잘 지워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첫인상.

드디어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단골 화제로 떠오르는 ‘첫인상’이 등장했습니다. 그 사람은 경직된 제 안면근육에 대한 화답으로 한 마디 하십니다. 

그 분: 너무 차가워 보여요.

이런.. (ㅡㅡ;;)

나: 아, 그런가요? 

모르는 척 한 번 해봤습니다. 똑같은 말, 수백 번은 족히 들어본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저는 스스로 확인사살까지 하고 말았네요.

그 분: 말이라도 걸면 “뭐야, 니 놈은??”이라고 화낼 것 같아요.

사실 그 분의 대사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범죄처럼 제 기억은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어차피 모로 가나 서울만 가면 되고, 그 말이 그 말이며 결론은 같으니까요. 반전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 사전의 경험을 십분 활용하여 능숙하게 공감을 표해 우호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동시에 내가 절대로 그대를 헤치지 않을 것이며, 사실은 나도 제법 따뜻한 사람임을 은밀히(?) 주입시킵니다. 

나: 아니에요! 아니에요! 절대!! 지금은 친해진 언니도 처음에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고 했지만, 지금은 제가 너무 쉽다던데요?
  하하하,,,하하,,하,,,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그냥 내질러 보는 겁니다. 믿거나 말거나 강바닥에 삽질하는 게 녹색성장이라고 주장하는 누구처럼. 어쨌든 이미 그 분에게는 그 어떤 논리가, 말하자면 제 안면근육의 경직성과 유사한 무언가가 확실하게 박혀 있으니까요.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거죠. 다음 분을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그래도 다시 강조해봅니다. 목소리 톤을 갑자기 높여서 ‘삑사리’가 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노력했는데, 그 분의 안면을 보아하니 믿지 않는 게 분명합니다. 결국 그 분이 Winner입니다. ABBA가 부릅니다. “Winner take it all", 너 다 가져라. (>_<);;

가만 생각해 보니 그 분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고교시절, 역 앞에 세워져 있던 헌혈차는 아이들의 피를 받는 대신 공짜 영화표를 손에 쥐어 줬는데요, 저도 그 영화표를 한 번 얻어 볼 요량으로 헌혈차에 올랐었죠. 그런데 기대하던 영화표 대신 ‘남 줄 피가 없다’는 말이 돌아옵니다. 찌르면 피가 나오긴 하는데 너무 적게 나온다는 거죠. 또 한 번 저는 ‘너무’합니다.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건 사람이 아니니, 남 줄 피가 없는 저는 개중에 가장 차가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렇지만 역시 조금밖에 나오지 않는 제 피도 남들만큼 따뜻한 건 분명합니다.

그러니 저도 더 이상 너무한 사람이고 싶지 않네요. 그래서 다음 분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쳐볼까 합니다. 전 모두에게 ‘찻잔이고 싶어요.’ 

[찻잔 - 노고지리]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너를 만지면 손끝이 따뜻해
온 몸에 너의 열기가 퍼져
소리 없는 정이 네게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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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말
첫인상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러니까 나의 첫인상을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일까요, 타인의 시선일까요? 혹은 차갑게 보이는 인상이 가리고 있는 내면의 심리는 뭘까요?

첫인상과 관련된 질문과 [내 맘대로] 답변은 계속됩니다.
속편을 싫어해 만화책과 일드는 완결된 것만 골라보고, 반지의 제왕은 과감하게 포기했던 저지만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합니다.^^;;                                      

그러므로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