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장통> - 겨울날의 카페 창가 자리를 좋아하시나요? 책, check, 책

전중환, <오래된 연장통>, 사이언스북스, 2010


요즘처럼 눈이 내리는 날이면, 문득 좋은 사람과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어집니다. 건조하게만 느껴지던 회색 도시가 새하얗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사진처럼 눈에 담아놓는 것도 좋겠죠. 그러려면 큰 창이 있는 2층 카페 창가 자리가 제격이겠네요. 하얀 눈에 쌓여 새로 태어나는 세상을 책상 앞 액자에 넣어둔 듯 잠자코 바라볼 수 있으니 말이에요. 그렇게 앉아 있는 동안, 저는 더 이상 두터운 옷을 껴입고 한껏 움츠린 자세로 바삐 걸어가는 ‘현대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세상과 잠시 떨어져, 사실상 저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그들을 관망하며, 그렇게 오래도록 마냥 앉아 있고만 싶어집니다.

내 맘과 같은 우리, 이게 ‘석기 시대의 마음’이라고?

그런데 사실 제가 원하는 것처럼, 언제든 2층 창가 자리에 쉽게 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때만큼은 모두 한 마음이 된 것처럼, 다들 창가 자리부터 찾아 앉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런 현상은 “지금 바로 한적한 별다방에 가서 줄지어 들어오는 손님들이 과연 어떤 테이블부터 채우는지 살펴보”면 금세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토록 창가 자리를 선호하는 걸까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팍팍한 현대인의 삶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는 여유를 느끼기 위해서일까요?

이에 대해 진화심리학의 눈으로 우리의 일상을 ‘다시 보기’하고 있는 <오래된 연장통>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우리의 현대적인 두개골 안에는 석기 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다.”는 것인데요, 아니 지금이 어느 때인데 석기 시대의 마음이냐고요? 석기 시대는커녕 디지털 기술의 수혜를 온몸으로 받고 있는 오늘,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당치도 않은 소리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막상 책 속에 펼쳐져 있는 진화심리학의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니 이게 어쩐 일일까요?

‘오래된 연장통’을 뒤지는 진화심리학

일단 진화심리학이란 그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하고 있는 학문입니다. 그리고 이 진화론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 바로 ‘자연선택이론’입니다. 다윈은 그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부모가 가지고 있는 형질이 후대로 전해져 내려올 때 자연선택을 통해서 주위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는 형질이 선택되어 살아남아 내려옴으로써 진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생물 개체는 같은 종이라도 환경에 적응하여 여러 가지 변이를 나타내게 되는데, 이 변이 중에서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변이가 선택되고, 결국 후대로 전해져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 역시 (이러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로서 인식합니다. “우리의 진화적 조상들이 수백만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부딪혔던 여러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선택이 설계해 낸 수많은 다양한 심리 기제들의 묶음”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이 <오래된 연장통>인 것은 일상생활의 문제가 생겼을 때 꺼내드는 연장통처럼, 인간의 마음 또한 “각각의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특수화된 수많은 심리적 ‘공구’들이 빼곡이 담긴 연장통”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합니다.

일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다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사람들이 창가 자리를 선호하는 현상은 ‘조망과 피신’ 즉, “인간은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바깥을 내다 볼 수 있는 곳을 선호하게끔 진화했다.”는 이론으로 설명됩니다. 인류의 조상이 살던 선사 시대의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장애물에 가리지 않는 열린 시야가 필요했는데요, 이는 물이나 음식물 같은 자원을 찾거나 포식자나 악당이 다가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현대인의 '두개골에 석기 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다'는 이야기가 더 이상 황당하게만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이외에도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행동들 모두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자 전중환은 바로 이 질문 앞에 서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진화를 우리의 일상생활에 초대하려는 그의 노력은 소비, 도덕, 음악, 종교, 예술, 문화, 문학처럼 진화 이론과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분야들에까지 폭넓게 걸쳐 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왜 우리가 텔레비전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박장대소하고, 연예인의 가십에 귀를 쫑긋 세우며, “오! 필승 코리아~”를 열창하며 눈물을 흘리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진화심리학은 내 삶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온갖 현상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제공하며 내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마침 다윈 탄생 200주년을 즈음하여, 우리가 모르는 사이 늘 우리 곁에 있었던 진화심리학의 세계를 여행해 보는 건 어떨까요?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