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 교향곡 8,9번> -그리움으로 봉한 편지 반디 음악 광장

RAPHAEL KUBELIK, BERLINER PHILHAMONIKER,
<Dvorak: Symphony 8 & 9 [드보르작: 교향곡 8,9번]>, DG THE ORIGINALS, 1995

 


뉴욕으로부터 온 편지

여름에 휴가를 갈 때마다 정해진 매뉴얼처럼 차례대로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처음에 휴가지에 도착했을 땐, ‘아, 좋다! 이 동네에는 뭐가 있을까? 여기서 오래도록 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못해도 일주일 뒤에는 ‘이젠 집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된다. 현실을 탈출해 낯선 곳으로 왔다는 기쁨이 오래지 않아 바뀌는, 좀 아이러니한 순간. 한번쯤 겪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신세계로부터」는 그가 고향인 체코를 떠나 미국에서 지내던 시절에 작곡된 작품이다. 뉴욕에서의 음악학교 원장직과 오케스트라 지휘 기회를 제안 받은 드보르작은 자신의 음악적, 문화적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판단,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고 유럽과는 또 다른 그곳의 문화가 그에게 왕성한 창작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활기차고 떠들썩한 도시와 압도적인 대자연이 공존하는 곳. 근대 기술의 총아인 철도산업이 한창 발달하던 미국(그렇다. 드보르작은 기차와 철도에 목숨을 거는 ‘철덕후’였다고 한다)은 드보르작에게는 다이내믹한 신세계,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신세계는 그에게 영원한 고향이 되어줄 수 없었다. 미 대륙에서 그는 어디까지나 이방인이었고, 그곳은 잠시 있다오는 휴가지와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언제든지 돌아가야 할, 숙명과도 같은 고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악기들
 - 카라얀 vs 아바도

요즘은 수많은 오케스트라들 중에서 암스테르담의 콘서트헤보우가 상당히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하지만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베를린 필과 빈 필의 양대산맥이 형성되어 있었다. 베를린 필의 종신직을 맡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노년이던 80년대 중반부터 이런저런 일로 베를린 필과의 관계가 흐트러지자 오스트리아로 날아가 빈 필하모닉과 많은 음반작업과 콘서트를 했는데, 빈 필과 1985년에 녹음한「신세계로부터」역시 그 작업들 중 하나이다. 이 연주에서 카라얀은 30년 넘게 함께한 베를린 필에서 체득한 오케스트라의 ‘사용법’을 다른 오케스트라에서도 마음껏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조금 아이러니컬한 느낌을 준다) 물론 베를린 필과의 냉각기 이전에 빈 필을 지휘한 경험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녹음에서 들려주는 사운드의 풍성함과 호화로움은 베를린 필과 30여 년 간에 걸쳐서 구축한 그것과 견주어 부족함이 없다.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반주부와 주선율의 또렷함이 일말의 이질감도 없이 조화되는 현악군은 물론이며, 풍부한 감성을 요구하는 작품의 특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목관들, 고압전류처럼 짜릿하면서도 묵직하게 뻗어 나오는 브라스는 카라얀이 평생에 걸쳐 이루고자 했던 관현악 예술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앞서 말한 전체적인 조망 능력과 섬세함에 대한 노대가의 솜씨는 가히 할 말을 잃게 만들지만, 고령의 나이 탓인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부분에서의 저돌적인 추진력이나 리듬의 날렵함에 있어서는 다소간의 둔중함이 느껴지는 것은 못내 안타깝다.

97년에 녹음된 아바도와 베를린 필의 연주 역시 주목할 만하다. 소리의 질감이 빈 필보다는 다소 억세게 느껴지지만 일사불란하고 지능적인 합주 능력과 단원 개개인의 높은 음악적 이해도는 빈 필의 그것과 막상막하이다. 특정 악기군에 치우침이 없이 전체적인 밸런스와 리듬의 생동감으로 승부하는 아바도의 능력 역시 놀라우며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모든 것을 확신에 차서 연주하고 있다. 하지만 카라얀과 빈 필이 보여줬던 ‘진한 맛’은 아무래도 느끼기 힘든 것이 사실이며, 군데군데 완급조절이 좀 더 유연했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악기들을 다루는 명장들 앞에선 이런 보잘것없는 불평들을 암만 늘어나 봐야 뭐하겠는가. 배부른 감상자의 철없는 소리일 뿐.

니들이 흙맛을 알어?  
- 쿠벨릭 vs 노이만

사실 온전히 토속적인 음악어법으로 되어 있다고 하긴 힘든 ‘신세계’지만, 작곡자가 체코인이니 만큼 동향의 지휘자들의 연주 또한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체코의 대표적인 두 지휘자인 라파엘 쿠벨릭과 바츨라프 노이만은 앞서 언급된 카라얀이나 아바도의 기술적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같은 핏줄만이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애잔함과 자연스러움을 가지고 있다. 쿠벨릭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72년 녹음은 카라얀이 같은 악단을 지휘할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세련되지 못한 부분이 있고 3악장에서는 덜 다듬어 진 듯, 들쑥날쑥한 밸런스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1악장과 4악장에서 보여주는 진득한 현의 보잉(활쓰기)과 전곡에 걸쳐서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체코인 지휘자와 서유럽 악단이 만들어낸 ‘신세계의 좋은 예’라고나 할까.

노이만이 82년에 체코필과 녹음한 연주는, 베를린 필이나 빈 필처럼 항상 꽉 찬 소리를 들려주진 못하지만 (현악기가 종종 힘에 부치는 느낌이다) 그것을 상쇄시키는 2악장의 선율미가 절정이다. ‘Going Home’이라는 노래로도 불리는 그 유명한 잉글리시 호른의 선율은 덤덤하면서도 절절하다. 지구상에서 ‘아리랑’을 가장 잘 연주하는 사람은 결국 한국인이 될 수밖에 없듯이, 같은 악보에 적힌 같은 선율을 연주하는데도 체코인의 그것은 ‘뭔가 미묘하게’(혹자는 전문용어로 ‘거시기’라고 한다) 느낌이 다르다. 필요 이상으로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데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프레이징은 듣는 이의 눈물을 그렁거리게 만든다. 카라얀이나 아바도를 비롯한 비(非)체코인 지휘자들의 호화로운 사운드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들만의 흙냄새가 느껴지는, 거칠지만 정감이 넘치는 음악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으며 지금은 공익근무요원으로서 어정쩡한 신분의 삶을 살고 있는 남자입니다. 남의 연주에 대해 끼적이는 걸 좋아하면서도 음악을 공부하며 생긴 어정쩡한 동업자 정신 탓에 나쁜 연주를 나쁜 연주라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암튼 정체가 수상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