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 글과 그림이 만나 삶이 된 이야기 책, check, 책

숀 탠 글/그림,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사계절, 2009


전원이 뽑혀 있는 텔레비전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화면에서는 전원이 켜진 것처럼 푸른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네요. 그 위에 올라 앉아있는 개 한 마리는 마치 뭔가를 그리워하듯 먼 곳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 개의 뒷모습이 쓸쓸하고 아련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그 뒤로 길게 늘어선 그림자로 짐작해 보건데, 개가 바라보고 있는 그 곳에는 어둠이 아닌 빛이, 그러므로 절망이 아닌 희망이 존재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 그림을 보며 들었던 외로운 느낌은 왠지 모를 따뜻함으로 위로받게 되기도 합니다.

이는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의 표지 그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느낌이 책 전체를 관통하며 서로 다른 15편의 이야기들을 하나의 고리로 연결시켜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다소 비현실적인 각각의 이야기들이 처음에는 ‘지금, 여기’가 아닌 ‘먼 곳’으로부터 온 듯 생경하게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 보게 되는 삶의 모습들은 결국 평소에 잘 보이지 않아 지나쳐 갔거나 일부러 보지 않으려 했던 그러나 결국 보아야 하는 삶의 진실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스스로 보지 못하는 우리 안의 편견과 어리석음을 드러내 보여주거나, 일상 속에서 쉽게 자각할 수 없었던 보이지 않는 진실과 희망을 살며시 들춰내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대면하는 우리의 처음 느낌은 그(숀 탠)의 그림을 지배하는 어두운 색상이 그렇듯 왠지 쓸쓸하고 우울한 인상일 텐데요. 이는 아마도 이 책의 원제인 Tales from outer Suberbia, 우리말로는 ‘먼 곳’이라고 번역된 Suberbia 혹은 outer Suberbia가 의미하듯, 교외 또는 변두리이라는 공간적 특징이 주는 인상 그리고 경계인 또는 주변인으로서 작가의 독특한 정서를 형성한 환경과도 연관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처음의 느낌은 결국 그의 그림과 글이 담고 있는 삶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일상 속의 소소한 희망들로 인해 따뜻한 느낌으로 다시 채워지게 됩니다. 결국 그 변두리란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여기 어딘가이기도 할 테니까요.

더욱이 이와 같은 느낌의 전이는 작가가 단순히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 드러내어 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다양한 형상적, 언어적 상징과 은유가 담긴 기이한 이야기들이 모호한 의미를 가지고 우리를 몽롱하게 한다면, 다음 순간 펼쳐지는 그의 그림들은 이러한 의미의 빈틈 혹은 공백을 메우며 글이 다 표현하지 못한 이야기를 그저 느끼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묘한 느낌의 끝자락에서 독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저마다의 언어로 된 답을 찾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특히 이러한 독자의 경험은 이 책의 작품 중 하나인 ‘멀리서 온 비’를 통해 잘 드러나 있는데요. 이 작품은 숀 탠이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에서 보여주고 있는 “글과 그림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그림소설(?)의 독특한 소통의 방식, 그 자체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소설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글자,  텍스트 자체가 그 글자의 의미가 담고 있는 인상을 표현하며 하나의 시각적 요소로 그림을 완성해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숀 탠이 전달해주고자 하는 이야기 자체의 의미가 더욱 충만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주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혹은 그냥 별로이거나 너무 서투르고 창피해” 찢기고 버려졌던 숱한 시(詩)들의 조각이 그들만의 여행을 거쳐 결국 “우연히 모여 (또 다른) 시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멀리서 온 비’는 “잘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그곳에 있는 읽는 사람들 저마다에게 다 다른 이야기를 속삭이는 무언가 기쁘기도 슬프기도 하고 진실하기도 터무니없기도 완전하기도 한 이야기들”, 즉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자체가 됩니다. 그러니 글과 그림이 만나 삶이 된 이야기인 이 책은 단순히 읽거나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느껴야만 하는 것이겠죠.

그 느낌 속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일상의 진실이 그저 사소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여 버려두었던 여러분의 어떤 생각을 만나, 값진 시와 소설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덧글

  • 딸기농장 2010/06/11 12:12 #

    아..숀텐번역본이 또 있었군요..저도 사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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