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 '시크'하고 '엣지'있고 '힙'한 것만이 뉴욕은 아니다. 책, check, 책

탁선호,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인물과사상, 2010


“그날 뉴욕의 밤은 아름다웠다. […] 흥겨운 음악과 가벼운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검은색, 하얀색, 노란색, 갈색의 피부, 아이의 손을 잡은 아버지, 개를 데리고 나온 여자, 노년의 부부, 레즈비언 연인, 서른 명 남짓의 사람들이 웃고 춤추고 박수치는 소리가 가을밤의 공원을 채웠고, 기타와 색소폰 소리가 달빛에 흔들렸다.

공원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다 몇 걸음 물러나 벤치에 앉았다. 옆 벤치에는 두꺼운 겨울 점퍼를 입은 중년의 흑인 남자가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가방과 비닐봉지가 주렁주렁 매달린 카트가 놓여 있었다. 홈리스 생활을 사직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그의 차림새는 비교적 깨끗했고 짐도 잘 정돈되어 있었다. […] 뉴욕의 가을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5-6쪽)

저자 탁선호의 말처럼, 그날 뉴욕의 밤에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누구든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는 공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차이’들이 그 자체로 공존하며 흥겨운 음악과 함께 ‘자유의 도시, 뉴욕’의 평화로운 풍경을 완성한다. 그러나 그날 그곳에는 분명 “아름다움의 한쪽 끄트머리에 매달린 불편함”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두꺼운 겨울 점퍼를 입은 중년의 흑인 남자”, 그의 단출한 살림살이가 정리되어 있는 카트는 언제든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삶의 자유를, 그러나 결국 그 자유가 지닐  수밖에 없는 불안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그날 뉴욕의 밤은 정말 아름다웠을까?”를 질문하며, 지난 10여 년간 한국 사회가 욕망해 왔던 ‘뉴욕’, 그것의 ‘진짜’ 얼굴에 관한 새로운 시선을 제안한다. 그 시선이 <프렌즈>나 <섹스 앤 더 시티>의 그들처럼, 낮에는 브런치를 먹고 저녁엔 칵테일로 우아하게 마무리하거나, <스타일>의 엣지(edge) 있는 김혜수를 떠올리며 한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머스트 해브(must have)' 아이템으로 무장해 시크(chic)하고 스타일리쉬한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몸소 보여주고자 하는 이들에게로 향한다. 혹은 시크하고 엣지 있고 힙(hip) 한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고 모방하는 차원을 넘어 이제는 “진짜 뉴요커”를 찾는 욕망의 놀이에 빠져 있는 한국 사회를 향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시크한 신자유주의 도시 뉴욕은 “연대와 관용, 복지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구축하려는 전투가 가장 격렬하게 벌어졌던 곳”으로, “시크하고 힙한 문화와 생활방식의 이면에는 법과 처벌을 강조하며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추방하는 냉혹한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거리의 홈리스가 빈곤율 20퍼센트라는 뉴욕의 현실을 표면화시키기보다는, “세계 최고의 부자와 가장 가난한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가장 낭만적인 이야기를 구성하는 무대장치”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렇게 빈곤과 실업, 범죄와 집 없는 사람들의 문제가 개인적 책임으로 환원되는 가장 미국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제도와 윤리의 확산된 결과로서 ‘시크한 도시, 뉴욕’이 존재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뉴요커’와 ‘진짜 뉴요커’를 구별 짓고, 그 삶의 방식을 체화했는지의 여부로 계급을 구별하고 있는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은 “관광객을 위해 상품화된 지식이나 중상류층의 삶의 방식을 묘사하고 있는 정보에 의존”하고 있는 ‘상상된 뉴욕’을 헛되이 욕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질적 삶의 모습을 지운 ‘관광객의 시선’으로 뉴욕을 경험하고 그것을 욕망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험의 과정은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것처럼 “기원의 흔적을 철저하게 은폐시키며, 그것들을 생산해낸 노동과정이나 생산에 내표된 사회적 관계의 흔적을 모두 은폐시킨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서 결국 우리는 실재의 세세한 면면들을 철저히 은폐시킨 이후에야 ‘진짜 뉴욕’이 될 수 있었던 텅 빈 소비의 기호로서의 ‘뉴욕’을 맹목적으로 욕망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이 은폐의 질서를 공고히 하고, 은폐된 결과의 시크함을 추구하는 데 골몰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바로 늘어나는 ‘워킹 푸어(working pore)'의 ’진짜‘ 삶을 배제시키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이상화된 미래만을 헛되이 꿈꾸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