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 있어요> - 오래된 진심 반디 음악 광장

하이 미스터 메모리, <내가 여기 있어요>, 소니 뮤직, 2010 


참 느리게도 걸어왔다. 「장마」라는 제목으로 「다시 비가 내리네」를 무대에서 처음 본 것이 2009년 초였는데, 그 이후 이 곡을 몇몇 무대와 유튜브를 통해 들었던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완결된 스튜디오 녹음 버전이 손에 잡힌다. 『내가 여기 있어요』는 발걸음이 느린 아티스트, 하이 미스터 메모리(본명 박기혁) 의 두 번째 앨범이다. 

그의 팬들이라면 이 앨범은 '신곡을 소개'하는 용도보다는 '그간 무대에서 들려줬던 곡을 정리'하는 의미가 더 강할 것이다. 이미 다른 컴필레이션 앨범을 통해 소개되었던 「Fat Boy」나 무대의 단골 레퍼토리였던 「꽃순이 이야기」, 그리고 참 오래도록 '장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타이틀곡 「다시 비가 내리네」까지 앨범의 적잖은 곡들은 이미 무대를 통해 소개된 오래된(?) 곡들이다. 아마도 팬들에게는 이러한 '정리'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 다소 아쉽겠지만, 그렇더라도 『내가 여기 있어요』가 (전작이 그랬듯) 깊은 생각과 정련의 시간을 거쳐 나온 앨범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 슬로우 푸드를 프랜차이즈에서 즐기는 논리의 세계에서, 『내가 여기 있어요』는 아티스트 자신의 진심과 시간을 자산으로 쌓아올린, 흔치 않은 장인의 맛을 지닌 앨범이다.

느린 블루스 트랙처럼 시작되다가 이내 감성적인 모던 록으로 변해가는 「다시 비가 내리네」는 자연스러운 변화와 흡인력 강한 멜로디, 익숙한 듯 정교하게 맞춰지는 연주의 합이 어우러지며 깊은 감성의 골을 만들어낸다. 사색적인 어쿠스틱 트랙 「커피를 마시는 동안」은 짤막한 일상을 나열하는 듯 그 안에 담긴 사연을 상상하게 하는 서정성이 일품이고, '처음부터 엄마였던' 엄마에 대한 감정을 동화적인 상상과 사연으로 재미있게 담아낸 「엄마를 부탁해」는 순간의 감상이 아닌, 보다 깊은 이후의 여운을 남긴다. (전반적으로 깊고 느린) 그의 모든 트랙 중 가장 흥겨운 곡인 「꽃순이 이야기」는 8~90년대 한국 락 음악의 흥겨움에 모태를 두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선명히 새기며 무대가 아닌 곳에서도 절로 곡을 따라 타게 한다.

하이 미스터 메모리는, 80년대의 어느 지점에서 흔하거나 익숙했을 태도로 21세기에 음악을 업으로 하는 이방인 같은 아티스트다. 오랜 생각과 다듬음의 흔적이 깊이로 느껴지는 그의 곡들은, 그래서 장르나 소리의 규모로 예단하기보다 그 이야기와 감성의 궤적을 따라 설명할 때 보다 온전하게 그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내가 여기 있어요』는 그가 여전히 과작의 아티스트임을 입증하면서, 동시에 여전히 좋은 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 또한 증명하는 올해의 소포모어 앨범이다. 선선한 오후 커피를 마시거나, 내리는 비를 보거나, 혹은 동네 아이들의 수다 소리를 듣는 그 어디 즈음에서 『내가 여기 있어요』는 당신에게 다시금 기억될 만한 비범함을 지니고 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muscleboy '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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