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롱뇽과의 전쟁> - 인류 멸망 예고에 대한 또다른 접근 블로거, 책을 말하다

카렐 차페크, <도롱뇽과의 전쟁>, 열린책들, 2010 


때로 할 말이 너무 많으면 되려 말을 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말을 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여기 존재한다. 적어도 이 책 앞에서만은. 도대체 이런 문학이 어디 숨어있다 이제야 나타난 걸까. 한국 출판계 번역 너무 늦다. 니가 체코어 공부해서 직접 읽으세요, 하면 굳이 할 말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멋드러진 수다의 향연에 체코에서는 존재만으로도 유명하다는 작가 특유의 다재다능한 유머,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다더니 정보 가공 솜씨, 알록달록한 색지 사용 본문 하며 세상에, 이건 문학이라기보단 자연대백과사전의 도롱뇽편이거나 SF소설, 뭐 그런거라 봐도 무방하다. 도롱뇽에 대해 혀를 내두를 만한 막대한 정보의 가공은 전자요, 도롱뇽과 인간의 전쟁을 그리는 가까운 미래의 형상은 가히 후자다.

아하하. 처음에 나는 떼굴떼굴 굴러다녔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책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읽혀야 한다고. 하지만 또 소심한 여자인간인 나 같은 사람은 아무에게나 덜컥 추천할 수 없을 것 같다. 열린책들 출판사의 문학은 다 이렇더라. 예전에 시배스천 폭스의 <새의 노래>를 어디선가 보고 꽂혀서 페이퍼북으로 덜컥 구입했는데 딱 죽겠는 거다. 두께도 두께지만 글자의 압박 때문에. 못 읽는 언어로 된 원서를 구입했던들 그렇게 막막했을까. 책을 읽을 만큼 읽는다고 자부했지만 글자의 압박은 그저 글자의 압박일 따름이었다. 내가 법학서를 읽고 있는 건 아니잖는가.(이건 하다못해 손으로 짚어가며 읽어야 한다. 흑흑.) 어쨌든 그와는 다른 이유로 그 책은 여전히 책장에서 엑스트라역을 하고 있지만.

그에 비하면 굉장히 세련되고 예쁜 편이라도 압박으로 치면 그 못지 않은 것이 바로 이 <도롱뇽과의 전쟁>이다. 현빈 말대로 한땀한땀 찍어냈는지, 빽빽하다 못해 숨 쉴 틈도 없는 문지기 포본드라가 수집한 도롱뇽에 관한 기사를 읽자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이건 2부가 특히 심하다. 이 책은 3부 구성인데 2부는 실험적 구성이자 편집의 성격이 다소 쎄다. 이제야 말이지만 가공 기사는 몇 번이나 건너뛰려 했다. 빨강, 초록, 노랑 색지인 게 그나마 다행이라 건너뛰기까지는 안하도록 막아주었으나.(종이신문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익숙한 사람은 괜찮을 수 있음)

