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제7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민용 in 재즈피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23 - 너는 제7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가을편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 Album form 김민기, 『아침이슬』「가을편지」(고은 시) 중

뜬금없는 가을편지

봄이 오는 길목에서, 뜬금없는 가을편지. 지난 3월 6일 피나 바우쉬 다큐멘터리 <Coffee With Pina>를 봤다. 탄츠테아터 부퍼탈 내한(3월 18일~21일)을 앞두고 지난해 타계한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다큐멘터리는 이스라엘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Lee Yanor(리 야노르라고 읽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가 2002년 파리와 2005년 부퍼탈에서 피나 바우쉬의 작업과정을 찍은 영상으로, 그 중에는 한국을 소재로 한 ‘Rough Cut(러프컷)’의 연습과 공연 모습이 담겨 있다. 영화 속에서는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렀다. 곧이어 나지막이 깔리는 음성, 김민기가 부른 「가을편지」였다. 스쳐가는 낯선 풍경 사이로 거울 앞에 홀로 연습하는 피나 바우쉬의 모습이 겹쳐졌고, 김민기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고 노래했다. 눈물이 났다. 언젠가 글에서 썼듯 그녀의 부재(不在)에서 오는 구체적인 감정 같은 것이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삶(을 구성하는 총체적인)의 역동성이 주는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을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너는 제7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존 버거는 필자에게 ‘안개’ 같은 작가다. 얼마 전 반디 블로그를 통해 <A가 X에게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을 읽고 나서도 그에 대해 정리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언젠가 류시화씨가 썼던 것처럼‘안개 속에서는 /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는 느낌이었는데, <제7의 인간>을 통해 비로소 시간이 가면 /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 서로를 바라본다’(「안개 속에 숨다」 中)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 속의 ‘그’는 자신의 국가를 떠나 ‘기계’가 되고자 하는 이민노동자다. 존 버거의 지독한 표현을 들자면 ‘기계를 가진 자들에게, 인간들이 주어지는 것’ (73쪽)이다. 심지어 그는살기 위해서 그는 자기 목숨을 팔 수도 있다’ (90쪽)고 이야기한다. “도시화된 국가의 경제에 관한 한 이민노동자들은 불사(不死)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지도 않으며, 양육되지도 않으며, 나이 먹지도 않으며, 지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 하나의 기능 ―일하는 것―을 가질 뿐이다. 그들의 삶의 다른 모든 기능들은 그들의 출신 국가의 책임이다.” (65쪽)

이민노동자 ‘그’는 우리에게 먼 존재가 아니다. 문자 자체로도 그는 이미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행간에서의 ‘그’는 그인 동시에 우리이고 우리인 동시에 세계다. “이민노동자의 경험의 윤곽을 그리고, 그것을 그 노동자를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상황과 관련시켜 보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세계의 정치적 현실을 보다 확실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다루어진 문제는 유럽에 관한 것이지만 그 의미는 지구 전체에 해당된다. 주제는 부자유(不自由)이다. 이 부자유는 객관적인 경제제도와 그 안에 갇혀 있는 이들의 주관적인 경험을 연관시킬 때에만 완전하게 인식될 수 있다. 진실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부자유는 바로 그 양자의 관계인 것이다.” (5쪽)

그 남자. 한 이민노동자의 존재

무용가 정영두가 <제7의 인간>을 새로운 언어로 재현한다. 오는 3월 10일과 11일 LG 아트센터에서 펼쳐질 이 작품의 모태가 바로 존 버거와 장 모르의 <제7의 인간>이다. 정영두는 “이번 작품 <제7의 인간>은 이주노동자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긴 하지만 이주노동자의 삶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고 이야기한다. “고향, 가족, 직장, 나라들로부터 떠나고 머물기를 강요받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떠나고 머무는 것을 통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개인적 현상들, 그리고 그러한 현상들을 통해 형성된 인간의 정신과 몸은 어떠한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LG 아트센터와의 인터뷰 中)라고 덧붙인다.  

 

무용에 문외한인 필자는 정영두를 잘 모른다. 그를 통해 존 버거와 장 모르의 <제7의 인간>을 알게 되었고, <제7의 인간>을 통해 정영두를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그’에 대한 약간의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2004년 요코하마댄스컬렉션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일본과 프랑스 등 해외에서 더욱 인정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용평론가 김남수가 2004년 <문화예술>에 쓴 글 제목처럼 ‘사회적 여백과 감동의 독창적 직조술’을 이뤄내는 춤꾼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글만으로는 그의 춤을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춤에 대한 이해를 돕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매체는 아니지만) 기사의 일부를 옮겨 적는다. “당신의 작품을 보고 우는 관객이 많다고 하자 정영두는 ‘내 작업은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못하는 사람들이 말 없는 춤에서 그것을 발견할 때 감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몸으로 느낀 감동은 쉽게 찾아오진 않지만 오래 머문다.’고 했다.” (2월 8일 조선일보 中)

이른 봄에 받은 「가을편지」의 답장으로 <제7의 인간>이 표현할 음악을 보낸다. <재즈 피플> 안민용 기자[<재즈 피플> 보러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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