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문학을 생각하다 민용 in 재즈피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0. 22 - 다시, 문학을 생각하다

「Moai」

네온사인 덫을 뒤로 등진 건
내가 벗어두고 온 날의 저항 같았어
...
나는 멍하니 이 산들바람 속에
성난 파도를 바라보고 있어

* Album form Seotaiji, 『Seotaiji 8th Atomos Part Moai』「Moai」 중

 칠레에서는 이렇게 문학을 하지

“세계에서 가장 권투를 잘하는 나라는?” 칠레는 한때 유행했던 말장난 속의 나라였다. 그 뒤로는 이후 서태지의 「Moai」라던가 콘차 이 토로(Concha y Toro, 칠레 와인 회사)의 와인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만 접하던 나라가 칠레다.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의 이야기를 그린 <일 포스티노(Il Postino)>도 칠레가 아닌 이탈리아의 감성으로 연결됐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칠레의 밤>을 읽게 된 것도, 칠레 작가라는 이유는 거의 없었다. 신문 북 섹션을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필자에게는) 낯선 작가임에도 꽤 크게 기사화된 것이 오히려 궁금증을 자아냈고,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이라는 점과 다소 유약해 보이는 볼라뇨의 사진이 관심을 끌었다. 그것 외에는 칠레, 그것도 문학? 이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는 필자의 무지를 이해하시기를.

“칠레에서는 이렇게 문학을 하지. 하지만 어디 칠레에서만 그런가. 아르헨티나, 멕시코, 과테말라, 우루과이, 스페인, 프랑스, 독일, 푸르른 영국과 즐거운 이탈리아에서도 그런걸.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아니 우리가, 시궁창에 처박히기 싫어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렇게들 한다고.”
(152쪽) 세바스티안 우루티아 라크루아의 입을 빌어 볼라뇨는 이렇게 빈정거린다. “칠레에서는 이렇게 문학을 한다”고. 하지만 그는 앞서 조국인 칠레에 대해 “신의 손길에서 버림받은 이 나라에서는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 교양이 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129쪽)고 자조한 바 있다. 

국가의 위선이 문학적 위선을 야기한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위선적인 국가에서 문학만큼은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옮긴이의 말을 인용해보면 볼라뇨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로물로 가예고스상 수상 연설에서 볼라뇨는) <오직 품격만을 생각하는 창작 행위는 아찔한 낭떠러지 위 계곡 길을 걷는 것처럼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문학적 순수성과 그 치열함을 지키려면 문단의 우상, 유혹, 관행 등과 위험한 대결을 벌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생존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167쪽) 

문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이바카체(라크루아의 필명)가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의 삶을 회상하는 데서 시작한다. 문장은 딱 둘이다. 두 번째 문장은 “그 후 지랄 같은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고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 ‘한 문장’을 따라가면서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는지, 문장 어디쯤을 뒤집어서 이해해야 할 지,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혹자는 볼라뇨를 두고 “우디 앨런과 로트레아몽, 타란티노와 보르헤스를 섞어놓은 듯한 비범한 작가”라고 표현하지만 필 자의 이해 수준에서는 주제 사라마구와 움베르토 에코를 떠올리며 울어야 할 지 웃어야 할지를 반복해야 했다. 이바카체의 말처럼 “행간에 숨은 의미가 있는 진지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신경이 곤두섰다. 은폐된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우스꽝스러운 편지의 행간에 은폐된 내용이 진짜로 존재하는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89쪽)였던 셈이다. 

결국 이 낯선 나라의 낯선 작가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옮긴이의 말’과 ‘인터넷 검색’ 등의 편법(?)을 이용해야 했다. 아직 채 정리되지 않은 글로 볼라뇨를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아직 볼라뇨는 이해되지 않았다. 다만 톺아볼수록 글이 살아난다. 어쩌면 옮긴이 우석균씨의 다음 말이 의미하듯 볼라뇨는 <칠레의 밤>만으로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열린책들에서는 <야만스러운 탐정들> <2666> 등 11권의 작품을 더 소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볼라뇨에 대한 필자의 판단은 그때까지 미뤄둘 예정이다. “볼라뇨의 이러한 몸부림이 <파괴를 위한 파괴>인지, 아니면 <위대한 창조를 위한 파괴>인지는 앞으로 열린책들에서 계속 번역, 출간될 그의 작품들을 통해 독자들이 직접 판단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옮긴이의 말, 168쪽)  <재즈 피플> 안민용 기자[<재즈 피플> 보러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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