이야기는 온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네덜란드 출신의 선장, '반 토흐'로부터 시작된다. 항해 중 정박한 어느 섬에서 본의 아니게 머물게 된 그는 원주민들이 끔찍하게 두려워하는 어떤 괴생명체와 맞닥뜨린다. 외부인인 그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닷속 깊이 진주조개를 쌓아두고도 바닷물에 발 담그기 두려워하는 원주민에게 약간의 호기심과 답답함이 들었을 뿐이다. 그가 바다에 간 건 오로지 진주조개 때문이었다. 그것이 발단이었다. 도롱뇽은 배를 채워야 할 조개를 쥐고도 열지 못해 낑낑댔고, 선장은 그들이 캐올 수 있는 조개에서 진주를 채취하는 것이 목적.(아참, 원주민이 끔찍히 두려워한 괴생명체는 도롱뇽이었다.) 그는 여기서 굉장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는데 도롱뇽에게 진주조개 여는 방법을 시범보인 것. 이제 그들은 공생의 관계에 놓였다. 도롱뇽은 진주조개를 캐오고 선장은 그것을 열어준다. 진주알은 선장이 가지고 조개껍질의 국물은 도롱뇽이 마신다. 도롱뇽은 그렇게 선장에 대한 신뢰를 조금씩 쌓은 걸로 보인다. 더군다나 선장은 조개를 잡을 수 있는 온갖 도구나 물건을 비롯, 조개를 열 수 있는 칼까지 도롱뇽에게 선물했는데 도구를 이용한 도롱뇽의 수완이 꽤 좋았음은 분명하다. 그가 도롱뇽에게 언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선장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욕심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일개 선장인 자신을 도와 도롱뇽을 통한 진주조개 따기 사업에 투자해줄 기업을 물색하다 어릴 때는 멍청해서 줄곧 놀림감이 되던 친구 '본디'가 엄청난 부를 거머쥔 사업가임을 알게 된다. 그를 본디에게 인도해준 것은 본디의 가택 문지기 '포본드라'의 판단이었고, 이런 이유로 포본드라는 마지막까지 자신으로 인해 인류의 삶이 도롱뇽에게 위협받게 되었다며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하지만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겠는가? 선장은 본디가 거절하면 또 다른 사업가를 찾아갔을 것이 분명하고, 선장과 도롱뇽의 기막힌 공생 이후 인류의 삶은 이미 위험하게 흔들리고 있던 셈인 것을. 어쨌거나 여기까지 해서 "이러니 저러니 해서 반 토흐 선장과 사업가 본디, 도롱뇽은 서로 도와 평생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했으면 아름다웠을 것이다. 이쯤에서 막을 내렸다면 아름다운 진주조개와 친근한 도롱뇽, 인생 한 방을 몸소 실천해보인 반 토흐 선장, 그를 도운 친구 본디의 동화 같은 판타지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과 야망은 언제 어느때 파멸을 불러올지 모르는 법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만으로 손바닥 뒤집 듯 변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고 그땐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도롱뇽 사업이 시작되자(도롱뇽이 바닷속에서 진주조개를 잡아준다는 소문이 널리널리 퍼져 너나할 것 없이 도롱뇽과 진주조개를 찾아나서게 된 이후) 도롱뇽은 단지 인간이 진주를 손쉽게 얻는 데 필요한 온전한 도구만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당국은 물론 이웃나라, 기업은 물론 개인들까지 도롱뇽을 사고 싶어했고, 그들은 도롱뇽을 이용해 어떤 이득이라도 취하려 눈이 벌개 있었다. 인간의 손 안에 완벽히 포박한 채로 자신들이 필요한 때에 도롱뇽을 이용하고 또 내다버리고 싶어했단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롱뇽 신디케이트는 시간문제였고, 판은 곧 그렇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도롱뇽에게 기대한 목표치가 한없이 높았기 때문에 도롱뇽을 이용해 더 많이 얻으려고 투자한 것들로부터 발생했다.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살도록 만들고, 인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다양한 산업에 도롱뇽을 이용하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롱뇽은 똑똑해졌다. 인간과 대화가 가능해지면서 그들이 못할 일은 없어졌다.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았다. 도롱뇽은 축축한 땅에서 살고 사람에 의해 사람 땅에서 살 수도 있었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했다. 이용가치가 사라져갈 때쯤 인간은 도롱뇽으로 이 세상에서 가능한 모든 실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말을 할 줄 아는 똑똑한 도롱뇽은 잡아먹혔고, 죽임을 당했고, 종종 투쟁을 했다.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집집마다 도롱뇽을 키우지 않는 집이 없었기 때문에 도롱뇽 수요는 치솟을 때로 솟았고 가격 또한 높았다. 유럽 해양과 땅에서 시작된 도롱뇽 전쟁은 점차 다른 대륙으로, 다른 국가로 퍼져 나갔다. 도롱뇽 개체수는 이미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하고 있었다. 급기야 도롱뇽들은 자신들의 서식지인 해양을 둘러싸고 인간을 향한 전쟁을 선포했다. 문지기인 자신이 본디에게 반 토흐 선장을 데려다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죽기 전까지 괴로워하는 포본드라의 고민은 절대 타당성과 진정성을 잃은 허세 같은 게 아니었다. 아들 내외는 물론 손자, 손녀에게 물려줘야 할 도롱뇽과 전쟁하는 세상을 그는 자기 탓이라 책망하며 무너져간다. 그의 마지막 논리가 타당한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사실이다. 역사는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반 토흐 선장이 도롱뇽 세상에 침입한 것처럼, 수많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쟁탈을 놓고 싸움을 벌인 것처럼, 인디언 원주민을 몰아내고 아메리카 대륙을 뺏앗은 후 신대륙을 건설한 것마냥 노래불렀던 유럽인들처럼. 인간 vs 인간, 인간 vs 도롱뇽, 도롱뇽 vs 도롱뇽. 그 어떤 전쟁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기자 출신의 체코 작가인 카렐 차페크는 이 소설이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이야기라고 했으며, 심지어 이 소설이 발표된 시기는 1936년이었다. 이제야 우리는 조금 안다. 그가 왜 이것이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라고 했는지. <도롱뇽과의 전쟁>은 여러가지 코드로 읽힌다. 그래서 더 대단하게 평가받아야 마땅한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각국을 비롯해 비교적 먼 나라 일본까지 관통하고 있던 파시즘을 대입하든, 현재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류의 불안하고 위태한 위치를 떠올리든, 여느 다큐에서 본 툰드라 부족들의 삶, 그것도 아니면 사라지는 얼음 조각에 올라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북극곰을 오버랩시키든 당신의 자유다. 다만 욕심 좀 그만 부리며 살자. 언어를 말할 줄 알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지능이 좀 더 높다고 인간이 모든 걸 지휘할 권리는 없는 법이다. 비록 식용동물로 길러질지라도 도살에는 순서가 있고, 생명체를 대하는 데에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인류의 전쟁 역사까지 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구제역 발발에 소와 돼지를 살처분하는 절차도 배제하고 생매장 시키는 어이없는 광경이 자꾸 떠오르고, 굶어죽는 아이들의 눈망울과 에이즈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아픔에도 식량과 치료제를 보급하지 않는 국제적 기업의 보편적 이기심에 치가 떨렸다. 서민복지예산 깎아 나라 발전을 위해 투자한다고 떵떵거리는 것도 못볼 노릇인데, 도대체 이 모든 싸움은 누굴 위한 배불리기란 말인가? 오늘 우리가 주인일지라도 내일 우리가 도롱뇽이 되지 말란 법은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진짜 딱이다. 이 시대에 반드시 읽혀야 하는 필독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감성소녀’님은?
아직 20대인 것이 희망. 자칭 예술애호가.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몰입과 지속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단 것을. 규격적 인간을 선호하는 세상을 거스르며 살고 싶어 책읽기를 선택했다. 로마 스페인광장에서 하루 종일 사람구경하며 책 읽는 삶을 꿈꾸지만 여의치 않은 현실에 로마로 떠나는 사람들의 여권에 도장 찍어주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