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1955)> - 기쁜 우리 젊은 날 반디 음악 광장

글렌 굴드,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1955)>, GLENN GOULD ED, 2000
 

그 나이엔 원래 다 그래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 1932~1982)는「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네 번 녹음으로 남겼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55년 연주와 81년 연주인데, 이는 연주자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같은 곡의 해석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게다가 두 음반들은 오늘날에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추천반을 논할 때 앞 순위를 서로 다투는, 수준급의 완성도를 가진 음반들이다. 일단 55년 녹음에는 젊음의 기운이 있다. 바람이 흘러가듯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템포와 프레이징, ‘통통 튄다’는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터치는 당돌하리만치 생생하다. 단조의 변주곡에서도 구김살보다는 낙관하는 청춘의 모습이 느껴진다. 밝음과 세련미로 단단히 무장하고 만만치 않은 대곡을 자신의 맘대로 주무르는, 그야말로 23살 천재 피아니스트의 모습이다. 26년 후인, 81년 연주에서도 그는 이 곡을 자신의 마음대로 주무른다. 하지만 내용이 좀 달라졌다. 일단 전체적인 템포가 55년 연주보다 느려졌으며(그래도 빠른 축에 속한다), 각 변주안의 모든 음표와 쉼표를 훨씬 진지하게 곱씹는 느낌이다. 빠른 부분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내달리지 않고, 느린 부분도 55년 연주와는 다르게 퍽 관조적이다. 81년 연주를 듣다보면 이따금씩 굴드의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건 그래서일까.

시작이 끝이요, 끝이 시작이니

변주곡은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여러 가지 형식으로 변화시키며 곡을 전개한다. 대개의 변주곡은 마지막 변주에서 온갖 기교와 음악적 소재를 보여주며 화려하게 끝나는 것이 보통이고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첫 시작과 가장 끝에 동일한 테마를 배치하고 그 가운데에 30개의 변주들을 끼워 넣은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즉, 가장 처음의 주제가 기나긴 변주들을 거쳐 가장 마지막에 한 번 더 반복되는 것이다. ‘아리아(Aria)’라고 이름 붙여진 테마의 사이에 있는 서른 개의 변주들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느낌을 전해준다. 연주 내내 환희와 절망은 거짓말처럼 교차되며 때로는 발악하듯, 때로는 흥에 겨워 노래하듯 우리의 귀를 두드린다. 그런 변화무쌍함 가운데 등장하는 카논(선행성부의 선율을 다른 성부가 모방하는 형식)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개씩의 변주를 사이에 두고 매우 규칙적으로 등장한다(3변주, 6변주, 9변주, 12변주…). 이 카논들이 쫓고 쫓기며 숨 가쁘게 이어지다가 다음 변주에 이르러서는 호흡을 ‘탁’하고 놔버리는, 그런 느낌으로 곡이 전개된다. 이런 40여 분의 길고 긴 여행(악보에 지시된 반복을 지킨다면 어떤 여행은 70분이 넘기도 한다)을 끝나고 온 우리의 앞엔 다시 ‘아리아’가 기다리고 있다. 끝이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고, 또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 있는, 어떻게 보면 한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여기서 한 사람의 인생과 그것을 넘어 작은 우주를 엿볼 수 있다면, 좀 지나친 상상일까.

변하는 세상, 그대라도 영원하라

사실 클래식 음악 팬들 사이에서도 55년 연주가 더 좋으냐, 81년 연주가 더 좋으냐 하는 문제는 좀 지겨운 얘깃거리다(혹자는 ‘상한 떡밥’이라며 그만 싸우자고 한다). 물론 지겹다.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은 다섯 살짜리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자꾸 물어보면 그냥 울어버릴 것이다. 이 연주는 이런 맛으로 듣는 거고, 저 연주는 저런 맛으로 듣는 것 아니겠는가. 81년 연주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하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55년 연주를 조금 더 좋아한다. 사망하기 1년 전인 1981년의 굴드는 마지막 아리아가 모든 것을 끝낼 수 있게 해주는 것임을 눈치 챘다면, 55년의 굴드는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앞·뒤의 아리아는 해맑게도 별 차이가 없다. 모든 것이 영원하고, 모든 것이 계속될 것이라는 젊음의 혈기인 듯, 천진난만한 선율들이 ‘난 자유인이다!’라는 외침과 함께 젊음의 생생함을 타고 흐른다. 원래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는 음악성이 성숙해져 가면서 훗날에 녹음한 연주가 더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가 55년반을 선택한 것이 ‘굴드는 성숙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나만의 괜한 고집 때문이라 그럴까. 진지하고 명상적인 깊이, 물론 음악하는 사람에게 이건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굴드에게서 만큼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음악 속에서 온전히 자신을 풀어헤치는 것을 보고 싶어서 그렇다. ‘좋아, 이젠 이 세상과 음악에 대해서 좀 알 것 같아!’하면서 철들어가는 모습보다는 영원히 늙지 않는 피터팬 같은 모습이 보고 싶어서 그렇다. 노래 가사에서도 나오듯이, ‘…숨이 막힐 듯 내달려가는 이 세상 속에서 홀로 귀를 막고 어린 시절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으며 지금은 공익근무요원으로서 어정쩡한 신분의 삶을 살고 있는 남자입니다. 남의 연주에 대해 끼적이는 걸 좋아하면서도 음악을 공부하며 생긴 어정쩡한 동업자 정신 탓에 나쁜 연주를 나쁜 연주라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암튼 정체가 수상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