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피쉬> - 전쟁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는가 블로거, 책을 말하다

한정광, <정글피쉬>, 노마드북스, 2008

 

"42년을 묵혀온 상처를 어떤 방식으로든 털어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제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죽고 죽이는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겪어내야 했던 젊은이의 고통을 보통사람은 짐작조차 못할 겁니다. 이전의 나는 몸속에 광기를 내재한 일종의 휴화산이었습니다." 

1966년 12월 24일 성탄 전야. 고교 시절엔 트럼펫을 불던 낭만소년이었으며, 팝음악과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하던 한 청년이 동료군인 150여 명과 함께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특별기를 타고 베트남을 향한다. 해병대 청룡부대 파월군인의 일원이 된 것이다.

총알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고, 포탄 파편이 동료들의 가슴팍에 박히는 처참한 전장에서의 1년. 청년은 살기 위해서 '적'을 죽여야 하는 끔찍한 현실을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했다. 밤새 계속된 야간전투에서 월맹 정규군과 목숨을 건 육박전을 벌이고, 매복작전을 나갈 때면 베트남 무장게릴라(일명 베트콩)의 신출귀몰하는 습격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전우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 시절 겪은 동료들의 죽음은 청년의 가슴 안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고스란히 남았다.

지옥 같았던 베트남전쟁의 현장에서 1년 만에 귀국했다. 그러나, 적응이 쉽지 않았다. 눈만 감으면 어두컴컴한 정글이 보였고, 그 속에서 튀어나온 베트남 군인과 게릴라들이 총을 난사하고 칼을 휘둘렀다. 전사한 동료들의 모습 또한 시시때때로 튀어나왔다. 계속되는 환청과 환시. 한국에서의 삶 역시 전쟁터와 마찬가지로 지옥에 다름 아니었다. 끊임없이 악몽을 강요하는 '베트남전쟁'이란 이름의 악령. 청년은 그 악령에게 생과 존재 전체를 위협받고 있었다. 

그 악령으로부터 청년을 구한 것은 산(山)과 아내였다. 한국은 물론 알프스와 히말라야를 비롯한 전세계의 산을 돌아다니며 참혹했던 베트남 정글에서의 전투를 차츰 잊어갔고, 아내의 극진한 희생과 사랑이 폭력과 광기로 번득이던 청년의 눈빛을 평범한 사람의 그것처럼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2008년 늦여름. 예순 셋의 장년이 된 그 청년은 태어나 처음으로 소설이란 걸 썼다. 베트남전쟁과 그로 인한 상처, 그 상처의 극복과정까지를 원고지 980매에 차곡차곡 옮겨 쓴 것이다. 그 소설의 제목은 <정글 피쉬>(노마드북스). 

홀가분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은 청년은 그때서야 전쟁이란 비극이 강제한 지우기 힘든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 것일까? 40년 이상을 곁에 머물며 끈질기고 광폭하게 청년을 괴롭힌 악몽과 악령은 이제 온전히 물러난 것일까?

실화가 주는 감동... 전쟁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는가

'사회적응이 어려워 격리되다시피 한 나를 산은 그 넉넉한 품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품어주었다. 산은 어머니처럼 항상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축 늘어진 나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나의 사소한 투정까지 모두 받아주었다. 말하자면 베트남이 산으로 바뀌어 다시 내게 다가온 것이다. 산은 또 하나의 베트남 정글이었다.'
(318쪽 중 일부) '이젠 오랜 미망, 그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그리하여, 정글 피쉬처럼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넓은 바다로 힘차게 나아가고 싶었다.' (352쪽 중 일부)

<정글 피쉬>는 앞서 언급된 '청년'의 이야기를 담아낸 장편소설이다. '소설'이라는 외피를 입고 있지만 기실은 '수기'에 더 가깝다. 허구가 아닌 사실을 근간으로 작성된 글인 것이다.

책의 저자인 한정광은 베트남 파병과 현지에서의 전투, 우여곡절 끝의 귀국과 제대란 간단치 않은 세파를 겪은 이후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고, 이후 중고교 국어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왔다. 아직도 아내가 곁에 없으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고, 산이 주는 위로와 위안이 없다면 세상살이를 견뎌내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한정광. 그는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전까지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많은 소설과 영화들은 참전 군인들의 비참한 최후에만 집착을 해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싶었습니다. 전쟁의 고통과 악몽을 떨쳐내고 제대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내 몫의 사명이라고 믿었습니다." 

포탄에 의해 불바다가 된 정글, 그 정글에서 팔열지옥의 모습을 봐야 했던 스무 살 남짓의 어린 군인들, 그 군인들이 타의에 의해 입어야 했던 지울 수 없는 생채기, 오랜 세월에 걸쳐 반복적으로 겪어야 했던 청년기의 악몽, 그리고 악몽과 악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

실화여서 더 생생한 감동을 가감 없이 담아낸 진솔한 소설 <정글 피쉬>를 읽는다는 것은 한 인간의 영혼 안에 자리한 고통을 이해하고, 그 극복과정에 동참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전쟁이 초래하는 비극을 겪지 못한 세대들에게도 이 책은 유의미하다. 

덧붙여 하나 더. 책의 제목이 된 '정글 피쉬'는 태풍에 의해 정글 속에 떨어진 아프리카 바닷가에 사는 물고기를 뜻한다. 누구나 짐작 가능하다시피 이는 베트남전쟁의 불길 속에 갇힌 군인들을 우회적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파졸리니'님은?
시집을 포함해 4권의 책을 냈지만, 여전히 ‘쓰는 것’보다는 ‘읽는 게’ 즐거운 서른 아홉 문학소년(?). 루이스 푸엔조와 에보 모랄레스를 좋아하기에 그들의 꿈이 꽃 핀 남아메리카를 동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