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 요리 보고 저리 보면 슬퍼질지도 책, check, 책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 요리 보고 저리 보면 슬퍼질지도 

 

앞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공룡 둘리’의 표정이 압도적이다. 거뭇하게 자라난 수염에 굳게 다문 입술, 푹 눌러쓴 모자 밑으로 겨우 그러나 분명하게 보이는 한쪽 눈빛. 둘리는 둘리인데, ‘그’ 둘리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친근했던 명랑만화 주인공 ‘귀여운 아기 공룡’은 어디로 가고, 어떤 절망과 패배감, 분노 같은 것을 침묵으로 쏟아내며 보는 이-독자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공룡 둘리’가 있다. 익숙한 것이 낯설어지는 순간, 그리고 충격. 

나는 “공룡 둘리”를 보았다.
… … …
아니, 둘리가, 둘리가…?
만화를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혀 왔다.
현기증이 났다.
“도대체 누가 둘리를 이렇게 만들어 놨어?”
                                                        

  -만화가 김수정, 추천사 중

일단 둘리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만화가 최규석이다. 일을 하다 손가락이 잘려 초능력을 잃어버린 노동자 둘리와 동물원에서 몸을 파는 또치, 외계연구소에 넘겨져 생체실험대 위에서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된 도우너와 폭력을 일삼으며 감옥을 제집 드나들 듯하는 희동이. 최규석의 단편집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의 표제작인 ‘공룡 둘리’는 이렇듯 “국가대표급 명랑만화의 캐릭터들을 처절하고 남루한 현실로 끌고 들어옴으로써” (111쪽) 극한의 블랙코미디를 만들어낸다.

그래, 이것은 극한일지 모른다. 우리네 삶이 사실 그다지 ‘명랑’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랑’함을 꿈꾸는 우리를 그곳으로 내모는, 그것을 위해 던져진 한마디. “더 이상… 명랑만화가 아니잖니!” (96쪽) 이로써 과거 어디쯤에 있었을 ‘아기 공룡 둘리’에 대한 기억은 배반당하고, 내 삶의 미래 어디쯤엔가는 꼭 끼워 넣고 싶었던 명랑 혹은 환상까지 강탈당한 기분을 느낀다.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해버리고 무감해지려 무던히 노력했던 처절한 현실이 다시금 현실성을 회득하는 순간, 그리고 멈칫.

내가 무감해지려 노력했던 현실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서는 친구의 어려움 따위, 소주 한 잔의 푸념과 자책으로 눈 질끈 감고 넘겨버릴 수 있는 게, 또 나의 현실이다. 아니 그것이 진짜 현실이다. ‘공룡 둘리’에서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나 또한 저리도 비루한 인생이 내 것이 아님에 안도하며 일상을 위로하는 것, 그러나 그것도 잠깐, 또다시 내 삶의 털끝만한 어려움을 과장하고 호들갑 떨며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얼굴을 했던 것은 아닌가. 그러므로 과연 둘리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데 내 몫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공룡 둘리’의 저 눈빛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나는 "자아실현, 사회참여, 고차원적 소통, 남 위에 서기, 칭찬 듣기, 정신적 노출증... 이런 고상하거나 혹은 세속적인 많은 부모들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그것들과는 관계없이 이 책 속에서 읽히기를 바라는 (작가 최규석)의 간절한 마음" 을 받은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그) 마음만 받"은지도.  (작가의 말 중)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덧글

  • 라쿤J 2010/08/13 12:15 #

    둘리가 마지막에 찾아간 곳은 고길동씨의 무덤이었지요. 전 그게 더 슬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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