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집권 플랜> - 진보, 열정을 불태워라 블로거, 책을 말하다

오연호, 조국, <진보 집권 플랜>, 오마이북, 2010 


소위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며 등장한 이명박 정권의 3년 동안 한국 사회는 다양한 정치적 풍랑을 맞았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 시위부터 최근의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까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정치적 이슈들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대안 집단인 진보 진영의 무능 탓으로 보인다. 과연 한국 사회에서 진보는 수권 능력이 없는 집단일까. 이 책은 그렇지 않고 충분히 가능하며, 진보의 집권이 더 나은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진보 집권 플랜>이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기획이 되기 위해선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만 한다. ‘왜 진보가 집권해야 하는가?’, 그리고 ‘진보가 집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북 문제에서는 군축, 평화공존,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경제에서는 자유지상주의, 시장만등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시장에서 패자를 아우르는 정책을 추구하고, 양심 ·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위시한 각종 정치적 기본권의 확대 · 강화를 지지하는 것이 진보입니다.”
(26~27쪽)

먼저, 왜 진보가 집권해야 하는가? 법학자로서 조국 교수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꾼다. 그에게 있어 정의로운 사회란 “서민과 보통 사람이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27쪽)다. 서민과 보통 사람이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 수 있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물론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일자리, 주거, 교육과 같은 일상적 생활의 안정을 담보해 줄 수 있는 조건들이 선결되어야 하고, 장기적으로 남북 문제와 세계화 시대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조국 교수는 이명박 정권 3년 동안 이러한 조건과 대응들이 대단히 후퇴했으며 적절한 제동을 가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심각한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므로 이를 되돌려 바람직한 상태, 즉 ‘정의로운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진보의 집권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가 생각하기에 진보란 시민들에게 정치적 기본권과 경제적 안정과 그리고 국내 · 외적 평화를 보장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2012년, 늦어도 2017년” 진보 · 개혁 진영의 집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중은 언제나 유능한 정부를 원합니다. 보수든 진보든 관계없이 말입니다. 유능, 무능에 대한 판단은 자신의 욕구, 희망, 불만, 고통 등을 얼마나 잘 처리해주는가에서 나오죠. 정치 ‘소비자’로서 시민은 이러한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를 싫어할 수밖에 없잖아요.”
(143쪽)

그렇다면 진보가 집권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국 교수가 가장 먼저 제시하는 것은 진보 진영의 ‘성찰’이다. 지금까지 진보 진영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의 우월함만을 내세우며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현재 자신이 닥친 문제에 관심을 초점을 두고”(35쪽) 있기에 현실성 없는 대안은 금세 정치 ‘소비자’인 대중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외면이 두려워 스스로 “진보적 상상력을 키우는 것을 자제하면서 스스로 희망의 불씨를 꺼버”리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최근 벌어진 ‘무상급식 논쟁’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들의 가치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면 얼마든지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보는 열정을 가지고 미답의 장, 미완의 장 속으로 뛰어들어가야”(74쪽) 한다.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조국 교수는 “사회 · 경제 민주화”, “교육”, “남북 문제”, “(검찰) 권력” 등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다양한 측면에서 진보가 지향해야할 가치와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정책적 방향을 조곤조곤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경제적 문제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치권력은 법과 제도를 통하여 경제권력을 ‘규제’하고 ‘조정’할 수”(54쪽)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쟁을 권장하면서 동시에 연대의 원리가 사회운영의 원리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93쪽)고 역설한다. 결국 분명한 가치 지향과 이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모색해야만 진보의 집권이 가능하며, 또한 집권 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조국 교수가 각 분야의 실현 가능한 구체적 대안을 조목조목 세세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법학을 전공하는 학자이자 한 개인인 그에게 이를 요구할 수도 없다. 결국 이는 각 정당이나 정치 단체의 정책 연구 집단이 머리를 싸매고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는 이 책에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규정한 역할, 즉 진보 집권을 위한 나침반 역할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책 뒷면의 만화가 강풀의 말처럼 “짜증나, 조국 교수님. 키도 크고 잘생겼는데 생각도 깊어.”라는 말이 전혀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몇 가지 고민해 볼 만한 부분도 있다. 보수가 현실만을 고수하는 입장이라고 한다면 진보는 현실에 발을 두고 미래를 바라보는 일이다. 너무 미래에 치우쳐 있다면 이상주의적이라 비판을 받게 되고, 너무 현실에 치우쳐 있다면 가치를 포기하고 타협했다고 비판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에게 현실과 미래 사이의 무게 중심을 어떻게 잡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조국 교수가 지적하듯이 현재 진보 진영의 가장 큰 문제가 진보적 상상력, 진보적 열정의 상실이라고 한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진보적 상상력을 펼쳐보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역시 몇 가지 측면에서는 현실적 한계를 쉽게 수긍하고 지나간다.

예를 들어 그는 정치인들의 역할을 강조하며 정치인들이 정치 ‘소비자’인 대중에게 감동을 줄 것을 요구한다. 이는 대의민주주의라는 현실 정치 제도에 대한 인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고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그러나 대중이 단순히 정치 ‘소비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정치 ‘생산자’가 되는 직접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불가능한 것일까. 이를 꿈꿔보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일까. 남북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산가족의 인권 침해, 국방에 드는 과도한 비용, 전쟁을 걱정하는 정신적 스트레스, 사상과 표현의 자유 제한”(210쪽) 등의 문제를 들며 통일이 오히려 저렴한 해결책이며 이를 위해 ‘국가연합’ 방식의 통일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양국 간의 긴장으로 인한 과도한 낭비가 문제라면,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남한과 북한이 서로 헌법을 수정하여 상호 국가로 인정하는 방안은 어떨까. 이러한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한 건 아닐까.

FTA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조국 교수는 우리나라가 ‘통상 국가’라는 점을 진보 ? 개혁 진영이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은 현재 10대 무역대국입니다. 한국 경제는 내수시장만으로 유지될 수 없고, 통상이 있어야만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213쪽) 그렇기 때문에 그는 FTA에 대해 ‘조건부 찬성’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FTA 자체의 찬반이 아니라 그 범위, 조건, 시기에 대한 논의가 더 중요하다”(217쪽)고 지적한다. PGI(G20 주요 경제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GDP 대비 수출 비중이 43.3%로 G20 국가중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2위인 독일의 33.6%보다도 10% 가까이 높은 수치이기도 하다. 그의 말처럼 ‘통상 국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통상 국가’라는 현실이 오히려 문제는 아닐까.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 경제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고, 수출 효자 품목을 위해 다른 업종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통상 국가’임을 인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보다 안정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최근 3년 동안 제목에 “진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책들이 다양하게 출간되었지만 의미 있는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그러나 <진보 집권 플랜>은 출간되자마자 정치/사회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물론 “직업 좋지, 글 잘 쓰지, 키 크지, 잘생겼지, 게다가 진보적이기까지” 한 조국 교수에 대한 개인적 호감이 크게 작용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진보에 대한 강한 열정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국 교수에게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리고 몇 가지는 다소 불분명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지점, 즉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쟁을 권장하면서 동시에 연대의 원리가 사회운영의 원리”로 자리 잡힌 ‘정의로운 사회’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사회에 도달하기 위한 이러저러한 구체적 대안들이 제출되고 토론될 수 있다면,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열정을 진보 진영에 혹은 대중들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자신이 의도한 나침반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 것이리라.

“열정은 자기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있을 때 생겨납니다.”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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