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용 in 재즈피플] 건어물녀의 순정한 이야기 민용 in 재즈피플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36 - 건어물녀의 순정한 이야기

「Alison」

My Aim Is True
My Aim Is True
My Aim Is True 

* Album form Elvis Costello, 『My Aim Is True』「Alison」 중


하나씩 알고 보면 나쁜 책은 없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책은 사람과 같다. 만나자마자 친해지는 책도 있고 만날 때마다 즐거운 책도 있다. 그런가 하면 관심은 있지만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책도 있고 말을 걸어보지만 대화하지 못하는 책도 있다. 가장 힘든 책은 나름대로 말을 걸지만 소통할 수 없는 책들이다. 물론 그 책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여러 상황들이 있다. 꽉 막혀버린 내 문제일 수도 있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막아버린 책 문제일 수도 있고, 정신없는 상황의 문제일 수도 있고. 어쨌거나 ‘하나씩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책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두가 길었지만 할 이야기는 별 것 아니다. 읽는 책이든 만드는 책이든, 지난 몇 주 동안 전혀 소통할 수가 없었다는 것. 겨우겨우 읽어낸 책 두어 권과 페이지 넘기는 게 천근만근인 책 두어 권, 그리고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괴롭게 작업했던 책들. 매달 반복되는 작업이지만 특히 심난할 때가 있는데, 이번 달이 그랬다. 휴. 이런 필자를 구원(?)해준 건 만화책이었다. 

순정만화, 그 순정한 시절을 지켜봐준 친구들

중학교 무렵, 필자의 꿈은 만화잡지 기자였다. 만화 그릴만한 센스는 없으니 만화잡지에라도 취직해서 마음껏 만화를 보며 살고 싶었다. 또 당시 출간되던 댕기나 윙크의 편집후기는 만화만큼이나 재미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 만화보다는 일본 만화들이 더 많이 읽히기 시작했다. 한국 만화의 침체가 빈번히 거론됐다. 필자 역시 더 이상 ‘순정’하지 않은 나이가 됐다. 만화는 뜸하게 소식을 접하는 친구가 됐다. 우연히 만나면 반갑지만 다음에 연락하지는 않게 되는 그런.

최근에 다시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많이 나오면서 덩달아 만화까지 챙겨보게 됐다. 기왕 친구 얘기가 나와서 비교해보자면,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우연히 친해진 사람이 알고 보니 예전 친구의 베스트였다던가, 하는 류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그냥저냥 친했는데 볼 때마다 새로워서 더 친해지게 되는 친구라고 해야 하나? 다양한 모습으로 자주 볼 수 있다는 게 좋은 점일 수도 있다. 그런 만화로 <노다메 칸타빌레>와 <호타루의 빛>을 꼽고 있다. 한참동안 <노다메 칸타빌레>에 빠져있었지만 최근의 ‘훼이버릿’은 단연 <호타루의 빛>이다. 어쨌거나, 필자는 천재도 아니고, 세계에 나아가지도 못하고, 맥주나 탐하는(?) OL이 되었으니 말이다. 

‘건어물녀’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호타루가 27살부터 34살(혹은 그 이후까지) 겪게 되는 일과 사랑, 연애에 대한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그것들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가정은 틀에 맞춰 만드는 게 아니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돌아오는 장소가 어느새 기분 좋은 두 사람의 집이 되는 것이지” (14권) “나이를 먹어서 좋은 점은 아무리 좌절할 일이 있어도 그걸로 이 세상이 끝났다거나 자신의 포인트가 완전히 제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남겨진 작은 힘을 쌓아가다 보면 어느 샌가 예전의 자신을 넘어선 것도 실감할 수 있다.” (15권) 아, 물론 그런 연애는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내 소원은 진심이야

번외편인 카나메-유우코 커플을 연결해주는 곡은 엘비스 코스텔로의 「Alison」다. 혹자는 설정이 유치하다든가 「Alison」이 웬 말인가 하는 이야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꽤 괜찮은 선곡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적어도 엘비스 코스텔로의 「She」나 비틀즈의 「Yesterday」처럼 너무 많이 알려진 곡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영화 <노팅 힐>의 「She」로 너무(?) 많이 알려진 엘비스 코스텔로는 팝 보다는 락/ 펑크/ 컨트리 등 전방위 가수이자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재즈 쪽에 엘비스 코스텔로가 알려진 것은 2003년 보컬리스트 다이애나 크롤과 결혼하면서부터다. 이듬해 다이애나 크롤이 발표한 『The Girl In The Other Room』은 엘비스 코스텔로의 곡을 노래하고, 또 그와 함께 작곡하며 매혹적인 작품으로 탄생했다. 쌍둥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이들 역시 서로의 ‘작은 빛’을 만난 셈이다. 

p.s _ 비를 가득 머금은 날씨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Alison」도, 「She」도, 그리고 다이애나 크롤의 「Temptation」이나 「Almost Blue」도 좋은 선곡일 듯하다.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