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 통신 1 민용 in 재즈피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28- 캥거루 통신 1

「What A Difference A Day Made 」

What A Difference A Day Made
Twenty Four Little Hours
단 하루가 변화시킨 것
스물넷의 작은 시간들

* Album form Jamie Cullum, 『Twentysomething 』「What A Difference A Day Made 」 중

캥거루 구경하기 좋은 날씨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캥거루 통신으로 인사드립니다. 아, 혹시 알고 계신가요? 우리나라에서는 캥거루를 볼 수 없답니다. 대전동물원에 캥거루가 있다고 해서 갔더니 왈라루가 살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잠들어 있는 잿빛 왈라루는 캥거루와는 다른 과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왈라루는 서울대공원에도 살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참, 말하다가 잊었습니다. 나는 이 편지를 캥거루 통신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야 어떤 것에나 이름은 필요하니까요. …나는 댁의 문을 노크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 당신이 문을 열고 싶지 않다면 열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나로서는 정말 아무래도 좋다구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면, 여기서 테이프를 끄고 쓰레기통에라도 던져 버리십시오. 나는 다만 당신 집 현관 앞에 앉아, 잠시 동안 혼자 떠들어 보고 싶다는 것뿐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들어주고 있는지 어떤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하고, 만약 그러하다면 사실 귀하가 듣던 안 듣던 아무려면 어떻습니까.(<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 ‘캥거루 통신’ 중)

지난 4월 10일에는 제이미 컬럼 내한공연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제 가방 안에는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들어있었고요. 몇 년 전인지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다들 그랬던 것처럼 저도 체 게바라에 푹 빠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체 게바라의 평전을 읽었고 자서전을 읽었고, 그의 라틴 아메리카 여행기를 그린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도 보았습니다. 다들 그랬듯 한번쯤은 체 게바라의 얼굴이 큼직하게 그려진 티셔츠도 입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티셔츠를 살까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체 게바라를 잊고 지내게 됐습니다. 사실, 우리에겐 체 게바라보다 더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았잖아요?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거라고요? 치직치직. 여보세요, 잘 들립니까? 흠흠, 그렇다고 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불가능한 혁명보단 가능한 일상을 꿈꾸는 게 우리들이니까요. 그게 인생인 겁니다.  

 

체 게바라는 라틴 아메리카 여행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초기에는 학생 신분이었지만 나중에는 의사 신분으로 여행했습니다. 나는 점차, 가난, 기아, 질병 그리고 가진 게 변변치 않아 아이를 치료할 수 없는 사람들과 친밀히 접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나는 유명한 연구자가 되거나 의학 발전에 어떤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들을 돕는 것이었지요.”(<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중) 이 말에서 문득 여행을 떠올렸습니다. 여행은 거의 떠나지 못하지만 저는 운 좋게도 많은 곳을 여행하거나 또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꽤 있습니다. 공연도 그중 하나죠. 

참, 말하다가 잊었습니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스탠딩으로 제이미 컬럼의 공연을 보며 가방 안의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떠올렸습니다. 체 게바라는 라틴 아메리카의 영웅이자 전세계인들의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이미 컬럼이 영웅이란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게 되지도 않을 거구요. 하지만 체 게바라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롤 모델이 되어온 것처럼 제이미 컬럼은 동시대의 롤 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이미 컬럼은 피자 가게에서 연주하다가 유니버설에 발탁돼 백만 파운드(약 22억)에 계약했다는 일화부터 스니커즈를 신은 프랭크 시나트라라든가 재즈계의 배컴이라는 등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데뷔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에 신경 쓸 것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피아노 위에서 뛰어내리고 두드리기도 하고, 또 부수기도 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선보여 왔죠. 내한공연에서는 앨범에서만 듣던 그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기성세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마저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겁니다.  

 

오늘 아침에는 그의 메이저 데뷔작인 <Twentysomething>(2003)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반을 표시해놓은 빨간 딱지도 붙어 있네요. 그땐 재즈에 한참 빠져있었는데 말이죠. 잊고 있었습니다. 최근 발표한 <The Pursuit>(2009)와 비교해보니 그는 점점 ‘그’다워지고 있습니다. 예전의 제이미 컬럼도 좋아했지만 지금의 제이미 컬럼이 더 좋은 이유는 그겁니다. 공연에서도 그는 “난 이제 ‘Twentysomething’이 아니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Thirtysomething’이 된 그는 더 자유로워 보입니다. 저도 그렇게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그걸 잊고 있었습니다. 

어때요, 들립니까? 하루하루를 100% 만족하며 살지는 못하지만 어떤 하루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비록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이봐요, 어디서 맥주라도 하시지 않겠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좋아”하고 나는 말했다.”(<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캥거루 구경하기 좋은 날씨’ 중)는 것뿐일 지라도요. 좋아, 라고 대답하는 것 말입니다. 

이상 멋지게 살고픈 30대 캥거루였습니다. 그럼, 이만.

<재즈 피플> 안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