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 교향곡 전집 [말러 편곡판]> - 나는 슈만이다 반디 음악 광장

 

 

 

리카르도 샤이,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 <슈만: 교향곡 전집 [말러 편곡판]>| DECCA | 2010

 

너희가 오케스트라를 아느냐?


서양음악의 꽃으로 불리는 오케스트라. 우주적인 아름다움을 주는 이 분야는 예로부터 모든 작곡가들의 영원한 도전 대상이자 이상이었다. 그렇기에, 작곡가가 되기 위한 견습 과정에서도 처음부터 섣불리 배울 수 없고, 일정한 공부의 양을 채운 뒤에 도전하더라도 곡을 쓰는 이에게 고차원적인 구성력과 음악적 감각을 요구하는 부분이 바로 이 관현악곡인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안타깝게도, 콘서트홀에 가거나 레코드를 듣는 초보적-혹은 보통-수준의 청중들은 베토벤, 브람스, 차이콥스키처럼 견고하고 훌륭한 관현악법을 보여주면서 보다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들에 대해선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강렬한 인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물론, 그 중에서도 어느 악기든 직접 연주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보다 높은 음악적 이해능력을 가졌을 확률이 높지만, 아마도 앞서 말한 수준의 감상자들이 흘려 듣기 쉬운 유명한 오케스트라 작품들에 묻어있는 작곡가들의 노력과 놀라운 영감을 직접 알게 되면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우리가 ‘흔히’ 듣는 베토벤, 브람스나 관현악법의 귀재로 평가받는 라벨과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은 오케스트라를 ‘정말 정말’, 그러니까 남들이 까다로워하는 복잡다단함 정도는 가볍게 넘어서 수족처럼 다루는 경우에 속한다. 하지만 그들처럼 자주 연주되진 않더라도 작곡가 특유의 관현악적인 개성이 묻어나면서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오늘 소개할 슈만의 교향곡(말러 편곡 버전)도 그런 작품이다. 특히 때로는 솔직하리만치 순수한 맛이 느껴지는 슈만의 교향곡이 말러의 손길을 거쳤을 때 느껴지는 색다름은 보다 다양한 레퍼토리와 비교 감상거리를 찾는 애호가들에게 충분한 만족을 안겨줄 것이다.


말러의 대장간에 어서 오세요.


슈만의 교향곡을 듣다보면, 다른 ‘정말 정말’ 뛰어난 교향곡을 쓴 작곡가들(Symphonist)의 작품과는 어딘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지며, 베를리오즈나 멘델스존 같은 동시대 작곡가들과 비교하면 세련미나 순발력에서 뒤쳐진다는 인상을 받을 때도 있다. 특히 슈만의 뒤 세대 작곡가인 말러는 슈만의 관현악법을 보다 근대적인 시각에서 접근했고, 필요 이상으로 두터운 소리가 나도록 배치된 악기들과 그 다이내믹에 수정을 가했다. 또한 남발하면 경우에 따라 부담스러운 울림이 생기기 쉬운 목관악기의 옥타브 더블링(동일한 선율을 한 옥타브 위/아래로 중복하는 것)에 손을 댔으며 슈만 시대에는 악기의 기술적인 문제로 연주가 어려운 부분이 있던 호른 파트에도 적당히 가감작업을 하여 보다 색채감 있고 웅대한 호른 특유의 소리를 강조했다. 이에 따라 다이내믹 수정의 경우에는 음악적 뉘앙스가 완전히 색다르게 들리도록 바뀐 경우도 있다. 가령 교향곡 3번 마지막 악장 첫 부분의 경우에는, 슈만이 ‘forte(강하게)’로 표기해 놓은 부분을 'pianissimo(매우 여리게)'와 ‘dolce(부드럽게)'로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도록 수정했고, 한술 더 떠 같은 부분의 목관악기 파트는 삭제해 현악기로만 가볍게 연주하게 해서 몇 마디 뒤에 나오는 또 다른 forte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켰다.


한편 슈만의 의도를 살린 것뿐 아니라 말러 자신의 개성을 확연히 보여주는 대목도 있다. 4번 교향곡의 피날레에는 말러가 썼던 'fff(포르티시시모-현대음악에서는 종종 ffff도 등장하지만, 현실적으로 낼 수 있는 가장 큰 포르테는 fff이다)’ 표기라든지, 금관악기에 부여된 ‘Schalltrichter auf!'(악기의 나팔부분을 허공으로 향하게 할 것) 지시 등은 슈만의 시대에는 쉽사리 상상하기 힘든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러가 자신의 고집만을 믿고 슈만의 스코어에 난도질을 했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면 그런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을 것 같다. 말러의 가필은 슈만시대의 스페셜리스트였던 멘델스존, 베를리오즈를 비롯한 시대적 성향까지 염두에 둔 날카로운 탐구력과 특유의 번득이는 음악적 직감으로, 상상력은 풍부했으되 다소 둔중한 느낌이 들었던 슈만의 악보를 날렵하고 매끈한 창칼처럼 재구성해낸, 또 하나의 명품이기 때문이다.


심금을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지난 3월에 내한하여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음향을 들려주었던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는 환상적인 호흡으로 거침없는 젊음을 연상케 하는 슈만을 들려준다. 그들의 음색은 어딘가 웅숭깊은 곳이 있으며 급격하게 변화하는 최근 음악계의 추세에도 흔들리지 않고 옛것과 새것을 모두 껴안을 수 있는, 전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중후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때 카펠마이스터(음악감독)로 재직했던 작곡가 멘델스존을 비롯해 푸르트뱅글러, 브루노 발터, 프란츠 콘비츠니, 쿠르트 마주어처럼 최고 수준의 지휘자들이 매만졌던 게반트하우스의 소리는 2006년부터 이탈리아의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를 만나 이전의 단단하고 묵직했던 소리와 함께 보다 민첩하고 섬세한 부분에서도 빛을 발하는 놀라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교향곡 3번 E♭장조 「라인」은 자전거를 타면서 맞는 초가을 강바람처럼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며, 소리의 원근감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호른의 청량하고 풍성한 소리는 일품이다. 만약, 말러가 손대지 않은 슈만 그대로의 모습을 만나고 싶다면 자발리쉬, 카라얀, 푸르트뱅글러, 번스타인, 쿠벨릭처럼 뛰어난 녹음이 많이 있으므로 샤이의 녹음과 한번쯤 비교하며 들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으며 지금은 공익근무요원으로서 어정쩡한 신분의 삶을 살고 있는 남자입니다. 남의 연주에 대해 끼적이는 걸 좋아하면서도 음악을 공부하며 생긴 어정쩡한 동업자 정신 탓에 나쁜 연주를 나쁜 연주라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암튼 정체가 수상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트위터 http://twitter.com/brahms1014