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우울> - 한낮, 우리가 느끼는 우울함에 대하여 미분류

앤드류 솔로몬, <한낮의 우울>, 민음사, 2004


‘금각사’로 유명한 일본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우울증을 앓다 끝내 자살한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에게 던진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그 정도의 우울증은 하루 15분씩 라디오 체조만 해도 극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울증은 그렇게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병은 아니다. 

“요새 주변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그리고 곧장 정정했다. “그게 아니라, 이제야 사람들이 그 병에 대해 알아차리기 시작한 거야.” 사무엘 베케트의 ‘이 세상의 눈물의 양은 항상 일정하다’는 말처럼 과거에도 현재에도 슬픔은 똑같이 존재한다. 달라진 것은 그 눈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뿐이다.

현재 미국인의 3퍼센트인 1,900만 명 가량이 만성적인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이 중에서 어린이가 200만 명이 넘으며 조울증 환자는 230만을 헤아린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정신 장애가 우울증이다. 2003년 10월 대한우울조울병학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20~60세 주부 1,000명 중 45퍼센트가 경증 이상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민음사에서 출간한 <한낮의 우울>의 원서 ‘Noonday demon’이 출간 1년 만에 전세계에서 25만권이나 팔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당연해 보인다. 22개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의 저자 ‘앤드류 솔로몬’은 소설가로, 자신의 이름으로 첫 소설을 출간했으며 ‘뉴요커’지에 글도 쓰고 있었다. 가족과도 잘 지내고, 하루에도 너댓 개의 파티에 참석하던 그가 어느 순간 침대에서 나갈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체험이 모든 우울증 환자의 것과 같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가벼운 우울증만으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어떤 사람은 끔찍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사회적 성공을 거두며 살기도 한다. 감기의 증상이 각기 다르듯, 우울증이라고 이름 붙었다고 해서 전부 같은 증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에 따라 누군가는 잠깐씩 힘들거나, 깊은 감정을 느끼거나,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이것이 10분 정도 지속된다면 그건 일시적인 묘한 기분이다. 그러나 열 시간 이상 지속되면 성가신 발열(發熱)이며, 10년 이상 지속되면 커다란 타격을 주는 병이다." (37쪽)는 대목처럼 우울증은 사람마다, 지속기간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이 책의 제목인 ‘한낮의 우울’은 성경의 시편 90절에 나오는 ‘한낮의 악마’에서 따온 말이다. “여호와의 진실함은 방패로 너를 에워쌀 것이니, 너는 밤의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로다 / 낮에 날아오는 화살도, 암흑 속에서 걸어다니는 것도, 침입도, 한낮의 악마도.” 여기서의 ‘한낮의 악마’는 백주에 분명하게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영혼을 신에게서 떼어내는 존재인 우울증을 말한다. 우리는 우울증을 한낮의 햇살 아래에서 정확히 바라볼 수 있지만, 그것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발 아래가 무너지는 것 같아.”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울었어. 또 하루를 살아야 하는 게 끔찍해서.”

우울증에 걸린 친구들과 종종 대화를 나눈다. 사람들의 판단처럼 어떤 문제가 있는 것도, 나약한 것도 아니다. 누구보다 영리하고 강한 친구가 우울함에 발목이 잡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처음에는 그 시간이 지나가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고, 억지로 나와 놀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병원에 가서 약을 먹으면 금방 사라질 증상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 우울을 짊어질 수 없는 주제에 내가 어떻게든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냥 어느날 짠하고 걸렸으니, 다시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예전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하지만 그렇게 손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가졌던 내 생각이 짧았던 것이다. 한낮의 우울을 읽은 다음에야 그 사실에 대해서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입으로는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깨달았다. 그저 내가 아프지 않다고 해서 그런 생각을 가졌던 건, 어찌보면 내 오만이었다. 우울함은 하루아침에 찾아온 것이 아니라 다만 어느 순간 그 옷자락을 드러냈을 뿐인데.

이 책에서도 고통이 드라마틱하게 사라지고,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저자는 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매일 하루에 두 번씩 약을 먹는다. 그는 평생 이 약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우울함으로 고통 받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우울증으로 살아있는 시체처럼 살아가는 것을 근절하고 싶어 하며, 그 방법이 약물치료임을 믿는다. 물론 심리치료 역시 약물치료로 우울증을 다스린 이후에 재발을 막는 효과가 있으며, 우울증을 앓는 동안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을 도와주지만 당장 힘든 것은 약물로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심리치료의 작동 방식, 그리고 항우울제의 종류와 부작용, 중독 여부 및 장단점을 설명하고, 전기치료에 대한 설명까지 곁들인다. 약이 삶을 흐릿하게 만들거나, 더 나쁜 상태로 몰고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한다. 지금 당장 고통 받고 있는데 장기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울증을 류머티즘 관절염이나 폐렴과 같은 하나의 질환으로 보며, 발목에 깁스를 한 사람에게 지금 곧장 나가 함께 춤추자고 권하지 않듯 마음이 힘들고 불편한 사람에게 억지로 밝아지라고 권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병도 본인의 의지로 걸리지 않듯, 우울증 역시 자신이 원해서 걸린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의 의지로 나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고립감을 덜어주고, 기꺼운 마음으로 그저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사랑이란 함께 있어 주는 것. 아무 조건 없이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지. 꼭 무언가를 해 주려고 애쓸 필요도 없지. 난 그걸 배우게 됐어." (643쪽)

내가 그랬듯, 이 책을 통해 누군가가 비슷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루한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이카리아'님은?
시간과 공간, 모든 것을 뛰어넘어 내게 닿은 문장을 읽는다. 그리고 문장 아래에서 숨쉬는 누군가에게 속삭인다. '삶을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