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민용 in 재즈피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18 - 말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버지와 나 PartⅠ」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오늘밤 나는 몇 년 만에 골목길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 Album form N.EX.T, 『Home』 「아버지와 나 PartⅠ」 중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부끄러운 고백 하나. 원고를 넘기는 날이 주말 이전에서 월요일로,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늦어지고 있다. 지난주에는 화요일 저녁 무렵에야 겨우 원고를 넘길 수 있었고 이번 주에는 월요일 저녁이 되도록 책을 읽지 못했다. 뒤늦게 책장에서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를 찾아 읽고, 우연히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난해 말 이상북에서 열린 ‘외박 Day’에 다녀왔다. ‘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510일간의 이야기’를 담은 김미례 감독의 신작 <외박>을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공연도 하는 자리였다. 그날따라 가족들과 아침 밥(어쩌면 라면)을 먹느라 영화가 끝날 무렵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흔들리는 화면 속에는 거리로 나선 여성노동자들의 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의 어깨 위로 그들의 떨리는 목소리에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그래도 가족이 있으니까 힘내서 하는 거지”라던 이랜드일반노조 전 부위원장 이경옥씨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뭘까? 필자에게는 내야 할 보험료와 연금이 있고 밥도 먹고 살아야 하고, 책과 음반도 사야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가끔은 옷도 사 입고 술도 마시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한두 푼이 드는 게 아니다. 이젠 다 큰 자식들이 이렇게 거창하게(?) 포장된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엄마’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해 ‘반찬값’이나 ‘애들 학원비’를 마련하려고, 결국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돈을 벌러 나온 거”(<외박 외전>, 11쪽)라고 외소하게(?) 축소된 사회생활을 한다. 그런데 누가 알까. 다큐멘터리 <외박> 속 아줌마들은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도, 가장이 되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사람도,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라고 비춰진다는 것을. 변명이나 설명을 하기보다는 가족이 있어서 힘내는 거라고 말한다는 것을. 

※ <외박 외전>은 '외박 Day' 용으로 임시제작된 책자로, 구입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외박 공동체 상영팀(아래 링크 참조)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다큐멘터리 <외박> 블로그 바로가기(클릭)]

 

알아요, 다 알아요, 라고 말하지 못했던

까르푸에서 이랜드(뉴코아, 홈에버), 그리고 다시 삼성테스코(홈플러스)로 이어진 정규직/ 비정규직, 여성/남성 노동자들(대다수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었지만 분명 정규직과 남성들도 있었다)의 510일간의 투쟁은 일선에 복귀한 ‘산 자’와 자진퇴사 수용 3명, 권고사직 수용 8명 등 ‘죽은 자’로 나뉘어 일단락 지어졌다.(<외박 외전>, 22~33쪽, 필자가 잘 풀어내지 못하는 부분은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리포트와 뉴스, 다큐멘터리 <외박> 등을 참고하면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번 파업은 비정규직 문제, 노동조합 문제, 여성노동자로서의 문제(돌봄 노동, 미소 노동 등) 등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지만 <외박> 감독 김미례씨는 “일자리와 노동조건 향상을 내걸고 투쟁에 나선 이들이 동의를 이끌어내는 방식 역시 ‘어머니’라는 표상 언저리를 맴돌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파업 중에도 이들은 끊임없이, 가족과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하는 데 대해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러한 죄책감으로 인해 더더욱 자신의 투쟁을 지지받을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외부의 비난만이 아니라, 자신이 내적으로 느끼는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같은 책 12쪽)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상우야 사랑해, 너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할게.”라고 말하며 울먹이는 여성 노동자들이 그 울먹임의 힘만으로 1년이 넘게 파업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무차별적인 손해 가압류, 가처분과 파업 대오에 대한 폭력 행사, 회유와 협박을 이겨 내고 대오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 노동자들의 미래를, 당신과 나의 인생이 걸린 그 엄청난 전선의 대오를……. 다리가 퉁퉁 붓고 방광염에 걸리도록 일해서 받던 80만원의, 단지 그 일자리를, 가족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126쪽)

어머니의 목소리를 담은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끄집어내는 것이 다소 억지스럽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엄마의 일기」가 아닌 「아버지와 나 PartⅠ」라는 곡을 떠올렸던 것은 ‘어머니’만이 아니라 ‘가장’ 또는 ‘부모’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어쩌면 오래전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어머니가 가장 역할을 했던 필자의 가정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그리고 부모님의 나이가 되면 그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까? “너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할게.”라는 울먹임을, “그래도 가족이 있으니까 힘내서 하는 거지”라는 혼잣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화요일 오전, (외)할머니가 위 내시경을 받으시는 동안 아버지와 나란히 앉았다. 그 시간 어머니는 가게에서 일을 하고 계셔서 나올 수 없었다.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외박을 하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안다고, 가족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 말을 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테지만 말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쉽게 꺼내진 못할 테지만.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재즈 피플> 안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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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0/02/04 01:1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반디앤루니스 2010/02/08 09:29 #

    와~ 아이님!! 고맙습니다. ^ㅇ^
    안민용 기자님이 좋아하시겠어요~

    좋은 글, 좋은 생각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음 좋겠네요
    그럼, 오늘 하루도 좋은 사람과 함께 하시길 바라요!!

    - 현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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