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빈대떡 신사’인 걸까? 민용 in 재즈피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2 - 우리는 이미 ‘빈대떡 신사’인 걸까?

「사계」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Album form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사계」 중

날 붙잡은 노래

‘노래’를 통해 어떤 것들, 특별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삶의 일부분을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1992년 보았던 KBS 드라마 <희망>(양귀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에서 울부짖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운동’을 인식하게 했고, 어디선가 듣고 경쾌한 리듬이 좋아 흥얼거렸던 ‘사계’는 ‘노동’을 인식하게 했다. 물론 이 곡을 듣는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라는 건 없다. 컬러 TV와 컴퓨터의 호혜 속에 자라난 필자는 지금도 운동이나 노동에 대해 ‘인식’만 하고 있는 정도다. 다른 민중가요는 거의 모르거니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도 MC 스나이퍼 버전으로, ‘사계’도 거북이 버전으로 더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노래들은 몇몇 책들을 읽으며 빨간꽃 노란꽃처럼 내게로 와서 ‘생각’이 되었다. 

구로공단과 구로디지털산업단지 사이 월드

희망제작소에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총서’를 내고 있다. 반디앤루니스 인터넷 서점에서 다른 책들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우리들의 구로동 연가 - 구로공단과 구로디지털산업단지 사이 월드>를 발견했다. 이 총서의 열여섯 번째 책이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필자는 노동에 대해 글을 쓸 만큼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노동자로 살고 있으면서 노동에 대해 모른다는 건 이율배반이다. 노동자의 권리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는 노동을 ‘자연상태의 물질을 인간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이 단어는 아직도 투쟁이나 피로 같은 것을 머금고 있다. 1970~80년대 구로공단의 ‘공순이’는 그 단어의 기억을 구성한 요소 중 하나다. 

“구로공단의 공식 명칭은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다. 1964년 수출산업공업단지 조성 법안이 제정되면서, 1967년에 1단지, 1972년에 2단지, 1976년에 3단지가 만들어졌다. … 도시 외곽에 버려진 철거민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1970년대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떠받친 여성 노동자들의 구로동의 주인이었다. 이 여성 노동자들은 대부분 서울이라는 환상을 좇거나 남자 형제의 학비를 벌기 위해 상경한 10대 초중반의 어린 여성이었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던 봉제공장, 먹고 자고 하던 벌방은 구로동의 상징이었다.”
(17쪽) 

뉴밀레니엄이 도래했다고 들썩거리던 2000년, 구로공단 역은 구로디지털단지 역으로 바뀌었다. 바뀐 건 ‘디지털’이라는 상징적인 이름뿐만이 아니다. 과거의 구로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지금의 구로는 전혀 다른 도시다. 하지만 구로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문재훈씨는“구로동의 변화는 겉만 번지르르한 빈대떡 신사의 변화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빈대떡 신사의 변화다. 우리는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런 노래 있잖아요. 옛날 노래.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는데 왜 맞을까 돈이 없어서 맞는 건데, 외양은 양복이지만.” (114쪽) 구로의 실제적인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구로의 상징적인 기억은 여전하다. 지금 노동자들이 ‘빈대떡 신사’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노동조합을 거부하는 대기업들에 열광하고 기륭전자와 이랜드 파업, 88만원 세대와 대학거부 선언을 남의 이야기로 바라보는 지금, 우리는 이미 ‘빈대떡 신사’인지도 모른다. ‘들어갈 땐 폼을 내며 들어 가드니 나올 적엔 돈이 없어 쩔쩔 매다가 뒷문으로 도망가다 붙잡히어서 매를 맞누나 …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리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 아니, 어쩌면 더 서글프게도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고 타박하는 요릿집 종업원이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