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시’에게 말 걸기 - 에쿠니 가오리의「잃다」 詩로 물드는 오후

에쿠니 가오리, <제비꽃 설탕 절임>, 소담, 2009 

 

「잃다」 

너를 잃고 싶지 않아
당신은 말하지만
나를 잃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
멀리 가지 마
당신은 말하지만
나를 멀리 보낼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
깜짝 놀랐잖아
당신 혹시
나를 잃어가고 있는 거야?

 

- 42쪽 -

 

A: 너를 잃고 싶지 않아. 멀리 가지 마

. 일단 A가 무엇을 ‘너’로 지칭했는지 알 수가 없네요. 빛나고 뜨거웠던 청춘의 너일까요? 오늘 A의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있는 너일까요? 우리로선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일이죠.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답답한 노릇일 밖에요.

잃다
. ‘가졌던 물건이 없어져 그것을 갖지 아니하게 되다’라는 의미라는데요, 그러니까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그 대상이 없어지거나 사라져버렸을 때 우리는 ‘잃다’라고 얘기하게 되는 거겠죠? 그런 의미에서 ‘잃다’는 ‘버리다’라는 말의 반대가 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잃는’ 대상이 도무지 알 수 없는 ‘너’이니, 이것 참 큰 일입니다. 어떤 너를 잃는다는 건지... 게다가 여기서 문제는 더 복잡해지는데요, ‘나’의 의지와 상관없다던 ‘잃다’라는 상황이 정말 ‘나’와 상관없는 건지 의심이 생기기 때문이죠. ‘나’가 ‘너’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듯이, ①반대편에서 ‘너’는 또 ‘나’를 자기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너’가 똑같은 방식으로 ‘나’를 잃어갈지도 모른다고 가정했을 때, 너와 나의 관계 안에서 ‘잃다’라는 결과의 근본 원인은 불분명해진다는 거죠. 

이런이런,, 분명한 결과의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책임 추궁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그냥 ‘너를 잃다’라는 결과만 남는 거죠. 더욱이 시간은 이런 결과를 부추기는 잔인함까지 보입니다. 야금야금 흘러가는 시간이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너와 나를 변화시켜 분명 어떤 시점의 너와 나는 잃어가게 하니까요.  

A는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엇, 그런데.. 그렇다면!! 이 말 이전에 A는 ‘너를 잃다’라는 상황을 이미 생각한 거겠네요, 이유가 어쨌든 ‘너를 잃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A는 이미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니 그러고 ‘싶지 않다’라는 바람이 생길 수 있는 거 아닐까요? 물론 A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너’가 변할 수도 A 자신이 변할 수도, 너와 A의 관계가 총체적(?)으로 변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A는 또 ‘멀리 가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멀리’는 심리적 육체적 거리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멀리 가다’는 능동적인 행위의 주체(너)를 전제합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멀어지다’ 정도의 표현을 사용했겠죠. 하지만 A의 말이 '너'의 능동적 행위를 가정한다 할지라도 그 결과의 원인 역시 ‘너’에게만 한정할 수 없습니다. 경험상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떠나도록 은밀하게 유도하는 못된 이들이 있다는 걸 알잖아요. 휴... 뭐가 이렇게 복잡한가요. 

B: 당신은 말하지만 나를 잃을 수 있는 사람, 나를 멀리 보낼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 깜짝 놀랐잖아 당신 혹시 나를 잃어가고 있는 거야?

이 말을 통해 조금은 분명해지는 게 있네요. ①에 대한 설명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를 잃을 수 있고 멀리 보낼 수 있는 사람’으로 A를 호명하고 있는 B를 알 수 있다는 거죠. B로 인해 A는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생각해보면 이 말은 특정한 관계(A와 B)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나와 너는 각각의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자리이고 의미이기 때문에, A와 B에 연관되어 있는 모든 것, 의미, 역할 등은 그 관계 안에서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B의 말은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B를 잃을 수 있는 사람은 애초에 B를 가졌던 A밖에 없으며, B를 (A로부터) 멀리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역시 A밖에 없는 것이죠.

B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을 잃고 싶지 않다며 멀리 가지 말라는 A의 말을 듣고 말이죠. 왜일까요?? 잃고 싶지 않다는데요, 멀리 가지 말라는데요. 저도 한 번 들어보고 싶은 말인데요.(ㅡㅡ;;) 

그런데 다시금 생각해보니 앞서 우리가 눈치챘던 것처럼 B 역시 A가 이미 ‘B를 잃는, 그래서 B가 멀리 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하고 있으며 어쩌면 이미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한 말이라는 걸. 알아챈 걸까요?? 그래서인지 B가 묻네요. 당신 ‘혹시’ 나를 잃어가고 있는 거야? 

우리말이 전하는 생활의 진리 중 이런 게 있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고.
또 누군가(이오공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A랑 B, 이제 어쩌나요? 그나저나 A랑 B가 저를 포함한 여러분일 수 있다는 거, 그게 더 문제네요.
그러므로 우리 이제 어쩌나요? 결국 우리에게도 ‘잃다’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건가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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