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별은 늘 아쉬움을 남깁니다. 지난주 <지붕뚫고 하이킥>이 끝나고 한 주가 지났는데도 아쉬움 금할 길 없습니다. 부디 지훈과 세경이 멈춘 시간 속에서 행복하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또 하나 아쉬움을 남기고자 합니다. 다름 아니라 제가 3개월 넘게 쉬게 돼 반디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됐습니다.
지난 2월부터 제가 오락가락했었죠? 병원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3월 16일 수술을 했습니다. 근데 큰 수술은 아니지만 가슴을 열고 한 수술이라 3개월 이상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렇게 아쉬운 마음을 전하고자 나왔습니다. (별로 안 서운한 건 아니시죠? 뭐, 그것도 오케이~ ^0^b)
생각해보면 이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이별이 있기에 함께 했을 때의 좋은 기억들을 살아있는 질감으로 만날 수 있으니까요. 이건 제 경험입니다. 반디앤루니스 블로그를 하는 지난 1년 동안 많은 걸 배우고, 경험하고, 또 꿈꾸게 됐습니다. 제가 블로그를 쉰다고 해서 그 속에서 배운 것 모두 쉬는 건 아닙니다. 꿈과 글, 상상은 언제까지나 그 힘을 갖고 있을 테니까요. 상상원정대 대원 여러분! 연초에 밝힌 꿈을 위해 오늘도 고고씽!
마지막으로 지난 번 입원 때 읽은 리영희 선생의 <대화> 중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리영희 선생이 1988년 ‘한겨레신문’에 발표한 칼럼 ‘북녘 땅 내 고향 사진’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칼럼에서 리 선생은 민간 인공회사에 북녘의 집 사진을 촬영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는 인공위성 촬영 기술이 발달해 정부가 말하는 북한의 기습 침입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겨레신문사의 사진기자가 남의 눈을 피하면서 나를 찾아왔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판문점 회담의 취재를 했는데, 북쪽에서 온 기자가 신문을 하나 주면서 나에게 전해주라고 부탁하더라는 거예요. 내 고향 평안북도 삭주군 대관의 사진을 찍어 달라고 내가 미국 민간 인공위성회사에 부탁을 한 그 사연을 쓴 ‘한겨레 논단’이 나간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1989년 6월 17일 토요일자에 북한의 ‘통일신보’가 전면으로 특집을 했더라구요.
그리고 편집자 주에, “리영희 교수가 50년이나 못 본 고향을 안타깝게 그리면서 미국 인공위성회사에 돈을 내면서 부탁했는데, 우리가 인공위성회사 대신 직접 리영희 교수의 고향을 취재 탐방하려 한다”는 글이에요. 그렇게 편집자의 의도를 쓰고,“지척이 천리라고 기차로 하루면 왕래할 수 있는 거리인데 50년을 못 보았으니 우리 민족의 슬픔을 말해주는 거 아닌가”라며 전면을 나에게 할애했어요. (<대화>, 646~647쪽)
이 부분을 읽으며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리 선생이 글을 쓸 때 1년 후 펼쳐질 일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우리, 상상을 너무 일찍 접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 민용 기자님 캠퍼스에서 하기로 한 파티는 100일 뒤에 하는 겁니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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