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생활백서> - 시대를 달관한 20대의 자화상 블로거, 책을 말하다

박주영, <백수생활백서>, 민음사, 2006  


“나는 책을 읽으면서 살고 싶다. 책을 읽을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일하기 싫다고 말한다면 별 핑계도 다 있다고 하겠지만 나한테는 그것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나의 진실이다. 문제는 책 읽을 시간을 더 많이 갖기 위해 일을 하지 않으면 책을 살 돈이 없다는 것이다. 균형, 그것이 문제다. 그리고 그것은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21쪽)

책이나 읽으며 사는 게 소원인 스물여덟 서연의 일상은 단순하다. 책을 읽거나, 책을 사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읽을 책은 언제나 무수히 많다는 것이 유일한 삶의 이유이다. ‘책 읽는 나’보다 더 대단한 무엇이 될 능력도, 될 마음도 없다.

“나는 그냥 좋아하는 책을 읽을 뿐이다. 막연하긴 하지만 책을 읽고 있는 순간만은 적어도 내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책이 나를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살고 싶게 만든다는 것밖에는 알지 못한다.” (79쪽)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이리 쏙쏙 골라 할까 싶은 주인공 서연에게서, 문진영의 소설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을 읽었을 때와 같은 ‘무력감’이 느껴진다. 최근 20대 중후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들의 공통점인가 보다. 비관이나 염세, 회의랑은 다르다. 뭐랄까. 무리하지 않는 달까. 주로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연명하는 등장인물들은, ‘못난’ 자신을 한탄하며 머리를 쥐어뜯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만 빼고 잘 돌아가는 이 ‘엿 같은’ 세상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쳐드는 짓 따윈 더더욱 않는다. 그냥 달관한 사람처럼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어 살아갈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창 머리 굵어질 10대를 IMF와 함께 보낸 이들이 지금의 20대 아닌가. 청춘을 바쳐 일한 회사에서 구조조정 당하는 아버지를, 가계를 위해 마트 계산원으로라도 나서야 했던 어머니를, 변변한 대학을 나와서도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형과 누나를, 학원 다닐 형편이 안 돼 혼자 공부하다 결국 지방대를 진학하던 친구를 보며 자라온 이들이다. 이들이라면 조금만 통찰력이 있어도 알 수 있다. 어딜 가서 무엇을 할래도 천문학적인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이 전쟁터 같은 삶에서 자신이 ‘선택’ 받을 일은, 영화가 아니고서야 일어나지 않을 거란 걸. 아무리 애쓰고 발버둥 쳐도 자신의 미래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학벌주의는 갈수록 공고해지고 부동산 가격은 치솟을 대로 치솟은 이 땅에서 웬만한 직업을 갖고 웬만한 배우자를 만나 웬만한 집에서 사는 ‘평범한 소망’을 이루기는 하루가 다르게 어려워지고 있다. 슬프게도 그들은, 이 모든 사실을 모르는 척, 여전히 ‘하면 된다’ 같은 슬로건만 믿고 생의 분투에 뛰어들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처음부터 아예 ‘희망’하지 않는다. 더 이상 불가능한 꿈을 품지 않고 무엇이 되고자 하지도 않는다. 지금의 나, 나를 둘러싼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이어갈 뿐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부류의 사람이지만, 상관없다. 애초부터 내 삶의 방향은 부나 명예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아주 조용히 이 초라한 도시 한 모퉁이에서 점점 더 가벼워지고 있음을 즐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추락의 공포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일상이다. 나는 희망이 없다. 아니, 있긴 있으나 단순하다. 그러므로 두려울 것이 없다. 나는 잃을 것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두려울 것이 없다. 나는 가볍고 의미 없고 비생산적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든다.”
(140쪽)

주류로 편입하려는 가련한 몸짓 대신 제 손으로 스스로의 희망을 거세함으로써, 그들은 그렇게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도공'님은?
가진 거 없이 가난해서, 한없이 가벼워서,  메인 데 없이 자유로워서 굶어죽기 딱 좋게 생겼지만 그래도 간만의 백수질이 몸서리치게 즐겁기만 한 '개청춘'. 

 


덧글

  • 아라 2010/08/24 15:41 #

    아아, 축제 벼룩시장에서 산 뒤 단숨에 내가 선정한 올해의 최고도서 1위에 뽑힌 <백수생활백서>군요.
    마음에 든 책이라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해줬는데 그 책은 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 반디앤루니스 2010/09/17 13:30 #

    저도 요즘 제가 읽고 좋은 책을 주위 분들에게 마구마구 추천하고 빌려드리는데,,
    아라님처럼, 그 책은 잘 있을까, 궁금해지네요.^^

    -현선 드림
  • 활엽수 2010/08/24 17:37 #

    정말 이 책 읽으면서 주인공이 말한 책들 너무 읽고 싶어서 메모를 계속해나가다 포기하고 그냥 이 책을 산 기억이 나네요 ㅎ
  • 반디앤루니스 2010/09/17 13:31 #

    ㅋㅋㅋㅋ 저 책의 주인공처럼, 저도 마냥 책만 읽으며 살고 있습니다.

    -현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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