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 뿌리를 잃어버린 자의 삶의 역사 블로거, 책을 말하다

알렉스 헤일리, <뿌리>, 열린책들, 2009


1750년 이른 봄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200년이 넘는 시간을 밟아 글로 발자국을 남긴 이 책은 지금은 감비아로 알려진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한 아프리카인으로 삶을 만들어 나가며 나름대로 치열하게 희로애락을 쌓아나가던 한 소년 '쿤타킨테'의 생으로 시작된다. 

지금은 승자가 된 민족과 문명들의 일반적인 시각으로 쉽게 평가한다면, 원시적이고 무질서하며 비조직적이고 빈곤한 씨족 사회 삶의 모습이겠지만, 각각의 삶의 주체들이 느끼고 누리는 행복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 누구도 그들의 삶을 제 멋대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그들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하나의 인생을 꾸려나가고 있었던 무위(無爲)의 삶에서 노예사냥이라는 갑작스러운 재앙의 희생자로 전락하면서 시작되는 그의 뱃길은 너무나 비참하다.

먼저 우리가 소위 말하는 ‘아프리카 흑인’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노예사냥의 피해자를 보기 것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을 말해주듯, 흑인이 흑인을 포획해서 노예로 파는 사실에 대해 적잖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단순히 '흑인' 대 '백인'의 대결이었다면 분명 다른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릴 적의 반공교육의 흔적으로 '인해전술'이라는 공포에 간접적인 경험이 있는 나에게도, 그렇게 많은 흑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끌려가야 했던 서글픈 사실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민족'이나 '국가'라는 의식이 가지는 힘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권력 그 자체인 것이다.

그렇게 각각의 개인으로서, 아무리 커도 씨족 사회에서의 공동체적 삶이 전부였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사나운 짐승 취급을 받거나 다루기 까다로운 짐짝 취급을 받으며, 상자에 갇혀 대서양을 건넌다. 시시각각 죽음과 같은 공포에 직면하면서도 '사람'이기를, 하나의 '삶'이기를 바라는 생명을 건 몸부림과 언어로 정제되지 못한 외침은 결국 폭력에 갇혀 버리는 듯 했다. 

'사람 대우'는 커녕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뼈 속 깊은 거부감은 군대에서의 내적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족과 주고 받은 사랑, 친구들과 주고 받은 우정, 이웃들과 주고 받은 애정을 통해,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인 것을 배워나가고 있는 각각의 사람들에게, 분명 자신이 한 인격으로 대우받지 못하거나 한 사람으로 취급 당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불쾌함이고, 두려움이며, 외로움이고, 아픔이다. 그들은 그렇게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 것이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출 20장 17절) 

출애굽기의 십계명 중 마지막 계명에서는 이웃의 소유물을 탐내지 말라고 되어 있다. 그 소유물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소유물은 '집'이다. 그 다음이 '아내', '남종', '여종', '소' 등이다. 이처럼 여자 중에서도 남자에게 가장 가까운 '아내' 마저 하나의 동등한 인격이라기 보다는 '남자'에게 귀속된 소유물로 여겨졌는데, 노예들이야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마태 14장 21절)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마태 15장 38절)

예수님의 시대에도 여자와 어린이는 사람 수에 넣지 않았다. 과부와 고아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그들이 당시 사회에서 가장 낮고 열악한 계층이었기 때문이다. 중세까지만 해도 여자에게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여자에게 영혼이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예들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사실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당시 서구인들의 문화적인 인식을은 '그것밖에 안 되는 게 현실이다.'라고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비참한 역사적 사실이다. 동양 문화가 동물, 식물, 심지어는 산과 강과 하늘까지도 영혼을 가진 하나의 '존재'로 대우한 것이 과연 어리석고 우매하기 때문일까? 왜 이제야 서양 문화가 동물 학대를 반대하고, 자연 파괴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가? 그들의 '힘있는 무지'는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고 용서되는 것인가?

그렇게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며, 발이 잘리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했던 쿤타킨테와 그들.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 '사람'이기를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 쿤타킨테는 벨을 아내로 맞이하고, 딸 키지를 키우며, 키지는 치킨 조지를 낳고 조지는 마틸다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 톰을 낳고, 톰은 아이린을 아내로 맞이하여 유라이어를 낳고...

그렇게 그들은 자신이 처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삶을 일구어 나갔다. 그들의 삶은 가진 것 없는 자들의 삶이었고, 차별받는 자들의 삶이었으며, 권력은 커녕 권리가 전혀 없는 자들의 삶이었다. 또한 교육받지 못한 자들의 삶이었고, 매번 맨손으로 일어서야 하는 자들의 삶이었으며, 그렇게 뿌리가 송두리채 뽑힌 자들의 삶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 있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며, 살아내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뿌리를 찾았다. 뿌리를 잃고 다시 뿌리를 찾아내기까지 그들이 살아내었던 삶의 고통과 고난. 그것에 대한 이유와 의미는 차후에 만들어질 뿐이다. 그래도 그들은 그 속으로 던져졌으며, 그들은 살아내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johann2'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고민하다가 결국은 답을 찾지 못하고 살아보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살아보고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