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달려야해 민용 in 재즈피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0. 27 - 우리는 달려야해

「말달리자」

이리 띵굴띵굴한 지구상에서
우리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달리는 것뿐이다
무얼 더 바라랴
어이! 이봐 거기 숨어있는 친구! 이리 나오라구!

* Album form 크라잉넛, 『Our Nation』「말달리자」 중

어디에서나 마주하게 되는 죽음

요즘 일상의 낙은 ‘맥주 마시며 책 읽기’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 한 시간 남짓은 하루 중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이다. 약간은 노곤해진 몸, 여기저기 쌓여있는 책, 시원한 맥주, 그리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 ‘건어물녀’가 이런 거라면 필자는 기꺼이 ‘건어물녀 찬양’에 나설 것이다. 

그 낙에도 불구하고 며칠 전에는 읽던 책을 덮었다. 뉴스든, 신문이든, 눈 돌리는 곳 어디서나 마주하는 죽음을 책에서까지 대면하려니 힘들었다. 죽음에 대한 담론은 때로 삶을 벅차게 한다.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닌 정치적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건 서글프다. 물론 의미 없는 죽음으로 치부되는 건 더욱 슬픈 일이지만 말이다. 무거운 시기다. 너무 많은 죽음으로 인해 판단도 언급도 망설여진다. 그렇지만 오늘은 무거움을 잠시 덜어내고 (필자를 비롯해) 살아있는 이들과 함께 하는 말달리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달리는 것뿐이다

출근길에 신문을 들고 나오면 대개 1면부터 본다. 그런데 목요일은 좀 다르다.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와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부터 펼쳐드는 것이다. 연애부터 진로, 직장, 결혼, 인생에 대한 이야기까지 노골적인 질문과 직선적인 대답에서 고개를 끄덕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사실 소심한 필자는 두 사람뿐 아니라 직설화법의 대가들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기피하기도 한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다. 그래서 이렇게 몰래 신문지면을 통해 상처받을 수 있는 이야기는 외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만 킬킬거린다. 이 비겁함이 부끄럽지 않은 걸 보면 필자도 뻔뻔해지거나 자존감이 커지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김어준은 <건투를 빈다>에서 일관되게 자존감을 이야기한다. ‘나’로 살라는 거다. 그래서 그는 명문대 진학에 실패한 이에게 지금쯤 실패해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참 다행이다. 지금쯤 실패해서. 회복할 시간이 많아서. 아마 당분간 참담할 게다. 과거 영광과 낮아진 자존감 사이에서 방황도 할 게고. 그러나 그런 비용을 치르고라도 부모 욕망으로부터, 다른 이들의 기대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기회를 얻은 건, 당신 인생 전체로 보자면, 크게 남는 장사다.”(25쪽) 그 남는 장사라는 건 즐거운 인생이다. “문득 난 내가 참 즐겁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뭐든 하고 살고 있었다. 누구의 승인도 받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저 그 일을 하면 재미가 있겠는가 하는 것만이 기준이었다. 그 일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후순위였다. 어떤 일이 하고 싶으면 그냥 시작했다. 때론 생각했던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고 때론 돈까지 제법 버는 경우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그 모든 과정을 매우 즐기고 있었다는 거다.”(27쪽) 

하지만 누구나 김어준 총수처럼 ‘딴지 인생’을 살진 않는다. 그게 자존감이 없어서도, 패기가 없어서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이 있고 그가 이야기하는 인생 역시 수많은 인생 중 하나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의견에 반대해도 상관없다. 그의 인생을 롤 모델로 삼든 롤 케잌으로 먹든, 건투를 빈다!

김어준의 이야기보다 필자를 더 질투하게 했던 건 서양화가 김점선의 자서전 <점선뎐>이었다. 지난해 신문에서 부고 소식을 듣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우연히 그녀의 이야기를 만나게 됐다. 단수로 치면, 김점선 선생은 김어준 총수 보다 한참 위다. ‘파란만장, 엽기만발, 독야청청 살아온 우리 시대의 화가 김점선. 고통을 물감 삼아 인생의 환희를 그려낸 화가가 글로 그린 자화상’이라는 부제는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글에서 느껴지는 에고만으로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내 그것이 그녀가 잘난 체를 한다거나 우리가 판단해야 하는 성질이 아님을 알고서야 마주하기가 편해졌다. 그 글은 그대로의 김점선이었다. “변명은 낭비다. 변명은 내가 나아갈 길이 아니다. 오로지 내 속의 나침반만 바라보면서, 내 감성이 이끄는 대로 그림을 그려나가면 길이 열릴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침묵 속의 몰두, 그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99쪽)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장엄하게 죽기 위해서 이런 제목의 글을 쓴다”는 그녀를 만날 즈음에는 이미 김점선 선생의 삶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그녀의 죽음이 안타깝기 보다는 이제라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우리는 달려야해 거짓에 싸워야해

두 사람의 인생은 멋지다. 그렇지만 꼭 누군가의 인생을 따라 살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만날 때마다 선택의 폭은 넓어지고,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힘이 더해진다고 믿는다. 책 읽기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두 사람의 인생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말달리자’를 듣다보니 불만과 불안으로 가득했던 필자의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닥쳐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 우리는 달려야해. 바보 놈이 될 순 없어. 말달리자’ 음, 나에겐 건어물 인생이 최고다. 오는 4월 23일과 24일, 크라잉넛은 ‘15주년 표류기’라는 타이틀로 마포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연다. <재즈 피플> 안민용 기자
 

 
요건, 쌩뚱맞아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빅재미!!! 민용님의 선물입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