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 블로거, 책을 말하다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갈라파고스, 2007
 


‘단비’라는 MBC 오락프로그램이 떠오른다. ‘좋은 일’ 많이 한다는 차인표 씨를 찾아간 자리에는 그 외에도 많은 연예인들이 있었다. 국제구호단체를 통해 제3세계 아이들을 후원한다는 그들은 반쯤은 쑥스러운 듯, 반쯤은 으스대듯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의 사진을 꺼내 보였다. 사진 속에는, 그들이 후원한 돈이 현물화된 다양한 생필품들과 나란히 서있는 아이들이 하나같이 활짝 웃고 있었다.

대부분의 매스컴들이 기아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그러하다. 그들이 얼마나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보여주는 자극적인 영상과 스토리로 사람들의 동정심을 잔뜩 헤집어놓고 후원, 기부, 봉사 따위를 요구하는 것으로 끝맺음한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인 냥.

난 이런 것들이 너무 불편하다. 방송 내내 띄워놓는 ARS 전화번호와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이들이 다를 게 무언가. 개인의 동정심을 무수히 자극하는 사회는 전혀 좋은 사회가 아니다. 이렇게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순간 구조의 문제점은 은폐된다. 단적으로 내가 한 아이를 후원하고, 그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고 뿌듯해 하는 동안 그 한 아이에 가려진 다른 수많은 아이들은 ‘예정대로’ 죽어갈 것이다. 그들은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이 책도 계속 회피해왔다. 역시 같은 방식으로 기아와 굶주림을 다루고 있을까 봐. 주변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나온 지 2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 책을 보게 된 이유이다. 다행이 이 책은 내가 우려하던 것과 달랐다. 아니, 오히려 기아를 통해 ‘불평등’의 문제를 극단적으로 드러내고 더 철저하게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한마디로, ‘세계 기아 실태 보고서’라고 하면 되려나.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대부분 제3세계 국가들을 배경 삼는 이 책은 세계에 굶주림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특히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전 세계에 걸쳐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해있는 사람들은 8억 5천만 명이라고 한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기아가 넘쳐나는 국가에는 자신들의 이익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부패한 정부와 기득권 세력들이 있다. 물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강대국의 식민지를 겪으며 산업구조가 왜곡되고 수탈당했던 역사가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부르키나파소 상카라의 사례는 국가 단위의 근본적 개혁이 기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다국적 기업의 횡포 앞에서 쉽게 좌절되고 만다. 이제 우리는 비로소 거대한 신자유주의의 벽 앞에 다다른다. 인간의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이 상식 밖의 시스템이 극심한 불평등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이제 저자는 이 거대한 시스템을 전복하기 위해, 거꾸로 인간 개개인의 인간성에 호소한다. 인간이 타인의 고통을 사유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데 희망을 거는 것이다. 자본의 세계화에 제동을 걸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국제적 연대를 공고히 하는 것 뿐이다! …라고 하면 무엇을 해야할 지 너무 막막한가. 소시민일 뿐인 자신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당장은 나와 상관없어 보이지만 해당 지역에 수없는 희생자와 난민을 만들어낼 게 뻔한 타국의 전쟁을 반대하는 것, 다국적 기업의 영향력을 조금이나마 감소시키기 위해 그들의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 것, 강대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립적 경제를 구축하려는 제3세계 국가에 지지를 보내는 것… 외에도 생각해 보면 수십, 수천, 수만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들의 고통까지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며, 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가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충.만.하.게.

오늘의 책을 리뷰한 '도공'님은?
가진 거 없이 가난해서, 한없이 가벼워서,  메인 데 없이 자유로워서 굶어죽기 딱 좋게 생겼지만 그래도 간만의 백수질이 몸서리치게 즐겁기만 한 '개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