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 발에 밟히는 기억, 눈에 밟히는 역사 책, check, 책

유재현,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그린비, 2007


이제 우리나라도 좀 살만 해진 걸까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기아에 허덕이며 비쩍 말라가는 아이들, 먹고 살기 힘들어 타국으로 돈 벌러 가야 했던 이들이 더 이상 ‘우리’라는 대명사로 불리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죠. 그들은 이제 말 그대로 ‘우리’가 아닌, 우리와 분리된 ‘그들’ 혹은 ‘타자’일 뿐입니다. 이전까지 유례가 없었던 경제 발전의 속도를 따라 오늘에 이른 우리는, 현재 파리 한 마리 쫓을 힘없는 먼 나라의 아이들에게 어렵지 않게 하루치의 식량을 전해줄 수 있게 되었으며, 어쩔 수 없이 고국에 가족을 두고 돈벌이를 찾아온 수많은 아시아인들에게 일자리와 월급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좀 살만 해진 우리는 아직 살만 하지 않은 그들과 다른 처지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종종 우리는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거나, 괄시하고 무시하는 태도로 그들을 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휴가철마다 여행 가방을 챙겨 들고 ‘관광’하러 가는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은, 그들에게 변변한 돈벌이 하나 마련해주지 못했던 서글픈 고국의 땅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그들에게는 힘겨운 삶의 공간이었던 그곳이 우리에게는 고단한 삶을 쉬어가는 쉼터, 즐길 수 있는 휴양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관광객인 우리에게 그들이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고국의 현실, 그 아픈 역사의 기억은 우리와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보고 즐길 만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의 저자 유재현이 지적하듯, “유럽 제국주의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동아시아가, 미국의 패권 아래 전쟁의 포연과 독재와 수탈의 시련으로 달음칠치던 그 시대가 의미하는 것은 태생의 동일함”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린 모두 한 애비와 에미의 자식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2차대전 종전 후의 아시아의 지형을 그리려는 그의 노력은 이와 같은 태생의 동일함을 망각하고, 새삼스레 쇠퇴해가고 있는 제국주의의 정신을 헛되이 모방하려 드는 오늘의 '우리'를 향한 날선 비판에 다름 아닙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시아'라는 동일한 테두리로 묶여 있는 우리가 그 내부의 아시아인들을 ‘그들’로 호명하며 타자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오만한 태도는 아시아의 역사와 기억에 대한 무지와 편견, 무관심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정신적으로 제3세계의 일원이 된 적이 없”었던 남한은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OECD의 일원이 되어, 오늘날 “그 머리와 심장을 천박하기 짝이 없는 하위제국주의의 울타리 안에 두고 있”는가 하면, 민족주의가 숨기고 있는 인종주의에 휩싸여 “전(全) 아시아인을 남한족의 하위에 두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오만한 관광객의 발에 밟혀온 '아시아의 기억'을 자신의 진중한 발걸음에 맞춰 생생하게 되살려내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차마 잊어선 안 될 과거의 흔적, 그 눈에 밟히는 역사가 현재의 시점 안으로 들어와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금 말을 걸어옵니다. 그러므로 이전까지 우리와 무관하게 느껴졌던 아시아의 역사는 이제 우리나라, 이땅에 새겨진 아픈 기억과 닮은꼴을 하고 찾아옵니다. 

다시 말해, 태국의 섹스 산업은 일제 식민지 시대의 위안부나 한국전쟁 당시의 기지촌을 떠올리게 하고, 반복되는 쿠데타는 60, 70년대 우리나라 군사정권의 야욕을, 서구의 반공주의와 베트남의 국제적 프로파간다에 의해 왜곡된 '킬링필드'에서는 거대 권력에 의해 기입된 반공주의 사상을, 대만의 2・28학살를 통해서는 6・25 학살과 광주항쟁을, 베트남의 전쟁과 분단은 한국 전쟁과 분단으로 겹쳐져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제껏 외면해 왔던 아시아의 슬픔과 상처를 ‘우리'라는 테두리 안으로 다시 들여와 그릇된 오늘을 비추는 반성적 거울로 삼을 수 있게 됩니다. 

"더 나은 세계와 미래를 건설할 힘은 아시아에 있다. 남한의 미래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주도하는 자본과 시장의 아시아가 아니라, 핍박받는 아시아 민중의 신음 소리에 담겨 있을 것이다. 이게 남한이 아시아에, 아시아를 통해 세계를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이유이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