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 그때,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블로거, 책을 말하다

김은국, <순교자>, 문학동네, 2010

 

1960년대, 어느 한국계 작가는 미국의 출판사들을 찾아다닌다. 그는 영어로 쓴 소설을 보여주지만 출판사들은 문전박대한다. 그 시절, 한국계 작가가 쓴 영어소설이라는 것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출간하게 된다. 김은국의 <순교자>는 그렇게 탄생했다.

소설은 미국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는가? 미국에서 20주 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펄 벅 같은 거장이 극찬하기도 한다. 뿐인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다. 한국계 작가 최초의 노벨문학상 후보가 등장한 것이다. 1960년대에 말이다. 1960년대에 한국계 작가의 데뷔작 <순교자>가 그 같은 일들을 만들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11월, 육군 정보처의 장대령은 이대위를 불러 공산당에 납치됐던 목사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평양에 있던 14명의 목사가 납치됐는데 그 중 12명은 처형당했고 2명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살아남은 2명이라고 해서 무사한 건 아니었다. 그 중 한 명은 미치광이가 되어 동네와 교회를 떠돌고 있었다. 그나마 신목사라는 사람은 제정신이었다. 하지만 그는 공산당에게 납치된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침묵을 지키는 중이었다.

육군의 장대령이 이대위에게 원하는 건 간단했다. 목사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본 뒤 그 내용을 갖고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인천상륙작전 뒤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한국군은 평양 일대를 점령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건 무력에 의한 것이었다.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공산당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살해당한 목사들을 ‘순교자’로 만들어 선전하는 것이었다.

명령을 받은 이대위는 신목사를 접촉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달라고 한다. 하지만 신목사는 묵묵부답이다. 왜 그런 것일까.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처형당한 이들이 순교한 반면에 신목사는 또 다른 유다가 되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이대위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기에 신목사는 너무 굳건해보였던 것이다.

진실이 알려지지 않는 사이, 장대령은 12명의 목사가 공산당에게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대규모 집회를 준비한다. 북한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물론이고 불안해 하는 주민들까지 한편으로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위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잘 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대위는 불안하다. 어째서 불안한 걸까? 혹시 처형당한 목사들이 순교자가 아니라 배신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중공군이 전쟁에 참여한다는 소문이 평양 시내를 불안하게 만들수록, 이대위의 고민은 깊어진다. 도대체 목사들이 납치된 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도대체 진실은 무엇인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순교자>는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과 다른 문제를 짚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극렬한 대립 사이에서 ‘남이냐, 북이냐’를 두고 고민했던 것과 다르게 ‘신앙’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존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추리적인 기법으로 그것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묵직함에 새삼 놀랄 수밖에 없다. 1960년대, 한국계 작가가 이런 소설을 썼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우리의 아픈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가. 소설 곳곳에서 느껴지는 전쟁의 상흔이 마음을 할퀸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구축한 문학적인 성취감을 목격한 건 뜻밖의 행운이다. 이제야 알았다는 것이 후회될 만큼, 그 행운의 값어치는 꽤 큰 것이었다.

그 시절을 배경으로 했던, 많은 소설들이 말했던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따른 고뇌 그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는 <순교자>,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것, 그것이 있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정군'님은?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믿으며 그 책을 찾아 다니는 30살 직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