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삶이 내게 왔다> - 어느 날, 그 책이 내게 왔다 책, check, 책

정성일 외, <그 삶이 내게 왔다>, 인물과사상사, 2009


견딜 수 없이 추운 날이 있다. 꼭 얇은 옷을 입어서만은 아니다. 아무리 두꺼운 옷을 껴입어도, 마치 단단한 얼음이 맨살에 닿듯 마음까지 아려오는 날, 그런 날이 있다.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이해받지 못해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그러나 사실은 내가 그를 이해하지 못해 홀로 남겨 놓았다는 걸 깨닫는, 아픈 순간이 있다. 결국 피해자의 눈물을 뿌리다 말고 가해자의 죄의식을 갖게 된 그때, ‘나는 누구이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 그렇게 나보다 먼저 아픈 날을 보냈을 누군가에게 무작정 의지하고 싶어지던 날, <그 삶이 내게 왔다>가 내게 왔다.

<그 삶이 내게 왔다>는 어느덧 인생의 절반에 이른 이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으며 오늘에 이른 과정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책 겉표지에 적힌 것처럼, 이 책에 “담긴 17인의 이야기의 공통점은 이들이 자신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물으며 살아왔다는 것뿐이다.” 소설가 공선옥씨는 자신이 글로 “밥을 벌”게 된 사연을 고백하며, “사람이 혼자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이 외롭거나 가난하거나 억울하거나 슬프거나 답답하거나 할 때 무엇이 그런 ‘슬픔’들을 덜 억울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처럼 글쓰기가 시작되었음을 이야기한다.(13쪽)

그러나 만약 책 속에 있는 17인 중 다른 누군가가 똑같은 물음 앞에 직면하게 됐다면, 그는 아마 다른 삶을 선택해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때 ‘다른 누군가’는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된다. 그러니 모두 “그저 자신답게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이런 이유에서 ‘그 삶’은 ‘내게’로만 오는 것이다. 미술치료사 박승숙씨가 말하듯, “(사람은) 누구나 유전적으로 결정된 체질이란 게 있어 어떤 면은 과도하고 어떤 면은 적당하며 어떤 건 부족하고 비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중심을 정중앙에 두고 똑바르게 나아가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운 무게중심 때문에 구르거나 휘어서 간다. 거기에 순간순간 당기고 밀고 부딪는 수많은 인연이 변수로 보태지니 당연히 이리저리 쏠리고 절뚝이며 돈다. 그건 극히 자연스런 일.” (209-210쪽)인 것이다.

이처럼 삶이 그렇듯, 이 책을 읽는 방법 또한 마찬가지이다. 17인의 에세이, 17개의 ‘그 삶’에서 무엇을 보든 그것은 “그저 자신다움”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지표에 불과하며, 나를 건드린 ‘그 삶’은 그 모습 그대로 내게는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 어딘가에서 자신을 닮아 있는 순간들을 발견하고 그들이 “보내는 작은 응원”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로부터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그렇게 낯선 길을 대딛을 소박한 용기를 얻어가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우리에게 고마운 존재다.

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 이슬람 문화와 함께 하는 이희수, 사진작가 강홍구, 『작은책』발행인 안건모, 저술가 남경태, 기생충 연구하는 서민, 영화평론가 정성일, 금산간디학교 교장 양희규, MBC기자 이진숙, 인권운동가 박래군, 문화비평가 김창남, 인터넷 서평꾼 로쟈 이현우, 건축비평가 전진삼. 이들 모두는, 지갑 안에 들어가는 작은 명함 따위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그들의 이름을 수식하고 있는 직함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그 삶’의 살아있는 숨결, 그 생(生)의 역사를 들려준다.

그렇게 우리가 영원히 모르고 지나쳤을 수많은 삶의 가능성 속에서, 지금 우리의 눈앞을 지키고 서 있는 ‘이 삶’의 어려움이 “그저 자신다운” 삶의 일부가 되리라는 사실을 넌지시 일러준다. 그러므로 낯선 거리에서 길 잃을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대되는 ‘모든 길은 통해 있다.’라는 말처럼, 그저 걷고 또 걸으면 내 삶에 영영 등장하지 않았을 어떤 사람이나 풍경을 새롭게 발견하거나, 언젠간 목적한 그곳에도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위안을 받게 된다. 결국 우리의 삶은,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꼬리를 붙잡힌 도마뱀처럼 ‘툭’하고 끊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듯하다. 

이러저러한 생각으로 목적지를 지나친, 단 한 정거장 정도의 짧은 거리에 이제껏 달려온 모든 길보다 더 먼 거리감을 느끼는 막막한 그날.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리고 싶은 그대에게 권한다. 

“길 모르니 서둘 것 없다.”
(221쪽)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