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 솔로 3집 - 315360> - 진짜 위로 반디 음악 광장

김윤아, <김윤아 솔로 3집 - 315360>, T ENTERTAINMENT, 2010 


이 앨범 앞에서, 이전의 두 앨범은 그저 습작에 지나지 않는다. 어설픈 왈츠와 치기어린 모던걸, 카뮈를 읽는 트로트, 해리성 장애를 앓던 서커스였을 뿐이다. 이 앨범은 그 모든 것이며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 종종 불안했던 그녀의 다중적인 목소리가 이제야 한 인격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진짜 위로가 시작된 것이다.

자우림의 노래들을 포함해서 김윤아는 언제나 일정한 세계관을 말해왔다. 그것은 스스로 결박한 섬에 앉아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주길 바라며 쏘아 올리는 신호였다. 얼마나 모순인가. 스스로 선택한 결박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을 갈망한다는 것이 말이다. 김윤아의 솔로 앨범은 그 모순이 극에 달한 순간 토해지는 지진 같은 한숨이었다. 글쎄, 이렇게 썼지만 과연 사람들이 공감할지 궁금하다. 김윤아의 음악은 공감하지 않으면 말짱 꽝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 앨범의 미덕은 지진 같은 한숨을 더 이상 빙빙 돌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진부해졌지만 그 때문에 진실하기도 하다. “이상한 세상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첫 곡(「이상한 세상의 릴리스」) 첫 구절부터 짧은 칼로 깊숙이 찔러온다. “가만히 두세요 만지지 말아요”(「가만히 두세요」)라는 애원으로 연민, 그 커다란 구멍 속으로 밀어 넣고, 결국 “사랑받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이대로 있을래요”(「얼음공주」)라는 말로 어지럽게 만든다. 이제 다 지나온 것 같은 해일이 다시 속을 헤집는다. 이런 감정은 특수한 보편이다. 어린 시절 도시락을 못 싸 갔던 트라우마든지 존속 살해의 비극이든지 상처의 크기는 상관없다. 그런 것이 있었다면, 상처를 아직 잊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김없이 산 같은 해일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런 정서를 처음 보여주었던 『Shadow of Your Smile』이나 비극적인 귀부인 행세를 했던 『유리가면』은 이렇게 지진처럼 거대하지는 않았다. 고백하지 않고 위악했기 때문이다. 존재하기 위해 스스로 감추는 연극을 했기 때문이다. 이 간극은 어색한 발음 같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것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는 「비밀의 정원」에서 “슬픔의 문이 열리네”라고 부르며 목을 꺾을 때 얼핏 드러난다. 진심을 속이기 때문에 그렇다. 어쩌면 아이리쉬 포크로 환상을 만들어내는 위악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왜 사는 게 이리 슬픈가요” (「검은 강」)같은 적나라한 고백보다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적나라한 고백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은 단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누구인가요. 너무 미워요”(「착한소녀」) 같은 말을 하기 부끄러워 지금까지 돌고돌고 돌아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앨범은 용감한 앨범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10대 시절의 일기장, 그 수치스러운 기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김윤아가 이제야 진짜 무엇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운 고백을 직접 찌르면서도 조금도 망설임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러려면 사운드를 지배해야 하는데 그 점에서도 전작을 훌쩍 뛰어 넘는다. 「Summer Garden」의 공감각은 꼭 경험해 봐야 한다. 전자음 몇 개로 장난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여백을 사운드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로버트 플랜트와 엘리스 크라우스의 앨범 『Raising Sand』에서 ‘티 본 버넷’이 들려준 소리나 ‘에디 베더’의 사운드트랙 『Into The Wild』에서 ‘아담 캐스퍼’가 만들어낸 공감각과 유사한 방법론이다. 물론 ‘시크릿 가든’ 같은 선정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백을 못견뎌 하는 21세기 한국 음악 씬에 중요한 대안을 제시하듯 들린다. 절절한 고백과 함께 김윤아가 이쪽을 좀 더 파고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사정들 때문에 가장 중요한 트랙은 「도쿄블루스」다. 이 곡에는 그동안 김윤아가 솔로 앨범들에서 들려준 연극적 페르소나가 중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스타일 면에서도 어색함 없이 체화한 짙은 신파가 녹아 있다.
오래전부터 김윤아는 3박자 계열의 리듬을 각별하게 여겨왔다. 『유리가면』의 탱고나 스윙, 복고풍 미장센들이 다 거기서 나온 것이다. 이전까지는 그냥 장르를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연극 속의 인물보다 가면이 먼저 보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도쿄블루스」에는 역한 샅냄새가 풍겨온다. 장르가 아니라 사운드에 집중해서 생기는 결과다. 달콤한 주사가 주사(酒肆)가 아니라 주사(注射)로 느껴질 정도다. 고백적인 김윤아도 한 단계 성장했지만 연극적인 김윤아 역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을 마스터했다.

「도쿄블루스」가 다시 한 번 각별한 것은 비와 술에 취해 흐르는 멜로디가 ‘한운사’* 나 ‘유호’** 같은 고급 전통의 정서를 계승하듯 들리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고독과 전쟁이 촉발한 하이퍼 리얼리즘이 교묘하게 교집합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한국적 보헤미안의 정서랄까? 실존적 고독이 50여년의 공백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생각해보면 김윤아는 언제나 복고를 지향해 왔다. 유행으로서의 복고가 아니라 현재에 살고 있지 않은 이미지로서의 복고였다. 문득 「샤이닝」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김윤아는 언제나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꿔 왔다. 그녀가 현재도 미래도 아닌 과거에 결박되어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게 들린다. 그래서 김윤아는 특별하다. 저 먼 과거에서 스스로를 결박한 채 끊임없이 손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운사 : 대중가요 작사가, 방송작가
** 유호: 작사가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전자인형'님은?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맑은 날 컬처클럽 뮤직비디오를 보고 2차 성장을 감지한 구 메탈키드. 대마초 한 대 펴 보는 게 소원인 말보로 라이트 헤비 스모커. 웹진 음악취향 Y에서 전자인형이란 필명으로 평균 조회수 50의 잡다한 글을 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