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영화'에게 말 걸기 - 왕가위의 <화양연화> 오감의 소파

찰나,

나를 나이게 하고
당신을 당신이게 했던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게 했던

그 시간, 그 공간이 있었다. 

 

우리의 손이 아슬하게 서로를 비껴가던
그때,

나의 피부 밖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세계의 공간이
당신의 피부 밖에서만 나를 존재하게 한다는 걸 알았다

당신과 나의 육체가 차지하고 있는 보잘 것 없는 그 공간이
꼭 그만큼
헤아릴 수 없이 넓은 세계의 일부만을
서로에게 허락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신을 쫓고 있는 눈과 지금도 뛰고 있는 심장
당신의 체온을 탐하는 손끝이
그러므로 결국 그대를 알아보는 육체의 세포
하나하나 모두가

운동을 잃어버린 영원한 정지에 이르지 않는 이상

우리 사이,
그 절대적 거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그 거리가 결국
나는 나이게 하고
당신은 당신이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 사이,
그 뜨거운 설렘을 만들어낸 것도 결국
그 절대적 거리임을 알아버렸다. 

느슨해진 시간이 드러내버린 벌거벗은 진실
 그 잔인한 순간을 보고 말았다. 

 
그때,
당신은 느끼지 못하고 당신 아닌 모든 것을 느꼈던 내 육체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하릴 없이 슬퍼지고만
찰나,

그때,
그 절대적 거리가 만들어낸 비극이
내 인생 가장 찬란한 순간임을 알게 된 것이다.

- 현선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