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용 in 재즈피플] 청춘 한 편, 인생 한 편 민용 in 재즈피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5 - 청춘 한 편, 인생 한 편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
넌 할 수 있을 거야
뒤를 돌아봐
웃어 이만큼 온 거잖아

언젠가 웃으며 오늘을 기억할 날
조금 멋쩍을지 몰라
너도 몰래 어느새
훌쩍 커버린 너일 테니

* Album form Verandah Project, 『Day Off』「괜찮아」 중

어쩐지, 기필코, 괜찮아

김동률과 이상순이 베란다 프로젝트(Verandah Project)로 『Day Off』를 발표했다. 온라인 음반 매장과 인터넷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지만 그다지 ‘땡기지’ 않았다. 솔직히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요소만 있지 않은가. 김동률과 이상순이 만나 어쿠스틱한 음악을 한다는데 어떻게 안 좋을 수 있을까. 그렇다. 필자는 순전히 청개구리 심산으로 이들의 음악을 듣지 않겠다고 ‘땡깡’을 부리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Day Off』는 최근 가장 즐겨듣는 음반이 됐다. 첫 곡 「Bike Riding」은 연애로 달뜬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예쁜 곡이었고, 연애하는 친구에게 보내는 「어쩐지」는 듣기만 해도 간질간질해지는 곡, ‘이대로 그냥 멈출 순 없잖아 절대 아무렇게나는 안 돼(그럴 순 없어) 제대로 내가 맘에 들 때까지 내일의 내가 부끄럽지 않게’라고 노래하는 「기필코」는 불끈불끈하며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었다.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롤코의 담백함과 전람회의 풋풋함, 그리고 카니발의 세련됨을 적당히 뽑아내 한 장의 앨범을 완성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Day Off』를 듣기 전에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려 했던 책은 <씨네 21>의 인터뷰어 김혜리가 펴낸 인터뷰 모음집 <진실의 탐닉>이었다. 인터뷰 집은 화자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만큼 직접적인 울림이 있기는 하지만 독자가 끼어들 틈이 없어 자칫 지루해지기 쉽다. 게다가 인터뷰어나 인터뷰이나(인터뷰어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고 인터뷰이는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 왜 그렇게 ‘잘난’ 이들이 많은 건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도 스물 두 명이나 되는 유명한 이들을 한꺼번에 만나려는 얄팍한 속셈이 먼저였다. 그나저나, 『Day Off』는 꼭 소개하고 싶고, <진심의 탐닉>은 글을 쓰기 위해 구입까지 해 놓았고, 그런데 이를 어떻게 연결시킨담?!

베란다 프로젝트, 사랑 한 편 

『Day Off』에서「Bike Riding」이 단박에 귀를 사로잡았지만 어쩐지 필자가 마음을 빼앗긴 곡은 「어쩐지」였다. 이 곡을 듣는 순간 떠오른 곡은 김동률과 이적이 결성했던 카니발의 1집 『그땐 그랬지』에 수록된 「그녀를 잡아요」였다. 전람회(김동률, 서동욱)와 패닉(이적, 김진표)의 멤버가 모두 참여해 짝사랑의 열병을 앓는 친구에게 그녀를 붙잡으라며 충고와 위로를 해주는 곡이다. ‘지난 노래 가사처럼 술에 취한 목소리로 고백하면 어때요?’(모두들 알다시피 김동률의 「취중진담」을 일컫는 가사다) ‘이 여자다 싶을 때가 또 오는 게 아니죠.’ ‘두고 두고 땅을 치며 후회해도 그때 가서 우리 책임 없어요.’ 같은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는 20대의 정서를 닮았다. 그때는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연애문제로 힘들어했고, 친구와 밤새 술을 마시며 울기도 했고, 그러다가 학교도 과감하게(!) 빠질 수 있었다. 연애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 청춘의 6할쯤을 사로잡은 건 ‘사랑’이라는 단어 그 자체였다. 

그런데 롤러코스터의 조원선이 참여한 「어쩐지」는 ‘다시 연애 같은 건 못할 것만 같다고 땅이 꺼지도록 한숨만 쉬어대던 너 우리 몰래 풍덩 사랑에 빠져서 몰라볼 것 같아 다른 사람 같아 어색해’ ‘Bye Bye 기쁘게 보내줄게 가끔은 우리도 잊지는 말아줘 축하한다 정말 참 부러워 근데 왜 이리 맘 한구석이 휑한걸까’라고 노래한다(이 곡에서 이적이 참여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데, 설마 아기 아빠라 빼놓은 건 아니겠죠?!). 이제는 친구들과 함께 연애 얘기에 수줍어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게 되었고, ‘불꽃’ 사랑보다 ‘군불’ 애정을 선호하게 된 30대의 감성이라고 해야 할까. 「어쩐지」를 노래하는 이들에게서는 더 이상 젊음과 사랑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진심의 탐닉, 인생 한 편

그런가하면 <진심의 탐닉>에서는 스물두 명이 들려주는 인생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김혜리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리더 22인’이라는 부제에서 ‘크리에이티브’라는 표현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인터뷰를 읽다보면 이들이 창조적인 삶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진지한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데 더 중점을 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찍었던 청춘이라는 영화는 좌충우돌(좀 멋지게 좌충우돌이긴 했지만!)이었을지 몰라도 지금 찍고 있는 인생이라는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 진지하고 우직하며, 자아성찰적이다. 

소설가 김연수에게, 그가 생각하는 실패한 인생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가짜로 산 인생이요. 가면의 생. 특히 이른바 성공한 사람 중에 많이 보이는데, 자기 경험이 없고 보편적인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소설가의 관점이라서인지 몰라도 제가 제일 경멸하는 책이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에요. 그들은 실제로도 자기가 자서전에 써있는 대로 살았다고 믿어요.” (27쪽)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영화잡지 <키노>를 이끌었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말이 와 닿을 것이다. “시네필 중에는 쓰거나 하지 않고 계속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만 보는 사람도 있어요. 이야기를 나눠보면 바보예요. 중의적 의미의 바보죠. 반면 어떤 학생은 줄창 책만 읽어서 모르는 이론가가 없어요. 하지만 영화 한편을 같이 보고 대화해보면 머리가 뒤죽박죽이에요. 결국 저는 보기, 읽기, 쓰기의 삼위일체가 계속 같이 가야 할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 때는 만들기, 읽기, 쓰기가 같이 가야 하고요. 쓰는 것을 멈추는 순간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된 서랍처럼 느껴져요.” (120쪽)

읽는 내내 ‘질투크리’가 ‘작렬’한다. 어쩜 이렇게 똑똑할까, 어쩜 이렇게 생각이 깊을까. 그런데도 그들은 아직 멀었다는 투다. 그 겸손이 ‘척’이 아니라 ‘진심’인 걸 알기에 그들의 인생 한편 한편이 매력적인 영화다.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