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디즈 벗 구디즈 민용 in 재즈피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4 - 올디즈 벗 구디즈

「오빠는 풍각쟁이」

오빠는 풍각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난 몰라이 난 몰라이
내 반찬 다 뺏어먹는 건 난 몰라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 Album form 최은진, 『풍각쟁이 은진』「오빠는 풍각쟁이」 중

카페에는 언제나 재즈 선율이 울려 퍼졌다

얼마 전 신문에 신간 <근대서지>가 소개되었다. 2009년 7월 창립한 근대서지학회에서 그동안의 성과를 묶어 낸 것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근대(近代)와 관련된 서지(書誌)를 다루는 반년간지다. 창간축사에서 ‘동호인들의 도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썼듯 기존 학회지에 비해 자유로운 형식과 글감을 택하고 있다. 책의 문을 여는 ‘문원’에서는 ‘카피가 되어버린 안도현의 시 한 편, 그 독법의 에고이즘’(박성모), ‘울랑브르트의 헌책방’(박태일) 등 책과 관련된 수필이 소개되고 있다. 근대 문헌들이, 한자도 많고 한글 표기/표현이 달라 어려운데 비해 이 책은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그럼에도 한자가 나오면 적당히 포기(?)하며 읽었다) <교수신문>에 소개된 서평에 의하면 “식민지기 일본에서 간행된 한국어출판물처럼 기존 서지자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연구 뿐 아니라, 출판미술 목판화나 근대 초기 잡지 영인현황 등 그동안 소홀히 지나쳤던 분야의 서지와 정확한 서지 파악의 기초가 되는 연구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전한다. 책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소개하기 어려울 것 같아 서평을 연결한다. 

필자가 잘 알지도 못하는 근대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재즈 때문이다. 1920~30년대 한국에 재즈가 소개되었다는 문헌들이 종종 발견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우리가 듣는 재즈와는 달리(당시 재즈는 미국에서 춤추며 즐기는 대중음악이었다) 도시적 감성이나 분위기에 치중하고 있지만 말이다. 장유정이 쓴 <다방과 카페, 모던보이의 아지트>는 첫 문을 <삼천리>에서 인용한다. “술과 계집, 그리고 엽기가 잠재하여 있는 곳이다. 붉은 등불, 파란 등불, 밝지 못한 상데리아 아래에 발자취 소리와 옷자락이 비비어지는 소리, 담배 연기, 술의 냄새, 요란하게 흐르는 재즈에 맞춰서 춤추는 젊은 남자와 여자, 파득파득 떠는 웃음소리와 흥분된 얼굴, 그들은 인생의 괴로움과 쓰라림을 모조리 잊어버린 듯이 즐겁게 뛰논다.” (현대어로 옮겨지긴 했지만) 이 글이 발표된 건 1932년이다. 또한 1930년대 기록에 의하면 “카페에는 언제나 재즈 선율이 울려 퍼졌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메밀꽃 필 무렵>을 쓴 이효석은 현대인보다 더 멋진 도시남자였다. 허연 기자는 그를“그는 코피를 쏟아가며 글을 쓰면서도 겨울에 스키를 타러 갈 계획을 세운다. 원두커피 한 잔을 즐기기 위해 10리길을 걸어 다방에 가고, 재직하던 학교 교무실 한쪽 구석에서 베토벤에 심취했다. 밤이면 위스키를 마시며 클래식 기타를 연주했고, 기르던 고양이가 죽은 날에는 눈물을 흘리는 감성어린 모던보이였다.”고 썼다. 1930년대 커피, 베토벤, 스키를 상상할 수 없는 게 필자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이 글을 접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그래서 가보지 못한 나라에서 들려오는 소식보다 이 땅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더 신기했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근대의 음악이라고 하면 사실상 재즈나 클래식보다는 만요(漫謠)가 더 떠오른다. 1930년대 불리던 만요는 ‘익살과 해학을 담은 우스개 노래’로 흔히 ‘오빠는 풍각쟁이’ ‘빈대떡 신사’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당시 만요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억압된 식민지 사회에서 만요가 뒤틀림과 풍자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빠는 풍각쟁이라고 타박하는 이 노래 역시 “식민지 시대의 식생활 문화와 가족애, 삶의 풍속이 코믹하고도 흥미롭게 반영된” 곡이라고. 2008년 <천변풍경 1930-이태리의 정원>이라는 공연을 선보였던 연극배우 최은진이 <풍각쟁이 은진>을 발표했다. 근대가요 13곡이 칼칼하고 구성진 목소리에 실렸다. 근대의 매력을 알고 다시 듣는 ‘오빠는 풍각쟁이’는 근사한 멋이 있다.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면, 1920년 혹은 30년 서울로 가보고 싶다. 필자가 태어나기 전 이 땅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떤 이들이었을까?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