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탐하다> - 남편을 탐하다 블로거, 책을 말하다

김상득, <아내를 탐하다>, 이미지박스, 2010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지금 휴전 중입니다. 양쪽에서 서로 총을 겨누고 누가 먼저 쏘기만 해봐라, 그때부터 ‘요이땅’ 싸움 시작이다,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겁니다. 사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로서는 이런 상황에 그저 무심하지요. 가족이나 지인들 중 누군가 군대에 몸담고 있지 않는 이상, 무관심의 상태는 더욱 오래 지속됩니다.

예전이었다면 저도 이런 시끄러운 상황에 남의 집 불구경하듯 무심했겠지요. 허나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군대에 몸담고 있는 남편의 일신이 걱정되더군요. 매일매일의 일상을 함께 할 수 없는 주말부부이기 때문에 더 걱정스러워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진 서로의 일상이나 관심사에 대해 점점 무던해지기만 했는데 말이죠. 물론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애틋함은 더 할지 모르나 소소한 일상이나 상대방이 현재 가지고 있는 관심분야 등에 관한 것들은 자연히 소홀해지게 되더라고요. ‘몸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건 그냥 생겨난 말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다가 궁금해졌습니다. 매일 붙어 있는 부부라면 서로에 대한 관심이 더욱 지대할 것인지, 아니면 박박 긁고 있는 바가지가 깨지게 더 몰아붙일 것인지. 결혼정보회사에서 기획부장으로 계신다는 김상득 부장님께서는 어느 날 문득 매일 부대끼며 살고 있는 아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내를 무심한 듯 뭉클하게 탐하다>라는 글을 집필하셨다고 하네요.

이 책은 그가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아내’라는 이름의 한 ‘사람’을 발견하면서 써낸 에세이 묶음입니다. 남편의 시각에서, 아내라는 인격적 존재를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책이지요. 물론 어르신들 중에는 ‘몸 부대끼며 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될 텐데, 이런 쓸데없는 책도 있냐’ 며 낯을 찡그릴 분들도 있겠지만, 이 책 꽤 쓸만합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그저 그런 에피소드인 줄만 알았습니다. 어느 책을 잡든 목차와 머리말을 제쳐놓고 본문부터 읽는 습관이 있던 저지만 어쩐지 이 책은 프롤로그부터 목차까지 꼼꼼히 보게 되었습니다. 연결된 에피소드들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섹션을 선택해서 읽는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저 그런 중년 부부들의 삶이려니 하고 목차를 읽다가 ‘아내에게 예쁜 속옷을 선물하는 이유’ 라는 목차를 보고는, 어쩐지 부끄럽기도 하고 중년 부분들도 이런 선물을 하나 하는 의구심과 함께 호기심까지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당장 페이지를 넘겨보았지요.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명절에 아내는 며느리가 된다. 그리고 며느리는 여자도 무엇도 아니다. 그런 상실감이 한가위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내의 지친 몸과 마음을 더 힘들게 한다. 그때쯤이면 둔하고 눈치 없는 남편도 아내의 기색을 살피기 시작한다. 뭔가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남편은 모른다. 그러니 남편은 아내의 추석 선물로 속옷을 준비해야 한다. 아내는 다른 식구들을 가장 많이 챙기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한 물건은 나중으로 미루고 사지 않는 사람이니까. 아내는 가장 풍요롭다는 한가위에 가장 가난하고, 가장 섭섭하고, 가장 지친 사람이니까. 자신을 여자도, 무엇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71쪽)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그저 그런 감상에세이는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가위가 “남편은 한가하고 아내는 가위 눌리는 날”(155쪽)이라는 걸 김부장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연애시절이나 신혼 초에만 아내를 위해 선물을 건네는 게 아니라 오래도록 같이 산 부부일수록 예쁜 속옷을 선물해야 하는 것도 알고 계시는 분이시구요.

그래서 저에게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아내를 보는 남편을 훔쳐보는 재미 가 있었습니다. 아주 짧은 단편들이기에 쉬 지루하지 않기도 했지요. 게다가 아내가 아닌 한 인간을 탐구하는 자세로 써내려간 한편 한편의 글들은 나름의 위트와 진지함을 담고 있었습니다. 매일 보는 부부도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면 이렇게 새롭게 보이겠구나, 떨어져 있는 내 짝지는 내가 항상 새롭게 느껴질까 하는 궁금증도 더불어 생기던데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용기 내어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저 그렇게 몸이 편한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다보면 의미 없는 삶이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이겠지요. 김부장님이 아내라는 인격적 공간을 탐색하기로 마음먹고, 생각한 대로 실천해 아내의 속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면, 어느 맥락에서는 폴 발레리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에 치여 무던한 일상 속으로 사그라지고 마는,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인격적 풍요로움은 서로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의 노력 없이는 그에 맞는 의미와 가치를 갖지 못할 테니까요.

지금의 시끄러운 상황이 정리되어 멀리 떨어져 있는 짝지가 다니러 올수 있게 된다면, 저도 한 번 남편을 무심한 듯 뭉클하게 탐해 보려고 합니다. 박박 긁어 놓은 바가지가 깨지기 전에 말입니다. 그리고 나의 탐험이 어느 정도 끝나고 나면 짝지에게 김부장님의 보고서를 선물해야겠어요. 너도 한 번 나를 탐해봐라! 그리고 김부장님이 알려주신 생활의 지혜를 열심히 배워서 계획을 세우고, 생각한대로 실천해서 나의 기쁨조가 되어 보렴 하면서요!
 

오늘의 책을 리뷰한 '토토실~*'님은?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수필집 하나 갖는 게 소원인,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유쾌한 독서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