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과 보첼리의 오페라 <카르멘>> - 죽음으로 인도한 사랑 반디 음악 광장

정명훈, 안드레아 보첼리, <정명훈과 보첼리의 오페라 <카르멘>>, UNIVERAL, 2010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프랑스 오페라의 역사는「카르멘」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카르멘의 등장 이전에도 구노가 작곡한 「파우스트」,「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베를리오즈의 「트로이사람들」같은 훌륭한 작품들이 있었지만 지명도와 작품성, 대중에 대한 흡입력을 동시에 고려해 봤을 때, 이들 작품이 ‘카르멘’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지 않을까 싶다. 19세기의 스페인이 무대인 이 오페라의 성격을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자면 ‘뜨거움’이다. 뜨거운 음악, 뜨거운 드라마, 뜨거운 인물들... 라틴민족의 샘플을 보여주는 듯한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욱’하는 성격으로 무장되어 있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감정적이다.(거짓말 안보태고,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그 자리에서 칼 맞을 분위기다) 그에 힘입어 스토리는 ‘사랑과 전쟁’ 수준의 파국으로 치닫고, 관객을 쥐었다 놨다 하는 아슬아슬함이 느껴지는 음악도 듣는 이의 심박수를 한껏 높여준다. 오페라는 지루한 음악과 손발이 오그라드는 사랑타령만 반복하는 장르’ 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카르멘」을 한번 들어보자. 특히 점점 날씨가 더워지는 요즘에 듣기에 아주 멋진 작품이다. 


<투우사의 노래>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Covent Garden 1991, Zubin Mehta

프랑스 오페라의 4번 타자

생기발랄한 이국적 정서와 프랑스적인 우아함이 넘쳐나는 카르멘. 그러나 이 작품도 상당수의 명작들이 그랬듯이 초연에는 보기 좋게 실패했었다. 자극적이다 못해 ‘퇴폐적’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던 스토리는 점잖을 떨던 파리지앵들의 외면을 받았고, 음악적으로는 당시 독일에서 인기가 있던 바그너의 ‘유도동기’ 수법을 받아들여서 자국의 문화에 큰 자부심을 가지던 프랑스 문화인들에게 질타의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주변의 반응은 자신의 예술인생을 걸고 병약한 몸을 이끌며 이 곡을 작곡했던 작곡가 비제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고, 결국 그는 초연 3개월 뒤인 6월에 세상을 뜨게 만다. 그러나 비제와 ‘카르멘’에게 혹평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대중들과 어쭙잖은 호사가들에게는 외면 받았을지 모르지만, 초연과 비제 사망 이후로 몇몇 거물급 예술인들의 찬사가 이어지며 본격적으로 세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철학자 니체는 “비제야 말로 라틴의 바그너”라며 추켜세웠고, 무엇보다 당시 유럽음악계의 거목이었던 브람스 역시도 이 오페라에 열광하며 흠뻑 빠져있었다. 얼핏「카르멘」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브람스는 이 작품을 스무 번 가까이 관람하며, 악보를 구하기 위해서 친구에게 간곡한 어조로 편지를 보내기도 했었다. 아마도 자신이 도저히 쓸 수 없었던 이국적이고 순발력 넘치는 음악이 눈앞에서 찬란하게 펼쳐지자 놀라움 반, 부러움 반의 심정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매력적인 당혹스러움

이제는 오늘 소개할 음반의 라인업을 살펴보자. 지휘를 맡은 정명훈은 10년 가까이 수족처럼 거느렸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함께 작업을 진행했는데, 결과가 상당히 만족스럽다. 정명훈은 모나지 않은 세련된 음색과 적절한 스릴을 느끼게 하는 속도감, 감각적인 세부묘사에 능한 지휘자이다. 이러한 그의 특징은 「카르멘」과 잘 맞아 떨어져서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첫 트랙의 전주곡부터 마지막 4막까지 음악적 집중력과 긴장감을 잃지 않는 일관성도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성악진으로 가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아무래도 가장 큰 이슈는 남자 주인공 ‘돈 호세’ 역을 맡은 ‘안드레아 보첼리’ 되시겠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팝페라적인 목소리로 노래하는 그는, 연약하기 그지없고 우유부단함의 결정체인 돈 호세를 표현하는 데 상당히 매력적이고, 나름 잘 어울린다. 하지만 4막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에게 요구되는 불꽃 튀는 연기력과 카리스마, ‘찌질함’이 절정에 달해  자존심이 바닥을 치고 있는 그 처절한 상황까지 표현하기에는 심히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혀보지 않은 콘셉트로 끝까지 밀고 나간다고나 할까. 

대신 1막에서 들려주는 미카엘라와의 이중창(CD1 10번 트랙)이나 ‘꽃노래’(CD2 4번 트랙)에서는 정말 부들부들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고 있어서 그 아쉬움을 상당부분 만회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우리에게 익숙한 ‘오페라’적인 느낌이 들지 않아서, 보첼리 솔로 음반의 한 트랙을 듣는 느낌인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카르멘 역을 맡은 도마셴코는 무난하게 이 역을 소화해낸다. 하지만 너무 무난하게 소화한 나머지 사람에 따라서는 ‘그럭저럭, 그냥저냥’ 정도의 수식어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도 카르멘에게 요구되는 ‘찐하고 걸쭉한’ 에로티시즘이 좀 덜한 것이 안타깝다. 브린 터펠이 연기한 투우사 에스까미요는 좀 가벼운 느낌이 없지 않지만 상당히 자신감 넘치는 노래를 들려준다. 보첼리의 연약한 돈 호세와 좀 더 극적인 대립구도를 세우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터펠의 탓만은 아니다), 적어도 다수의 감상자들에게 어필함에 있어서는 보첼리를 앞선다고 할 수 있겠다.  


<꽃노래>,  Jonas Kaufmann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Covent Garden 2006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으며 지금은 공익근무요원으로서 어정쩡한 신분의 삶을 살고 있는 남자입니다. 남의 연주에 대해 끼적이는 걸 좋아하면서도 음악을 공부하며 생긴 어정쩡한 동업자 정신 탓에 나쁜 연주를 나쁜 연주라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암튼 정체가 수상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