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시’에게 말 걸기 - 나희덕의 「귀뚜라미」 詩로 물드는 오후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작과비평사, 1994

 

「귀뚜라미」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가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 69쪽 -

  

하루의 절반을 밖에서 보내는 요즘, 목적한 곳을 오고가는 길 위에서 문득 어린 날이 그리워집니다. 그 날의 기억에는 발끝에 붙어 집에까지 따라 들어오던 땅의 흔적이, 빠른 속도로 자동차가 지나간 자리에 ‘탈탈탈탈’ 시끄러운 소리를 흘리며 땅으로 향해 가던 아버지의 경운기가 있습니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가 땅에 가까이 사는 이들의 삶을 증명하던 애틋한 그 시절이 그렇게 세월과 함께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그리움의 마지막에서 저는, 아마도 오늘 우리의 외로움은 지나온 흔적 없이, 집밖을 나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끔하게 집으로 돌아온 신발 때문인가’라고 조용히 중얼거려 봅니다. 작은 물방울조차 스밀 틈 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콘크리트 바닥을 걸으며, 우리의 신발이 예전처럼 더렵혀지지 않는 만큼 우리는 또한 조금 더 쓸쓸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낮 동안 나에게 보내졌던 누군가의 “타전소리”를 더러운 흙인 것 마냥 탈탈 털어버리고, 우리의 발밑에 견고하게 굳어 있는 콘크리트 바닥처럼, 누군가의 눈물 한방을 담을 수 없는 차가운 마음으로, 오로지 자신만을 지키며 살아온 건 아닐까.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리지 못하는 미약한 존재로 남겨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러므로 결국 “차가운 바닥 위에 아직 노래가 아닌 울음”을 토하며 사방이 ‘신정 6-1 지구’와 같은 “여기” 그리고 “그곳에서”, 울고 있는 “귀뚜라미”, ‘우리’들이 살아 있습니다.   

「신정 6-1 지구」 

끊임없이 무엇인가 세워지는 곳에 사는 일은, 폐허에 사는 일보다, 더 고통스럽다, 집에 갇혀 있던 흙들은 수십년 만에 풀려나와, 햇빛을 껴안아본다, 그러나 이내 무료한 표정으로 돌아가, 더 견고한 벽 속에 갇히기를 기다리며 푸석해진다, 휘어진 철근 사이, 콘크리트덩이들이 먹다 남은 살점처럼 걸려 있고, 반쯤 깨어져나간 항아리가 하늘을 벌써 몇입 베어먹었다, 햇살은 찡그리며 그 칼날 위에 눕는다, 내일은 어느 집이 헐려나갈까, 내 몸이 나를 모르듯, 저 낡은 지붕들도 제 때를 모르고, 손바닥만한 텃발을 일구던 늙은 손도 그 끝을 모르고, 다만, 내일이라는 믿음이 벽을 낳고, 새로운 지붕을 낳고, 흙은 다시 그 소에 갇혀 마음으로나 쑥갓 상추 따위를 기르겠지, 큰 희망이 작은 희망을 내쫓고, 높은 지붕이 낮은 지붕을 삼키고, 끊임없이, 그림자가 길어지는, 그곳에서  - 6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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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선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