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시’에게 말 걸기 - 장석주의 「얼룩과 무늬」 詩로 물드는 오후

장석주, <몽해항로>, 민음사, 2010 

 

얼룩과 무늬

욕망과 어리석음이 만드는 게
얼룩이라면
꿈과 고요는 무늬를 낳는다.
얼룩이 나를 가리켜
얼룩이라 한다.
성급함과 오류들이
내 얼룩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감히 무늬라고 우기지 못하고
크게 상심한다.
누군들 얼룩이 되고 싶었으랴.

- 29쪽 -

얼마 전 오래된 친구로부터 글이 후지다는 말을 들었다.아, 이런. 그런가. 정말 그런가. 물론 내가 읽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 만큼 좋은 글을 써냈다고 우기고 싶은 건 아니다.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오래된 친구로부터 내가 타인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 이런. 그런가. 정말 그런가. 물론 내가 듣는 순간 겸허하게 비판을 받아들일 만큼 넓은 마음을 가졌다고 우기고 싶은 건 아니다.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후진 글을 쓰는 나는 순식간에 그 후진 글보다 더 후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 후진 걸 인정하지 못하는 것만큼 후진 것도 없으니까. 아, 그때의 나에게, 열린 마음으로 타인의 비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은 말 그대로 ‘생각’일 뿐이었던 거다. 이런. (>_<);;

아, 정리가 필요한 시기다.
 

나의 욕망은 글을 진짜 잘 써서 타인들로 하여금 글을 잘 쓴다는 칭찬도 듣고 싶고,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타인의 비판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쿨~ 한 태도도 가지고 싶다. 그러나 나의 어리석음은 쥐꼬리만 한 삶의 만족을 위해 “그래도 이정도면,,”이라고 더 나가야 하는 생각을 중지하고 스스로 합리화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으며, 또 거의 대부분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내 안에만 갇혀 있기 일쑤여서, 내 글이 어떤 지 정확하게 분별할 만한 깜냥이 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그래도 이정도면..”이라는 비겁한 자기만족은 ‘나’라는 사람의 본성과 본질을 가리고 제 스스로 제법 괜찮은 사람인 것 마냥 자아도취 하는 나르시스적 괴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니 “아, 이런. 그런가. 정말 그런가.”라는 회의(懷疑)적인 되물음은 바로 이런 나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지나친 성급함으로 “그대로 이정도면,,”이라는 타협을 습관화했으며, 더욱이 이런 습관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심화시켜, 그만큼의 오류를 내 안에 품고 있게 했다. 내 얼룩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얼룩이 나를 가리켜 얼룩이라 한다. 아, 이런. 정말 그렇다. 감히 무늬라고 우기지 못하고 크게 상심한다. 누군들 얼룩이 되고 싶었으랴. 아, 이런. 글은 이렇게 써야 하는 것을.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건드려 끝내는 울게 해야 하는 것을. 

아,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현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