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 노래에 실려 오는 낮은 세상의 숨소리 책, check, 책

이지상,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삼인, 2010  


「우리가 눈발이라면」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
 

-안도현, 『그대에게 가고 싶다』, 푸른숲, 2002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우리가 눈발이라면」이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과거 이 시가 담아서 소리 내고자 했던 세상은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시 앞에 서 있는 우리는 여전히 시의 가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 조금도 나아진 것 없는 세상에 절망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집니다. 여전히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에는 쉽사리 “잠 못 든 이”들이 “새벽을 이고 아침으로 떠”나고, 그 고단한 시간 속에서 “흩어져 있는 지난밤의 흔적을 가지런히 정리하듯 청소부가 남기고 간 빈 박스와 폐지를 담고 있는 노인”이 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가 들려주는, 그가 만들고 그가 좋아했던 노래들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갈망하는 순간부터 그것을 기다려온, 이 땅에 발 딛고 희망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 “독재에 민주를 뺏기고 자본의 억압에 삶의 터전을 뺏기고 학자와 언론의 놀음에 사상과 역사를 빼앗긴” 이들의 인생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그가 “희망하는 세상을 꿈꾸는 기다림의 방식”이기도 한 것입니다. (6-7쪽)

이를 통해 그는 낮은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삶을 그의 노래에 실어 세상을 ‘울리고’자 합니다. 돈과 권력에 의해 상처 입은 그네들의 속살은 그의 노랫말에 담기고, 그들의 삶이 쏟아내는 고단한 숨소리는 리듬과 가락에 실려 무감한 세상에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이 땅에 새겨진 아픈 역사의 흔적과 아직 채 지워지지 않은,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현대사의 기억을 따라 전해져 오는 서러운 이들의 시간이, 그것의 울림에서 그치지 않고 끝내 울음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모든 예술의 감동의 최고치는 눈물이다.”라는 고 조태일 시인의 말을 되뇌며 자신이 받은 감동을 말하는 그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그와 같은 감동을 되돌려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이라는 신영복 선생의 말씀을 견주어 보며, “나는 많이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해야 할 대상은 많았지만 그냥 머릿속에만 두었습니다. 가슴으로 안지 못했고 더더욱 내 더딘 발걸음을 사랑을 향해 움직이지 못했습니다.”(88쪽)라고 반성하는 그의 고백은 오히려 제 자신을 더 부끄럽게 합니다. 그동안 내 자신이 움켜줘야 할 것들만 치밀하게 계산하는 머리와 내 상처가 가장 아픈 것인 양 엄살 부리며 다른 이의 삶을 품을 줄 몰랐던 가슴으로 살아온 것을 반성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지 않는 나의 발은 그들이 서 있는 이 땅을 똑같이 딛고서, 새로운 세상으로 내딛을 염치없는 희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저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그 기다림의 끝이 결코 오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됩니다.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춥고 어두운 세상에 온기를 더하고, 위로의 편지로 고달픈 삶을 달래며, 깊고 붉은 상처에서 새로이 돋아나는 새살이 되어 이제껏 기다려왔던 희망을 현실로 불러와야 함을 생각해봅니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